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SO-SO한 이야기 6
스스로 소극적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나는 일정하게 사람들과 거리 두는 것을 좋아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함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 뜬금없이 자신의 속내나 배경을 쏟아 내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특히 사돈의 팔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자신의 아들과 딸, 남편 또는 아내가 얼마나 능력 있는지를 떠 벌리는 사람을 만나면 일정 금액의 수고료를 청구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별 소득 없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 것을 보면 좋게 표현해서 편안한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고 나쁘게 말하면 만만한가 싶기도 하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투르더라도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불특정 다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때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이야기도 많다.
이런 이야기 중에 가장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사람은 가까운 인척의 권력을 내세울 때다(절대 아버지는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런 사람이 객관적으로 호감일 수는 없다. 얼마나 내세울 것이 없으면 사돈의 팔촌을 내세울까? 차라리 꾸미지 않은 날 것의 모습이 친근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말이다.
좀 찌질한 주제는 회식자리처럼 술 한잔 했을 때인데 말이 많은 사람은 맨 정신으로도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고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인이 탄탄한 직장(특히 선생님)이거나 처가가 집안이 좋다는 것은 남자에게 커다란 자랑 거리임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는 듣는 사람 모두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겠구나 생각하게 되므로 그러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남편에게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해서 듣는 나로서는 무척 씁쓸하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 싫긴 하지만 꼭 들어주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사이, 그 사람의 역사와 노력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찐 친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 성공에 대해 자랑하고 자신의 분야에 자부심의 대단하다. 이럴 때는 질투와 존경이 뒤섞이게 되지만 적절히 맞장구를 치며 잘 들어주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는 부모의 자식 자랑이다. 공부를 꽤 한다 싶은 아이 엄마 얘기를 듣다 보면 천재가 아닌 아이가 없고 저학년, 첫아이일수록 아이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요런 얘기는 초등학생이 지나면 쏙 들어가게 마련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 아이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니 한정적 자랑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학교와 인품까지 갖춘 아이로 자란다면 싫긴 하지만(여기에 방점이 있다), 끝까지 들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장 많은 품이 들어가는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인정해 줘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나는 어느 날 친절하고 말도 잘하는 싹싹한 A양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사람 만나는 일이 좋지만은 않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녀도 나처럼 어색하고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간 A양처럼 되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결국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연두를 분홍색이라고 계속 주장할 수 없었고 작은 신발에 억지로 발을 구겨 넣은 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말하기보다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라도 듣는 것에 길들여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