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_너의 속도로 걸어가 보렴
이제는 느리지 않은 나의 아이에게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리고 이 글은 아이의 느림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일 것 같다.
지난 9년을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보며 죄책감, 미안함,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다양한 감정들로 아이를 대했다. 그 감정은 어느 날은 더없이 친절한 엄마가 되었고 또 다른 날은 분노와 지친 맘으로 가득한 엄마가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느린 부분을 먼저 설명했고, 그들의 이해를 바랐다. 그런 나의 행동이 친구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내가 아이의 단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그 순간부터 배려를 받는 게 아닌 그 단점을 가진 아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 무지했던 엄마였다.
그날부터 느린 아이라는 단어는 내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 생각 이후 며칠이 지났을까 담임선생님과 봉사활동 일정으로 통화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께 언제나 궁금한 건 반 친구들과의 관계였기에 그날도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 요즘 아이의 친구들 관계는 어떤가요?"
"어머님, 아이는 혼자 노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가 친구들이 와서 같이 하자고 하면 거리낌 없이 같이 놀이를 하기도 하고요"
"아, 아이들이 안 놀아주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군요"
"네. 친구들은 아이를 재밌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발표시간에 상상 가득한 내용들로 발표를 해서 아이 차례가 되면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하는 분위기예요. 공부도 잘하고 자기 할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걸요"
세상에 [상상력 많은 친구, 똑똑한 학생, 엉뚱한 친구, 말많은 친구] 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어쩌면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만 해주신 걸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에 그동안 나의 9년이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들어주려고 아이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을 걸던 순간도
말을 잘 못 알아듣겠다며 답답해하는 아이들 속에 혼자 덩그러니 서있던 내 아이의 모습을 보던 순간도
초등학교 입학날 교문 앞에서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로 초조하게 아이를 기다리던 내 모습도
그 상처 많았던 시간들이 선생님의 한 말씀에 다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걱정을 하고 초조해하는 동안 자기만의 속도로 열심히 걷고 있었던 우리 아들.
그 속도를 남들과 비교하니 더 느려 보이고 답답했나 보다.
장점을 더 봐주는 어른들과 친구들이 있는 따뜻한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는 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이제는 앞에서 끌어주는 부모보다는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부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의 힘들었던 시간과 이별해 본다. 이 글이 아이가 컸을 때 다시 보면 추억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