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있어도. 아니, 같이 있으면 더 외로워져
그를 따라 미국에 잠시 왔다.
일주일이 지났고, 다시 한국 돌아가기 전 일주일 남았다.
한국 돌아가면 보고 싶어 하고 미안할 것 뻔한데도, 이 관계에 집중을 못한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은 부모님께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갖고, 고마워서 눈물 흘리는 것처럼
이제 한국 가면 또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그런 애정과 미안함, 고마움을 느끼고, 후회하며 살겠지..
그가 집에서 일에 집중할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이상하다.
부러움, 질투, 짜증 남, 시기 등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
먼저 첫 번째로는,
나는 곧 내 커리어의 휴직을 하고 미국에 올 계획이고, 지금은 내 휴가동안 그가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2주 동안 와있다. 그런데,, 나도 지금은 충전을 해야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2학기를 잘 보낼 수 있는데 가구 조립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텅 비어있었던 집을 (최소한의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주는데 애를 쓰고 있다 보니 자꾸, 이게 내 일이 아니고, 내가 희생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비위가 아주 약한 편인데, 어제는 화장실 청소하다가 환풍구에 새까맣게 껴있는 먼지 (100년 된 집임)를 보고 마스크 착용하고 헛구역질을 하면서, 물티슈로 닦아 냈다. 그는 그런 거에 둔감한 편이라 안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이 먼지를 보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게 청소라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점에서 성격이 급하고, 비위가 약한 내가 청소를 더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공용 세탁기 사용을 아직 할 수 없어서, 일주일 동안 급한 빨래를 했다. 여기서 그는 또 오래 머물 거기 때문에 충분한 옷을 가져왔다. 그래서 2주일 여행 온 나의 짐보다는 충분했고, 나만 또 빨래를 해야 하는 급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양말, 옷 몇 개 정도의 양이 나에 비해 매우 적었기 때문에, 나는 내 빨래를 하면서 같이 했다.
(물론 상대방은 시키지 않음.. )
근데, 화장실이 또 많이 더럽고, 욕조가 많이 더러워서 빨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욕조 청소를 해야 됐고,
1시간 습기 많은 공간에서 빨래하다 보니 더위를 먹었나.. 근데 그 와중에 본인의 서류 작업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짜증이 또 올라왔다.
그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짜증이 많아졌다고 했다.
근데 짜증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짜증이 나는 순간들이 많아졌으니까.
결혼하기 전부터 그리고 한 직후에는 모든 일정인 그의 미국 일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계속 그거에 맞춰줘야 하는 나는, 자꾸 억울한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그래도 다음 주에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시간이 그리울 것을 알기에 꾹 참고 짜증을 최대한 참고 (물론 상대방은 짜증 냈다고 느꼈을 수 있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듣기로 한 비자 관련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같이 학교로 향했다. 그는 해당학교에 학생 신분으로, 나는 그의 와이프 신분으로 갔다.
그런데... 나는 입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용 인원 자리가 모자라고, 그는 dependence 한 사람은 같이 오라고 해서 나를 데려왔다는데, 안내하시는 분이 그런 안내문구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이것도 1차 기분이 상했는데,, 그 와중에 안내하시는 분들이 입고 있었던 검은색 단체 카라티와 비슷한 옷을 입은 카라티를 보고, 이미 여기 학생이네!라고 던진 농담이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하는 걸 보니.. 또 2차 기분이 상했다.
솔직해지자.
이 학교에 입학한 그의 능력이 부러웠고, 어렸을 때 유학을 해서 영어 쓰는데 두려움이 없는 그가 질투 났고, 자꾸 나와 비교됐다. ( 나는 20년 차 영어공부하는 중, 매일 100 문장 쉐도잉을 틀어놓고 지내는 중. ) 나도 그를 따라 여기 와서 다시 공부를 할까 알아보고 계획 중인데,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나의 학부- 석사와 수준이 비슷한 대학이지, 더 좋은 대학은 아니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분명 이점은 있을 테지만. 그에 비해 그는 가장 원하는 대학 3개 중 하나에 입학한 것이고 명문대학이 맞다. 그것도 부러웠다. 그리고 만약에 그가 나라면, 지원하지 않았을 대학에 나는 같이 살기 위해 여기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하나밖에 없으니 지원하는 게 뭔가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애써서 지원하면 그의 대학에 지원할 수 있긴 하지만 (연구 fit이 좀 다르더라도..) 그것을 도전할 용기,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합격할 자신은 더더욱 없는 게 FACT... 그래서 내가 더 그의 대학을 볼 때마다, 부러움, 시기, 질투가 올라오는 것 같다.
