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부문 심사평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한국SF어워드 2022의 심사평 입니다. 심사로 참여했던 웹소설 부문의 심사평을 옮겨놓습니다. (*전체 심사위원단 소개는 'SF어워드 2022 홈페이지'의 해당 섹션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부터 신설된 한국SF어워드의 웹소설부문 심사는 사실 도전적이고 조심스러운 작업을 병행하면서 이루어진다.우선 여타의 부문과는 다르게 심사위원들이 심사대상작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읽기를 병행하면서 깊숙하게 관여한다. 도식적으로 나뉘어 있는 장르의 구분만으로는 웹소설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내에서 SF 장르들을 추출 해내기 힘들뿐더러, 의미화하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문의 신설 이후 웹소설 심사위원들은 매 년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읽어냄과 동시에 웹소설에서 ‘SF 장르’를 규정하기 위한 고민을 수 개월 동안 진행하게 된다. 특히 웹소설에서 SF는 주류장르가 아니라는 인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SF의 장르적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고 의미부여 하는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장(場) 내에서 SF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웹소설이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 소비재로서의 가치부여 외에도 문화예술 장르로서의 다양한 의미들을 밝혀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4년째 이어지는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웹소설에서의 SF 장르는 광의의 의미로부터 좀 더 장르적 가치가 있는 지점들이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그것이 작품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확인하는 일종의 연구사적 가치를 내포하게 되었다. 특히 올 해에는 그러한 탐구의 전환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우선 과학과 미래라고 거칠게 정리될 수 있는 SF의 소재적이고 주제적인 지점들을 지나치게 도구적으로만 사용하거나 도식적으로 사용한 작품들은 제외하고 나서도 충분히 많은 수의 작품들이 SF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동안 게임세계(관)이나 오버테크놀로지의 외형만 갖추었을 뿐 판타지의 장르적 특징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서사를 전개하거나, 로봇이나 외계인을 비롯한 SF에서의 캐릭터들을 활용했음에도 그 특징이 이형(異形)의 존재에 머물고 장르적 개성을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는 과감하게 심사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본심대상작으로 선정한 열 작품은 각각 SF가 가지고 있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가 작품 내에서 흥미있게 진행된 작품들이었다.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된 본심에서 최종적으로 선정된 세 편의 작품들은 각각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2020년대 한국 웹소설의 SF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앞으로의 가능성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연산호 작가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는 웹소설에서 새로운 시도들과 과감한 실험들이 가지는 가치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기존의 웹소설에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공식처럼 여겨졌던 지점들을 다소 비껴나가거나 소위 유행에 충실하지 않은 모습을 하지 않아도, 독자들을 흡인력있게 붙잡아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웹소설에서 추상의 공간으로 머물렀던 우주나 미래의 모호한 이미지들을 과감하게 전환하여 해양적 세계관이라는 인류가 지난 역사에서 한 번은 경험해 왔던 공간에 새로운 해석과 사고실험들을 덧씌움으로써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데서 호평을 받았다.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작품이긴 하지만 현재 구축해 놓은 세계와 그 안에서의 이야기 전개의 능숙함 덕분에 수상을 결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레고밟았어 작가의 「따개비」역시 이러한 지점들이 나타났다. 좀비물이 가지고 있는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와 공포의 메타포들을 바다와 그것을 근간으로 형성되는 설정으로 생경하게 만들어낸 이 작품은 웹소설의 기존 문법과 공식들을 충실하게 구현하면서도 배경과 설정의 시선의 차이를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공포물에서의 긴장감을 조율하고 회차별로 진행하는 필력의 능수능란함으로 인해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작가가 제공한 세계에서의 긴장감이 충분히 유지되었다. 또한 제목에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은 이후 영상화 등에 대한 서사의 확장도 기대하게 만드는 장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상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던 작품이었지만, 기존의 웹소설 공식에서 조금 벗어났음에도 완성도를 높여준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에 올 해의 심사기준에서 의미를 실어주기로 했을 뿐, 각자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완성도는 차이가 없었다.
산호초 작가의 「합체기갑 용신병」은 SF 장르의 대중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매카닉물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최종수상작 중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이 작품에 수상을 결정한 것도 그와 같은 의미 때문이었다. SF 장르 중에서도 로봇은 그 용어의 시작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이 의미있는 위치를 만들어 내왔는데, 대중적인 성공의 형태 중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메카(メカ)물의 그동안 한국의 웹소설이나 장르소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웹소설의 서사 길이와 템포에서 메카물의 사건 전개를 흥미롭게 그려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시도만으로도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합체기갑 용신병」은 연출 등의 완성도 역시 견지하면서 한국 웹소설 장르 스펙트럼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씹스틱 작가의 「스피어 앤 민트」와 네르시온(네륵) 작가의 「바이오 쇼크」 역시 마지막까지 수상을 고민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동안 웹소설 부문 심사에서 꾸준히 퀴어관련 장르나 성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번에도 특유의 장르성들로 인해 완결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최종수상작 선정 여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완결성이나 작품성과는 별개로 이번에는 웹소설 SF 장르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심사위원들이 합의를 하면서 해당 작품들을 선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올 해의 심사기준에 의한 것일 뿐 작품의 매력이나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아니었다. 해당 작품들 모두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 서술의 힘으로 인해 만들어내는 사건들의 조응이 인상적인 작품들이었다.
2022년 한국 SF 어워드 웹소설 부문의 수상작들은 새로운 시도와 과감함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메카물에 대한 시도와 해양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보여준 성과는 이후로도 하나의 의미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과 그에 대한 의미부여들이 이후로도 한국 SF 장르와 웹소설 영역에서 새로온 가치와 필요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이렇게 새로운 시도들을 과감하게 해내며 작업을 이어가는 수많은 작가 님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물론 수상을 하신 세 분의 작가님들에게 무엇보다 감사드린다. 덕분에 몇 개월 동안 가슴 뛰고 머릿속에서 새로운 감동들이 창발하는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웹소설 부문 수상작과 전체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전문을 'SF어워드2022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