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이 그토록 원했던 퍼프소매

조카에게 떠주는 니트

by 강변댁

뜨개질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뜨개계의 소통의 장. 함께 뜨개 하기.

일명 “함뜨”이다. 누군가 어떤 도안으로 함께 떠요.라고 공지를 올리면 같이 뜰 사람들이 모여 신청을 한다. 그러면 단체 카톡방이 생기고 그 방에 모여 일정한 기간 동안 함께 같은 도안, 혹은 같은 디자이너의 도안으로 뜨개를 하게 된다.

대부분 아니 거의 다 여자이므로 사는 얘기, 아이들 얘기, 남편 얘기로 공감대가 형성된다. 여기에서 각종 뜨개실이나 도안에 관한 정보도 얻고 요즘 유행하는 니트가 어떤 게 있는지도 알게 된다. 제일 좋은 정보는 역시 할인이 아닐까 싶다. 나 혼자만의 정보력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각종 알짜배기 소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함뜨를 안 할 수가 없다. 제일 좋은 건 역시 함께 뜨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나 혼자라면 뜨다가 지루해지거나 다른 일이 (뜨개 보다 더 중요한) 생기면 놓아버리기 일쑤인데 여기 함뜨방에 들어가면 손을 놓을 수가 없다. 매일 ‘나는 이만큼 떴어요’ 이런 사진들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급박해진다.

이렇게 같이 뜨개를 하다 보면 온라인으로 친해지고 그러다가 오프라인으로 만나 실제로 함께 뜨개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친해지면, 그분이 주최하는 함뜨에는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의리 같은 룰이 생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게 해서 참여하게 된 함뜨가 있다. 그분은 프릴이 있고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니트를 사랑하는데, 나하고는 영 맞지가 않아서 고민했지만 일단 무조건 해보기로 했다.

지난 연말 가족들과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내가 뜨고 있는 도안을 보게 되셨는데 이런저런 훈수를 두시다가 ‘이건 너하고 어울리지 않아’ 이 한마디에 팔랑귀인 나는 사이즈를 라쥐에서 스몰로 바꾸어 조카 것으로 뜨기로 했다.

이 사랑스러운 도안은 목 라인에서 부터 내려오다가 요크 끝 부분에 레이스 러플이 달려 있다. 러플이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코를 주어 몸통과 소매를 뜨게 되는데, 몸통이 블라우스처럼 넓고 소매로 벌룬으로 넓어지다가 손목에서 큰 무늬의 레이스가 달린다. 도안 사진을 보면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감탄하겠지만, 실생활에서는 매우 거추장스러운 디자인이다. 초등학생인 조카에게는 공부를 하거나 밥을 먹을 때마다 뭔가를 묻히거나 걸리적거릴게 뻔해서 소매 디자인을 변경하기로 했다.

그때 나는 빨간 머리 앤을 떠올렸다. 내가 조카 나 이즘 빨간 머리 앤은 나의 우상이었고 친구였다. 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퍼프소매의 원피스를 나도 입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우리 엄마는 나에게 치마를 입히지 않았다. 늘 활동성 좋은 바지와 티셔츠차림이었다.

앤의 간절한 퍼프소매의 로망은 내가 공감하기 충분했고 나도 앤과 같이 그런 소매의 옷을 입고 싶었다.

조카에게 니트를 떠주면서 나는 소매를 볼륨 있는 퍼프로 만들고 팔꿈치부터 손목까지는 딱 붙는 일자의 형태로 만들었다. 정말 빨간 머리 앤에서 나오는 다이애나가 입었던 그 퍼프소매의 스웨터가 되었다. 그 소매를 뜨면서 나는 앤을 생각했다. 빨간 머리의 앤이 그토록 입고 싶어 했던 그 퍼프. 내가 바로 앤이었다.

그 앤이 입고 싶었던 옷을 조카에게 떠주는 것이었다.

조카는 내가 떠준 옷을 입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의 귀여운 앤도 퍼프소매의 원피스를 입고 창가에 턱을 괴고 웃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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