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세인트폴대성당에서 타워브리지까지-시내버스 여행
오늘은 런던 1-2 존의 시내버스 투어라고 할 수 있다.
아침 식사 후, 우리 가족은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세인트폴 대성당을 가기로 했다.
시티맵이 어느 장소에서 몇 번 버스를 몇 분 후에 탈 수 있는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시티맵의 위력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누가 만든 앱인지 참 대단하다고 남편과 나는 아낌없이 칭찬의 말을 나누었다. 우리가 권한이 있다면 큰상을 주고 싶을 만큼 유용한 앱이라고.
세인트폴 대성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돔양식의 성당이라고 한다. 얼핏 보기만 해도 그 웅장한 외양에 압도될 정도였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건축양식이라 그런지 그 새로움에 자꾸 돌아보게 되고 감탄이 자꾸 새어 나왔다.
성당 내부에서는 오디오 가이드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제한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각자 여유롭게 구석구석을 다녀보기로 했다.
길쭉한 성당 의자 한 귀퉁이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대성당의 엄숙함과 성스러운 분위기에 도취되어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종교에 의지하는 인간의 심리가 조금은 이해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흔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러러보게 되는 대성당 건축물의 높이와 그 높은 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오묘한 빛과 섬세하게 조각된 살아 있는 듯한 조각상이 다 같이 어울려 인간은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그저 미약하고 티끌 같은 존재로 낮아지게 했다. 거부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하는 압도적인 분위기.
종교를 받아들이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간절한 사람들은 나약하기보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성당을 나설 즈음은 노곤한 오후 시간이었다. 카페인이 그리운 시간.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성당 뒤쪽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쉬어가자 싶어 익숙한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근데 이곳 런던에서도 번화가 스타벅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가득해서 멀리서 보면 누가 누구와 함께 앉아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건 뭐 더 피곤해지는 느낌이잖아. 별다르지 않은 맛의 커피를 얼른 마시고 금방 일어섰다. 어쨌든 카페인도 충전했으니 또 가볼까.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런던타워와 타워브리지. 다시 시티맵의 안내대로 버스를 탔다.
그런데 덩치 큰 이층 버스는 런던 시내의 좁은 골목을 샅샅이 누비고 있었다. 버스가 높아서 그런지 런던의 도로가 너무 복잡해 보였다. 인도를 걷는 사람과 버스와 택시들이 무질서하게 엉키는 인상을 주었다.
그건 아마 이방인의 시선이라 그러리라 짐작한다. 그다지 깔끔하지 않더라도 그들만의 질서와 규칙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흐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런던이라는 대도시의 네임밸류에는 좀 맞지 않는 산만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도상에는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 버스는 많이 돌고 있었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 걸어갔다.
런던타워. 유명한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좀 걷다 보니 멀리서부터 런던 타워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장에 들어섰다.
영화에서도 역사책에서도 많이 접한, 앤 여왕의 아름답고 슬픈 스토리는 유명하다. 여왕의 슬픔이 서린 곳이라 생각해서인지 런던 타워는 스토리에 걸맞게 처연한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단순하게 벽돌을 쌓아 올린 둥근 성이었는데 왠지 모를 외로움과 한이 성 외곽에서조차 느껴졌다. 스토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리라.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사실은 여왕의 감옥이었던 역사가 마음을 울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사람들이 타워브리지 쪽으로 모여들었다. 대형 선박이 드나들 때 다리가 위쪽으로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 타워브리지는 런던의 상징적인 곳이다. 실제 모습은 상상보다 거대했다.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타워브리지는 아직도 옛날 마차들이 지나다닐 것 같은 고풍스러운 외관을 간직하고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타워브리지에 전등이 켜지자 주변 사람들 모두 '와~' 탄성을 질렀다.
조명을 이용하니 다리의 아름다움이 두 배가 되었다. 야경시간을 잘 맞춘 우리가 행운을 잡은 기분마저 들었다. 빛은 신기하다. 빛의 반짝거림에 사람들은 설레며 빠져들고 마치 다른 세계를 들어서는 환상을 느끼게 하니까.
근데... 그때 그곳에서 기념품을 샀어야 했다.
내일 해리포터 스튜디오에 가면 더 많은 기념품이 있으리라 싶어 관두었다.
그 결정이 결국은 끝까지 후회로 남을 줄 몰랐다. 그 장소의 기념품은 그곳에서 가장 다양하게 판매한다는 걸 그땐 몰랐던 것이다. 그곳 샵에서 타워브리지 모형 마그넷을 꼭 샀어야 했다.ㅠ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런던시내는 어두워져서 더 낯설게 보였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시티맵만 믿고 환승을 했다. 버스 환승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itsu>에서 누들과 덮밥과 초밥을 시켰다. 데워먹는 음식들이라 입에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어른보다 잘 먹었다. 늦은 저녁식사임에도 아이들이 까다롭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여행에 최적화된 아이들^^.
어두워지니 낮에 보았던 길이 아닌 것 같고 방향감각이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환승지는 번잡스럽다 보니 더욱 방향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버스를 잘 갈아타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마치 미션을 수행하고 목적지에 잘 도달한 기분이었다.
피곤함은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이제 겨우 하룻밤을 지낸 숙소인데 숙소는 기가 막힌 안정감을 주었다. 보금자리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하루가 길었던 우리들은 내일의 기대감으로 몇 마디 나누던 중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내일은 아이들이 소원하던 해리포터를 만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