이런 복잡한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오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롤러코스터 같이 왔다 갔다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3시간 넘게 울고 난리 치다가 잠들었고, 어제는 갑자기 산책을 한다고 나갔다 왔다. 나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잦아져 그가 당황했을 것 같고, 그게 또 신경 쓰여 힘들다. 어제는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시원하게 카페에 앉아서 쉬다 가고 싶은데, (내 카드는 수수료가 700원 드는 거라) 돈이 아까워서 안 사 먹고 걷다가만 왔다. 그러나 내가 그한테 음료를 사다 줄 때는 그냥 막 썼다. 이것 역시 그가 원한 것은 아니다.
good girl 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깔려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냥 첫 번째 나의 반응은 항상 상대방을 먼저 위하는 행동이나 말이 먼저 나온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나온다. 나중에 그렇게 억울해하고, 속상해할 거면 그냥 카페 가서 시원한 거 마셔!라고 마음속으로는 그러는데, 몸이 자연스럽게 집을 향한다. 내 진짜 속 마음보다 항상 보이는 말과 행동이 자꾸 다르게 (시키지도 않은 착한 척하는 방향으로) 나온다.
오늘 나는 같이 못 있는다고 해서, 내가 지원할 대학에 가서 이것저것 알아볼 겸 길을 걸어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크게 드는 거다.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고. 그가 나 대신 살아주지 않고. 이 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시간이라고. 그와 같이 있는 미국에서 소중한 시간이기 전에, (어떤 이유 없이) 내가 잘 지내야만 하는 나의 시간이라고. 미국이든 혼자 있든 같이 있든 한국이든.
이렇게 글을 적으니 마음은 조금 편해지는데, 또 그다음의 할 일을 생각하니 막막하고, 외로워질까 봐 무섭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짜증이 올라올까 봐. 약을 더 가져왔어야 하나. 자꾸 그에게 탓을 하고 싶어지는 이 심보는 뭘까...
내가 선택해 놓고. 안 오면 안 올 수 있었잖아.. 솔직히.
나는 내가 그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 마음을 지울 수 없나 보다. 그게 억울한가 보다.
그게 왜 억울할까. 아마 예전부터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것에 세뇌당했을 수도.
이 말은, 사랑을 권력 게임처럼 보고,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더 의존적이고 상처받기 쉬우니 ‘약자’라고 규정하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경쟁이 아니니까 승패를 나눌 수 없다. 왜 억울한 마음에 드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사랑을 경쟁으로 보고, 감정을 더 많이 주는 쪽을 을, 적게 주는 쪽을 갑이라고 표현하는데 관계에서 어느 쪽이 더 많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문제는 어느 쪽이 더 많이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랑이 나를 지치게 하느냐 채워주느냐라는 것이다. 띵...
내가 배우자를 훨씬 좋아하지만, 그게 나한테 설렘과 행복을 주고 채워준다면 그건 절대 지는 게 아니다.
이런 점에 나는 진 사람이 많다. 내가 더 좋아해서, 덜 좋아해서 진 게 아니라, 나는 이 관계에서 나를 계속 지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계 설정이라고 했다. 나를 잃어버리면서 까지 무조건적인 희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무조건적인 희생’이다. 어느 순간 내 욕구나 감정이 계속 밀리고, 내가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건강한 사랑은 내 마음을 다 주면서도, 나를 지키는 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계가 없으면 억울함이 쌓이고, 그 억울함은 결국 사랑을 좀먹습니다. 더 많이 좋아하는 게 꼭 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사랑을 더 많이 주는 건 용기와 주도성의 증거일 수 있어요. 다만, 그 사랑이 나를 소모시키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순간부터는 ‘지는 게임’이 될 수 있으니, 균형감과 경계 설정이 필수입니다.
이런 글을 찾으면서도, 내가 더 좋아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라고 쓰고 싶어지는 이 (유치한) 마음.. 독자에게 저도 사랑받아요!라고 외치고 싶은 이 유치한 마음을 어떻게 할까.. 후
내가 구구절절 말하게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