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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Mar 31. 2024

완벽하지 않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1)



지난주 화요일의 일이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부서 회의를 앞두고 여느 때처럼 한 주의 업무 보고 내용을 작성하다가 갑자기 회사에서 눈물이 터졌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멈추려 눈을 질끈 감아보기도, 밖에 뛰쳐나가 한동안 하늘을 바라다보기도 했지만 눈물이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자타공인 '완벽주의자'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공부가 재밌냐고 묻는다. 일이든 공부든 무엇이든 완벽하게 잘 해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들이는 시간이 많으니 그렇게 느껴질 만도 하다. 해외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불확실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완벽주의가 발동해 나의 부족함을 메꾸고자 스스로를 질책하며 끊임없이 몰아세운다. 불안, 스트레스, 걱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의 모습은 당연했다. 완벽한 삶이 진짜라 여기며 살아왔고, 그래서 항상 숨이 찼다.


그날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발견했다. 나의 감정과 행동들이 이해되고 불안함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능해 보일까봐, 실수할까봐 완벽주의의 틀 안에 갇혀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서 어렵사리 터득한 지식이나 깨달음이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실제 삶에 녹아들게 하기 위해 이렇게 글로 남긴다.





제1장 완벽주의, 언제나 지는 게임

당신이 완벽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1. 당신의 완벽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건, 완벽하기 위해 혹은 실수를 피하기 위해 했거나 하고 있는 행동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에게 해를 끼친다. 최고가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치르게 되는 대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2. 완벽주의는 성장과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마도 당신은 기대 수준이 높은 어른들 틈에서 자랐을 것이고, 그들은 기대에 부응할 때에만 당신을 인정해 주었을 것이다.


3. 완벽은 실체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완벽에 도달하는 것이 이룰 수 있는 목표라면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렇지 않다. 완벽의 문제점은 그 어떤 것도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고 보는 데 있다.


4. 현실 세계에서는 언제나 결함, 실수, 실책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완벽의 정의 자체도 끊임없이 변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완벽이라는 개념은 막상 그곳에 도달하면 달라진다. 따라서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다. 불공평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게임이다.


5. 언제나 남을 기쁘게 하려 애쓰며 살다 보니 외부에서 주입된 것과 별개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맞추어야 하는 모든 기준들을 내려놓아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들을 전부 다 내려놓아라. 당신은 이미 완벽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6. 절대 실수하지 않고, 유능하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당신은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이 거래의 문제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어도 결코 더 완벽해지거나 더 만족스러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쁨과 따스함을 느낄 틈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딱히 명백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어서 당신은 계속 완벽주의 게임에서 어떻게든 이겨보려 애쓴다.




제2장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는 착각

적응적 완벽주의 vs 부적응적 완벽주의



7. 완벽주의는 넓은 의미로는 높은 기준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잉성취자'를 완벽주의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과잉성취보다 다소 복잡한 개념이며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된다.


8. 완벽주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적응적 완벽주의자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유형을 말한다. 그들의 성취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행복, 삶의 만족, 성실성과 같은 긍정적인 결과물과 연결되어 있다.


9.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자기비판,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에 대한 집요한 추구,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의 고통, 도달했을 때의 불만족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상적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기분과도 연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연관성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나타나며 부적응적 완벽주의가 문화를 초월하여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모순적이게도 달성하고자 하는 바로 그 목표를 훼손한다.


10.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행동 이면의 ‘논리’에 따라, 혹은 행동의 ‘기능’에 따라 갈린다.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가 무엇이냐의 문제다. 적응적 완벽주의의 경우 바람직한 결과에 ‘다가가는’ 것(긍정적 강화)이 동기인 반면,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회피하거나 탈피하는’ 것(부정적 강화)이 동기이다. 당신은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가, 나쁜 결과를 피하기 위해 행동하는가?


11. 완벽주의는 과정 중심이거나 결과 중심이다. 과정 중심의 완벽주의는 적응적 완벽주의와 포개어지는데, 일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다.


12. 과정과 결과의 차이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동의 결과보다 행동 자체와 행동하는 방식, 즉 과정에 더 많은 통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성공의 척도로 생각한다면 성공은 당신의 통제권 밖에 있다.


13. 결과에 집중하려 할 때 생기는 문제는 조금만 노력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 애쓰는 기분이 든다는 데 있다. 과정에 집중하게 되면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다. ‘과정’의 공간에 머물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14. 적응적 완벽주의와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기준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다르다. 야망을 이루지 못했을 때도 자신에게 너그럽다면 적응적 완벽주의자일 확률이 높다. 높은 기준과 편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땐 존중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무시한다. 다시 말해 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일을 망쳤을 때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하다.


15. 반대로 자신이 세운 기준에 유연하지 않고 그 기준에 도달하는지 여부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를 결정한다면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다. 이 경우 높은 기준과 의무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과하게 몰입하고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에게 실패는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엄청난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한다.


16. 첫 번째 알아야 할 것은 부적응적 완벽주의의 중심에는 혹독한 자기비판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비판을 진실로 받아들이면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의 두 번째 특징은 원칙, 기대, 기준을 엄수한다는 점이다. 원칙이나 기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곧 무능하다는 뜻이다. 원칙과 기준을 엄수하는 태도의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이길 수 없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의 세 번째 특징은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그 기준을 맞추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주관성을 자신이 실패했음을 납득시키는 데에 이용하곤 한다.


17.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다면 당신이 성공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돌이켜보기 바란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견고한 객관적 기준이 있었는가? 아니면 자신이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는 독단적 기준이었는가? 성공의 정의가 수시로 변하고 규칙이 끊임없이 달라진다면 아무리 잘해도 당신은 결코 이길 수 없다.


