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2024년 여름호(통권 122호) 기획특집
* 계간지 《시와 산문》2024년 여름호(통권 122호) 기획특집인 '소설과 SF적 상상력'에 글을 실었습니다. SF의 정의문제부터 시작해 현대 사회에서의 SF의 상상력이 어떤 의미인가를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전문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F(Science Fiction)가 과연 무엇일까? SF는 용어가 등장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형태의 정의가 있었고, 또 변화하고 있다. 1851년에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정의는 “과학으로 인해 드러난 진리들이 본래 시적이고 진실한, 즐거운 이야기와 얽히고설킨 것”(윌리엄 윌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920년대 SF라는 장르적 개념을 정립했을 때는 “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휴고 건스백)이라는 정의가 부여됐다. 이후 상상력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는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과학을 서사적으로 사용하는 것(폴 앨콘), 실재에 대한 창의적인 과학 지식과 과학적 방법을 일치시키려는 유일한 현대 문학(조애나 러스),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의 문학(로저 럭허스트)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나타난 근대 과학을 통해 이전까지 세상을 인식하고 이야기하던 방식의 변화를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지만 근대 과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SF에서의 근대 과학이라는 요소가 더 이상 새로움을 전달하는 장치로 머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부터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기 시작했고, 과학기술은 세계의 거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정보에서 나의 주변과 일상,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구성하는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라는 로저 럭허스트의 언급은 1980년대 기술이 ‘일상’의 영역으로 포섭되기 시작했음을 파악하고 논의되기 시작한 이른바 사이버펑크(Cyberpunk) 담론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듯 20세기 중엽을 지나면서부터 SF는 근대 과학 기술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를 인식하고 이야기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중심에 여전히 근대 이후 나타난 과학이라는 매개체가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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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상상력은 그 시대의 과학기술의 발달 혹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SF의 효시라고 불리는 『프랑켄슈타인』(1818)의 경우도 1780년에 등장했던 갈바니의 실험에서 상상력이 시작되었고, 천문학의 발달과 관측 기술의 발달은 환상의 세계로만 그렸던 우주와 달에 대한 상상력들을 구체화하였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우주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와 같은 작품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1969년 달에 인간이 첫 발을 내딛은 이후 우주 공간은 더 이상 미지나 환상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SF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이 우주에 나가는 것이 반복되고,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시대가 되고 난 후부터 우주는 더 이상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 공간이 되어버렸다. 영화 <그래비티>(2013)에 대해서 SF가 아니라 재난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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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SF에서의 상상력은 단순히 과학기술과 관련된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 기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두드러지는 것은 근대 이후에 시대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요인 중에 예외없이 과학이라는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혹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은 이미 우리의 삶 전체의 거대한 흐름부터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SF에서 보여주는 상상력은 단순히 특별한 소에 대한 접근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삶의 모습 그 자체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옮기기 위한 당연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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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과학기술이라는 SF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성은 오히려 현대 사회를 명확하게 인식하는데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과 그 해결방안의 영역에 과학기술이 긴밀하게 관여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다. 지난 세기에 진행되었던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테크노필리아(technophilia)도, 세기말에 불어닥쳤던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도 결국 우리에게 과학기술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부정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확인시킬 뿐이었다. 또한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기술에 대한 민감도나 일상에서 기술을 활용하고 도입하는데 적극적인 국가에 속하고 있다. 산업 등에서 로봇의 활용도 역시 굉장히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다분히 SF적 통찰과 상상력을 통해 재현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경향의 지속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지구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기후위기나, AI의 고도화로 인해 특이점(singularity)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공생(Symbiosis)이 예상되는 세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거대 변화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혐오와 차별의 문제들, 그리고 동물이나 생물들에 대한 성원의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과학적인 정보와 그에 대한 인식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시대의 과학은 특정한 학문이나 전문인의 영역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 혹은 삶의 영역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대에 SF 소설과 거기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상력은 우리 삶의 문제들을 마주하고, 그에 대한 능동적인 사고실험을 수행하는 대중적인 방법론으로써 그 의미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장르의 취향과 무관하게, 앞으로의 SF가 계속해서 중요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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