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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지기 Feb 18. 2022

당신은 조울증입니다.

유학생의 정신 건강 관리 - 1. 조울증


나는 오늘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실비보험에 들 수 없고,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2년 가까이 이 글을 묵혀두었던 거겠지. 그 2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내가 용기를 가져도 되겠다는 걸 알았다. 그 덕분에 어쨌든 두려움에 맞서기로 하고 다른 누군가는 나보다 더 오랜 시간 행복하기를 바라며 내 경험을 공유하려고 한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신과에서는 병명을 선고하듯이 "당신은 우울증입니다."라고 딱 잘라 진단을 내려 주지 않는다. "우울한 감이 있네요." 또는 "기분 변화가 좀 있네요." 식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부터 나를 보신 의사 선생님은 아마도 진작에 아셨겠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조울증인 걸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그것도 역시 내가 재차 확인하려 "그래서 제가 조울증인가요?"라고 물어서야 들은 진단이다. 전에는 그냥 우울증만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조울증으로 발전했다. 조울증은 대부분 우울증에서 발전한다고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 하는 걸 흔히들 조울증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던데, 조울증은 그게 아니라 짧게는 일주일에서 보통 몇 주, 길게는 몇 년의 주기로 조증기와 우울기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래서 오히려 우울증이었을 때보다 치료를 얼마간 미루게 되었다. 초반에 조증기일 때는 심각하게 들뜨는 일이 잘 없기도 했고, 컨디션이 좋고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별 신경을 쓰지 않다가 우울기에는 'PMS 때문인가?' 싶어서 넘기고 우울해하다가 다시 조증기가 오곤 했다. 하지만 증상이 점차 심각해지면서 조울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기분 변화의 주기를 잘 관찰해보니 PMS와는 달랐다.


병원에 가도 내 증상을 스스로 설명해야 진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들은 기분 일기를 쓰거나 하는 식으로 기분 변화를 잘 관찰해서 기록하는 걸 추천한다. 내 경우에는 내가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또는 조울증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내 고통을 인정받은 것 같아 내심 좋기도 했지만 본인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약을 먹어보면 알 거다. 우리는 생각보다 단순한 존재들이라 영원할 것만 같은 지금 이 심연의 우울도,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쁨도 몇 그램짜리 알약과 호르몬에 좌지우지되는 기분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정신 질환도 운 나쁘면 생기는 것이지 당신의 탓이 아니다. 내가 치료를 받겠노라고 결심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떤 이유로 그 시기에 그럴만한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조울증으로 발전한 초반에는 조증기에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우울기에 힘들어했는데, 나중에는 조증기에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원치 않는 말실수를 하거나 심장이 빨리 뛰고, 너무 들떠서 주체하기 힘든 증상이 있었다. 우울기가 차라리 차분하고 편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게 언제까지나 계속될 끝없는 우울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조증기가 오겠지 하는 식으로.


병원에서는 내가 태생적으로 우울한 기질이 있다고 했다. 호르몬 문제일 수도 있다면서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해 보라기에 해 봤더니,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고 한다. 운 나쁘면 생기는 대표적인 질환인 동시에 우울하고 처지게 만드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사주를 봐도 늘 우울한 팔자라고 하더라.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지만 다시 태어날 게 아니라면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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