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소설에서의 SF와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매체의 발달은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서사 스타일에 대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웹을 기반으로 하는 변화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만들어 낸 고유한 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웹툰(Web-to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에서 이야기의 생산과 소비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매체 형식은 바로 ‘웹소설(Web-novel)’이라고 할 수 있다. 웹소설은 2000년대 들어 기존에 장르문학(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을 창작하고 있던 작가들이 PC통신을 지나 인터넷 소설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의 웹소설은 장르문학이라는 특징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이것이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의 인터넷을 통해 창작되고 소비되는 소설들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14년도에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에서 공모전 이름에 웹소설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면서 웹소설이라는 용어의 정착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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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웹소설 장에서도 조금씩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2020년을 전후로 해서 한국에서 SF에 대한 대중적 경험들이 확장됨과 동시에, 이를 이야기 대상으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한국 SF 어워드’ 시상식의 선정작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해당 시상식은 2019년도부터 웹소설 부문을 신설하고 그 해에 발표된 웹소설 작품 중 ‘과학기술이 세계관의 형성과 이야기의 진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SF 장르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들을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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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할 것들은 지난 4년간의 선정작들이 보여주고 있는 주제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 최강의 보안관>이나 <내 안드로이드> 같은 작품들은 게임판타지의 세계 혹은 현실에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있는 세상에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흥미롭게 풀어낸 전형적인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식은 웹소설에서 SF를 유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론들이 되며, <피자 타이거 스타게티 드래곤>이나 <덴타 클로니클> 같은 작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들 외에도 웹소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전문가물’과 같은 ‘~물’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나 혼자 천재 DNA>, <거대 인공지능 키우기>와 같은 과학기술의 특정 영역을 소재적으로 확대하여 이야기를 형성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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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 부여는 단순히 한 작품에 대한 상찬이나 과잉 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다. <어바등>의 한국 SF 어워드 심사평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기존의 웹소설의 형식 혹은 속도와는 다른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기존과 다르다는 것은 바로 속도감과 장르 관습에 대한 경험에 대한 의존 여부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실제 <어바등>의 초반부는 해저 기지라는 낯선 공간의 논리와 법칙들을 설명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서사 형식에서 이와 같은 논리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웹소설이라는 매체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익숙한 장르 관습들을 토대로 하여, 스펙터클하고 긴박한 이야기의 전개로 진입하는 형식이 그동안 선호되어 왔다. 그러기 때문에 기존의 장르 관습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에 대한 공을 들인 설명과 설득은 오히려 지난한 영역이라 여겨지고, 대중성에 반하는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바등>은 그와 같이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해 공을 들여 설명하면서도 독자들을 잡아두는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필력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독자들 역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납득이 가능하다면 그에 대한 설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여지들이 생겨났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앞서 설명했던 SF의 세계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사회적인 경험의 차이들을 극복할 수 있는 여지들이 비로소 생겨난 것을 <어바등>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작품들이 연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되는 웹소설이라는 매체는 이야기의 다양성을 끊임없이 종용받는 곳이기도 하다. 일정 기간 어떠한 유행들이 생겨날 순 있지만, 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것들을 요구받게 되고, 그렇게 그 어떤 이야기 소비 매체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다양한 이슈들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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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포스텍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웹진 《크로스로드》2023년 7월호(통권 215호) "SF-Review"섹션에 실렸습니다. 챕터별 일부를 여기에 옮겼고, 전문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