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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Oct 03. 2020

제주도 덕후의 21대 총선 사이트 제작기

VoteForJeju - 제주도 밀레니얼을 위한 총선 사이트

https://voteforjeju2020.pythonanywhere.com

이렇게 보니 <head>에서 <title>도 설정하지 않았었다. 다시 보면 볼수록 부족함만 드러나지만, 내가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3개월 동안 개발한 사이트이다. 21대 총선을 기다리며 2020년 2월부터 제작했다. (후기는 너무 늦게 쓰지만ㅠ)


이 사이트를 만들게 된 동기는 다양하지만, 그중엔 나의 '부끄러움'도 있다. 2018년 지방선거로 돌아가 보자. 그땐 나의 첫 투표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서 부재자 투표를 하러 염리동 주민센터까지 신나게 걸어갔다. 내가 드디어 투표를 한다니!!! 너무 설렜다. 그런데 기표소에 들어가고 깨달았다. 아, 나 후보자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정당 특색은 알지만, 후보자의 이름은 "아는 이름/모르는 이름"으로 분류되기만 했다. 지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피하고, 지지하고픈 정당을 선택하면서 대충 찍고 나왔다.


투표를 하고 나서 죄책감이 굉장히 컸다. 다음 총선엔 이렇게 투표하지 말아야지! 분명히 결심했다. 그런데 선거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기 너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서울에서 후보자 공보물을 받을 수 있던 것도 아니다. 그럼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뉴스를 일일이 봐야 하나? 솔직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냥 누가 후보자 3줄 요약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8 지방 선거 때는 저렇게만 생각하고 끝났다. 2019년에 구글X미디어오늘에서 진행하는 '이노베이션 저널리즘 스쿨'에서 다양한 미디어 실험 사례를 접했다. 저널리즘 스쿨을 마무리하면서 각자 팀을 꾸려서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에 관해 발표해봤는데, 그중에 지역성에 초점을 둔 서비스가 있었다. 그 발표를 보면서, 제주도민 대학생들이 모여서 제주도 선거 정보를 정리하면, 20대들에게 유용한 서비스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21대 총선 즈음에 제주도의 젊은 투표권자들을 위한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팀원만 잘 구하면 완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음... 결국 팀원은 구하지 못하고 사이트를 혼자서 만들었다. 혼자서 기획+개발+데이터 정리를 했다. '흥미롭다며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팀원은 없었다. 나와 같이 책임을 나눠줄 사람을 구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진짜 단 한 명도... 요즘 대학생들 다 너무 바쁘다...) 또한 2020년 1월부터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가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무리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온라인 프로젝트 경험이 없기도 했다. 여러 이유로 팀원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교환학생의 여유로움을 활용해서 신나게(?!) 사이트를 개발했다.


자 어떤 내용을 담을까

vote for jeju 사이트에는 지역구 별 후보자의 공약과 관련 기사 정보, 그리고 비례대표 정보를 정리한 사이트 링크가 담겨 있다. ‘제주도 그 이슈’ 페이지에는 도내 현안을 최대한 쉽게 직접 정리해봤다.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에서는 후보자 정보를 모두 정리하는 것이 품이 많이 들어서 힘들었지만, 기획 단계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비례대표 파트이다.


사실 비례대표도 내 방식대로 정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한 혼란은 끝나지 않고, 혼자서 정리하기에 너무 벅찬 양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정리를 더 잘할 것 같은 미디어 서비스들이 많았다. 뉴닉뿐만 아니라 SBS 마부작침, 씨리얼에서 비례대표 관련해서 이미 잘 정리해줬더라.


하지만 제주도 지역구 의원에 관해서 야무지게 정리해주는 서비스는 역시나 없었다. 제주도에 집중해서 정보를 정리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지역구 후보자에 관한 정보를 간단한 영상으로 정리한 서비스는 있었다. 제주MBC고르라제주. 하지만 본인 PR 뿐이거나, 보기에 안 좋거나, 너무 간단해서 아쉬웠다.


지역구 선거 > 제주시 을 > 기호 1번 오영훈 후보

정리를 시작하기 이전에 UX를 직관적으로 만들고자 고민을 좀 했다. (고민 10% 개발 90%였지만...) 디자인은 처음보다 아주 발전했다. 초기 디자인을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별로면 말하라고 했더니 다들 바로 이상하다고 답해주더라. 창의적으로 이상하게 만들기보다는 레퍼런스를 토대로 깔끔하게 만들자고 생각해서, 뉴닉의 뉴스레터와 SBS 마부작침의 뉴스레터를 레퍼런스 삼아 만들었다.


이 총선 서비스는 20대를 타깃으로 하는 만큼, 청년 정책과 후보자 주력 정책이 상단에 위치하도록 정리했다. 모든 정책을 [#000 후보자의 공약] 파트에 정리한 건 아니다. 제목이나 내용을 모두 직접 정리했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 페이지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20대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정책들은 링크로 삽입하거나, 기사 파트에 넣었다.


중립을 지키면서 정리하는 게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터무니없는 공약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기 힘들었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양길현 예비후보의 한라산 케이블카 공약과 해안가 트램 설치 공약을 '평온한 톤으로' 정리하기 어려웠다. (애써 정리했는데 불출마 선언하셔서 그동안 정리한 게 아까워서 짜증 났고, 앞으로 더 정리하지 않아도 되니 기뻤다.) 하지만 정리하는 것도 점점 익숙해져서 문대탄 후보의 '4.3 사건은 남로당 공산 폭동이다'라는 발언을 덤덤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만드느라 힘들었던 점?

