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림(積霖)
​- 계속해서 내리는 장마

퍼플>>>SO-SO한 이야기 5

by 해 뜰 날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뉴스에서는 연일 홍수와 산사태, 긴 장마의 갱신 등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긴 장마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주된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간사하게도 중국과 일본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어~신기하다' 했는데 막상 우리나라에서 연일 비가 내리니 '그래 사람의 심보가 이러면 안 된다' 반성도 해본다.


이러한 장마가 아니어도 심각한 가뭄을 제외하고는 비가 반가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짙게 드리워진 풍경이 펼쳐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뭐 이런 로맨틱한 생각은 기혼자가 된 후부터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결혼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출퇴근해야 하는 샐러리맨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집에 있는다 해도 비가 들이칠 것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요란한 번개와 천둥이 치지 않는 이상 창문을 닫으면 빗소리를 듣기 어렵고, 커피는 훌륭한 커피머신의 보급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우리의 배달 서비스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처럼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에는 비가 꼭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특히 아들이 입대한 후로 쓰레기는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는데 비까지 내린다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두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그나마 한 번에 해결하면 다행일 텐데 택배 박스가 유난히 많은 날에는 온전히 두 번은 오고 가야만 쓰레기를 모두 처리할 수 있다. 당연히 우산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아스팔트의 고인물이 다리에 튀는 느낌은 즐거울 리 없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긴 바지를 입어 본들 체온으로 바지를 말려야 하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에 최악은 신발이 젖어 양말마저 흠뻑 젖었을 때인데 양말은 벗으면 되지만 퇴근할 때 젖은 신발과의 조우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교통 이용자의 기본자세로 타인의 우산에 치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싸움이 없다. 여기에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날에는 우산이 뒤집히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해 사투를 벌여야 하고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흩날려 산발을 만들어 놓아도 곧 집에 도착한다 스스로 다독인다.


전례 없는 오랜 장마가 이어지고 일기 예보는 이러한 비가 일주일은 더 지속된다고 하였다. 금요일 퇴근하면서부터 주말에는 아무 데도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미리 인터넷으로 장도 봐놨다. 빨래가 마르지 않아 건조기 구입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열린 창문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 앞에는 광화문 광장처럼 분수대가 있어서 여름에는 온 동네 아이들이 모이고 분수를 틀지 않는 날에는 소프트볼을 즐기는 아이들로 시끄러운 날이 많다.) 비가 쏟아지다 잠시 멈추었을 뿐인데 에너지 넘치는 두 녀석이 그 사이 연락이 되었는지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른 녀석들이 모이기도 전에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두 아이는 사라지고 곧 빗소리만 남았다.


나의 어떠한 짜증보다 저 두 아이 실망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코로나로 학교 못 가는 날도 많고 이렇게 오랫동안 장마가 이어지다 보니 감방 생활이 따로 없을 것이다. 참으로 딱하게 생겼다. 나의 마르지 않는 빨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너지 넘치는 두 소년을 위해 빨리 장마가 끝나기를 기도해 본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재잘거림이 주말의 낮잠을 방해하더라도 너희에게 뛰어 놀 자유를 미치도록 주고 싶기 때문에 비는 이제 그만 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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