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에세이를 읽고
인생이란 어디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언제 헤어지게 되더라도, 헤어진 후에 남편의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 속의 내가 다소나마 좋은 인상이기를, 하고 생각한 것이다. <풍경>
남편은 나보다 8년동안 더 많은 밥을 먹어서 일까. 자신이 먹은 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준다.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어느 분야에서든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경험의 폭을 가진 사람이다. 얼마 전, 자신이 20대 초반에 읽었던 책이라며 결혼을 했으니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며 자신이 읽고 기억하는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내게 건넨 <당신의 주말은 몇 개 입니까>. 그는 이렇게 자신의 삶의 깊이를 증명한다. 마치 '너 나랑 결혼하길 잘했지?' 확인이라도 시켜주 듯 나를 얼 빠지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의 끈을 풀고 약해진다. 동시에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역시! 이 남자랑 살길 잘했어!' 스스로를 칭찬하며. 이 책을 덮을 쯤엔 남편이 왜 이 책을 건넸는지 알 것 같아서 피식했다.
무려 21년 전에 쓰여진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에쿠니 가오리가 결혼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가을에서 3년이 다 되어 가는 가을까지의 이야기를 엮은 책.
그녀는 책을 마무리하며
‘버들가지에 부는 바람처럼, 그저 받아넘기기만 할 뿐 세월이 흘러도 서로에게 길들지 않는 남녀의 행복하고 불행한 이야기라면 좋겠습니다.'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담았다.
결혼에 대한 낭만을 산산조각 부셔주는 것만 같아서 속이 시원해지면서도 산산조각의 의미와 재미를 알게 해줘서 찜찜하기도 하다. 유쾌한 결혼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재밌게 와닿았다.
결혼은 용기를 내어 살아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삶의 한 챕터인 듯 하다. 결혼의 행간을 말하는 에쿠니 가오리 또한 살아봤기에 그 균열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행복을 단언하지도, 불행을 단언하지도 않는 그녀의 글이 아주 짜릿하게 느껴진다.
결혼은 서로가 만신창이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한 사람이었나! 더욱 놀라운 사실 만신창이가 되는 과정과 모습도 사랑으로 관철할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결혼의 맛 중 하나라는 점이다. 나의 남편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그렇게 피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