이 질문을 인턴 면접에서 받았었다. 그때(당시 6월)는 코로나로 불안한 상황에 싱가포르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해서, 사이트 개발할 때의 힘든 점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면접을 보는 순간엔 진심으로 답했는데, 면접 보고 나니 힘들었던 점이 와르르 생각나기 시작했다.


1. 개발 과정에서 불안함

작년에 웹 개발 동아리에서 사이트를 제작했을 때, 사이트 배포를 스스로 성공하지 못했었다. 이번엔 혼자서 만드는 건데 스스로 배포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컸다. 다 만들었는데 삽질 실패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백엔드가 80% 완성된 상황에서 배포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프로젝트 구조에 약간의 오류가 있어서 오랜 삽질을 견뎌야 했다. 운 좋게(?!) 하루 만에 성공했다! 사이트 운영 비용을 지출하지 않기 위해서 aws가 아니라 pythonanywhere에서 배포했다. 배포뿐만 아니라, 프런트엔드 개발에 미숙해서 빨리빨리 개발하지 못했다. css 코드에 미숙함이 여실히 드러난달까..


2. 혼자서 고민하는 외로움

팀원을 구하지 못했을 때, 멋대로 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스케줄을 내 맘대로 조절하는 부분은 편했지만, 혼자서 아이디어 내고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왕이면 잘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혼자서 아이디어 여러 가지 내고, 혼자서 토론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학교 공부를 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사이트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아 이거 별론데? 어떻게 제2 공항 이슈를 정리하지? 다른 뉴스레터는 어떻게 정리했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데이터 정리 형식부터 끝.. 까지!


3. 매일 정리해야 밀리지 않는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후보자 기사들을 전부 읽고, 후보자 블로그를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 제주 갑/제주 을/서귀포 3개의 선거구를 3일 간격으로 번갈아가며 정리했다. 밀리면 너무 힘들길래 미루지 않으면서 정리했다. 학교 공부 끝나고 7-8시부터 3-4시까지는 사이트 만드느라 시간을 보냈다. 내용을 정리하거나, 기획을 보충하거나, 개발을 하려면 하루 4시간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더라.


(tmi) 4. 근데 내가 투표를 못했다...

이건 서러움 포인트인데, 선거법 때문에 투표를 못했다. 아래 뉴스에서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김 씨가 바로 나다. 자가격리 기간에 스카이프로 인터뷰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729854_32524.html


배운 점은 많지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완성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컸는데, 결국 완성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제주 현안에 관심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더라. '제주도 그 이슈'는 내가 가장 아끼는 페이지다. 제2 공항, 제주특별법, 4.3 특별법은 총선에서 중요한 쟁점이지만, 오랜 기간 논의된 만큼 맥락을 파악하기에 읽어야 할 기사가 많은 이슈들이었다. 제2 공항의 경우 KBS 채승민 기자의 의혹 보도 시점부터의 기사를 전부 읽었다. 밤새 읽었는데, 재밌어서 즐겁게 읽었다. 생소했던 용어들을 파악해가는 즐거움도 컸다. 4.3 특별법 개정안에 관해서 정리할 땐, 4.3 사건에 대해서는 딱 한 줄로만 설명했다. 제주도민이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르면 직접 검색해라!!!'라는 불친절함이 거의 유일하게 담겨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페이지. 도내 현안을 뉴닉 재질로 정리했다.

팀원의 소중함도 배웠다. 디자인은 친구들한테 물어가면서 대충 해결해도, 마지막으로 중요한 단계에 홍보가 있더라. 광고/PR 과목을 수강한 적 없는 내게 홍보는 너무 자신 없는 분야였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시점에, 제주도민 동기가 사이트를 보고 홍보를 도와주겠다고 해줬다. 아주 고마웠다... 내가 디자인과 홍보 분야에 지식이 전무함을 느꼈다. 정말.


후보자의 경제력 차이가 홍보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공보물 자체에서도 차이 나지만, 블로그 운영 여부에서 차이가 명확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경우, 블로그를 아주 잘 운영해서 후보자의 공약과 발언을 정리하기도 매우 용이했다. 자유한국당 후보 중에서는 부상일 후보만 블로그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블로그마저 보기에 깔끔하지 않아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든 사이트 안에서는 모든 후보자가 공평하게 공약을 전달하기를 바랐는데, 온라인 상에서 정보량 자체의 편차가 컸다.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을 써보려고 했는데 계획 말고 결과물로 말하기로 했다. 간단한 프로젝트라도 브런치에 남기기로 결심!


글을 쓰고 나니

개발 과정을 거의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백엔드는 django framework를 활용했다. django를 개발해 본 사람이면 알 거다. 굉장히 간단하게 만들었다! document만 잘 보면 되는 일이었다. 아 stack overflow도... 백엔드는 간단했고, css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위해 열심히 잔머리를 굴렸다. 물론 해결 못한 지점도 많지만ㅜㅜ


아, 200명 도달을 목표로 만들었는데(사실 200명도 너무 과분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서 만든 결과물을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공개하기 굉장히 쑥스러웠달까.) GA를 보니 700명 넘게 봐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이트 정말 정리 잘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너무 고마웠고, 꼼꼼한 피드백을 미친 듯이 던져주던 친구들도 너무 고마웠다. 팀원은 없었지만 조력자는 정말 많았던 프로젝트였다. (하트 뿅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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