18. 완벽주의적 지연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칙은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기 전에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실제로 부딪쳐보지 않으면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방법 또한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답보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게 된다.




제3장 두려움을 다루는 법

내가 만든 원칙이 내 발목을 잡을 때



19.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한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충고한다고 해서 걱정을 멈출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걱정을 그만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20. 걱정은 완전히 당신의 통제권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당신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21. 원칙이 없는 완벽주의는 힘이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완벽주의는 힘을 잃는다. 완벽주의의 원칙들은 주로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그 원칙들은 당신에게 닥칠, 혹은 영원히 닥치지 않을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22. 일관성에 대한 집착은 어떤 일을 실제로 경험해 보거나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겉보기에 일관성 있는 이야기에 안주하게 만든다. 일관성에는 대가가 따른다.


23. 논리라는 것은 작용하는 변수, 혹은 작용하는 변수를 통제하는 변수에 통제권이 있을 때에만 유효하다. 논리 혹은 일관성의 대안은 바로 '기능'이다. 그 생각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집중하고 그 점을 바탕으로 생각에 귀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생각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라.


24. 생각과 느낌이 반드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생각과 느낌은 실제로 그 어떤 행동도 하게 만들지 못한다. 생각 자체가 힘을 지닌 것이 아니라 생각에 복종하는 것이 힘을 지닌 것이다.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인정하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아라. 생각과 원칙은 당신이 듣지 않으면 아무 짓도 하지 못한다.


25. 당신은 본능적으로 생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무 의심 없이 복종한다. 그래서 생각이 하는 말을 듣기 전에 잠시 멈추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자동반사를 늦출 수 있다.


26. 생각을 끊임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으로 바라보자.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통제하려 애쓰는 것을 멈추어라. 생각과 느낌을 단속하는 책임을 벗어던져라. 생각은 생각일 뿐 어떤 생각이 이기던 당신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7. 때때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들어보는 것도 유용할 때가 있다. 당신의 목표를 염두에 두고 상황을 살펴보아라. 목표를 달성하는 데 생각들이 도움이 되는지 판단해라. 생각을 생각으로 인정하고, 사고의 과정을 자동적으로 지속적인 활동으로 관찰하고, 생각과 원칙을 잠재적인 지혜의 원천으로도 바라보는 것 모두 삶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다. 생각이 하는 말을 무조건 듣고 따르는 대신 다양한 대처 방식을 연습하다 보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제4장 완벽하지 않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

불편한 감정을 허락하는 연습



28. 느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느낌을 떨쳐버리려 애쓰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 불편한 느낌을 없애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고 당신은 경험을 통해 이미 그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9. 달갑지 않은 느낌을 위해서 공간을 만드는 시도는 고통을 느끼는 작업에 능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고통이 삶에 파고들 때 그것을 느끼되 휘둘리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수용(acceptance)이다.


30. 느낌을 수용하는 과정은 그것이 존재할 공간을 주는 것을 뜻한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저 공간을 줄 뿐이다. 반대로 느낌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느낌은 과거의 산물이고 당신은 과거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정적 회피는 결국 내면으로부터의 자기부정이다.


31. 다양한 받아들이기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낯선 곳에 도달하게 된다. 어느 순간 느낌과 싸우고 있지 않으며, 편안히 숨 쉴 수 있고, 느낌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놓아두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고, 그 상태에 잠시 머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용의 기술을 습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32. 우리는 좋은 느낌에는 기꺼이 마음을 열면서도 ‘나쁜’ 것이라고 이름 붙인 느낌에는 그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느낀다면 그 느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목표에 부합되는 행동을 시작해라. 느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안달하는 대신 느낌이 존재할 공간을 주고 그동안 다른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제5장 자기비판의 현실

당신의 시야를 좁히는 '꼬리표' 잘라내기



33.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특정 단어로 설명하는 것 역시 일관성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붙인 꼬리표들이 당신의 행동과 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스스럼없이 꼬리표를 붙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꼬리표들이 당신의 행동은 물론이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규정한다는 게 문제다. 꼬리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행동을 제약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34. 꼬리표의 삶이 아닌 실제 경험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을 연습해야 한다. 꼬리표가 없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수식어와 명사들을 모두 떼어내면 무엇이 남는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들을 놓아버리면 기존의 이야기에 부합되는 모습이 아닌 본모습 전체가 드러난다.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울 때 이 모든 진실들이 공존할 수 있다. 꼬리표와 이야기로 규정되는 자아로부터 벗어나 관찰하는 자아로 옮겨가는 과정에는 관점의 변화가 따른다.


35.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조망수용이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망수용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따라오는 생각들, 감정들, 꼬리표들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하늘에서 산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자신과 꼬리표와 이야기 사이에 거리를 두고 다른 관점에서 보아라.


36. 자기비판은 자기 꼬리표와 자기 이야기의 한 형태로, 지금까지의 모든 설명이 자기비판에도 적용된다. 완벽주의 안에서의 자기비판은 너무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따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자기비판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완벽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37. 자기비판을 진실로 받아들일 때 꼬리표나 이야기와 똑같은 위력을 지닌다. 행동을 통제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유발하며, 실제 경험을 왜곡한다. 자기비판의 영향력을 되짚어볼수록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자기비판에 소모되었는지 깨닫고 놀랄 것이다.


38. 자기비판으로 괴로워하는 수많은 내담자들을 치료해 온 심리치료사로서 우리는 자기비판이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연료라는 신화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혹독하게 질책했고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성취한 것뿐이다. 말하자면 그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뿐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를 유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39. 일을 잘하기 위해 자기비판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의 경우 또 다른 문제점은, 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더 효율적인 대안을 마다하고 평생을 비효율적으로 일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자기비판이 없어도 아마 당신은 여전히, 어쩌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고 삶의 질은 오히려 향상될 것이다.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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