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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co Cat Nov 08. 2015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마드리드의 알랭 드 보통

2015년 3월 24일 - 4월 3일, 포르토-리스본-마드리드-바르셀로나




스페인에는 독일보다 조금 일찍 여름이 찾아왔다. 이스터 방학을 맞아 마드리드를 찾은 사람들은 각자 가장 발랄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간소한 여름 옷이 주는 자유로움은 스페인에 있음을 더욱 실감 나게 했다. 거리에 가득한 스페인어도 그 느낌을 더해 주었다. '~길/~로'는 스페인어로 'Calle de ~'라고 하고 'L' 두 개가 만나 '예[je]'로 읽힌다. '까예'라는 발음이 주는 경쾌함에 기분까지 가벼워진다.


여행에서 성당이나 교회는 앉을 곳과 그늘을 제공하는 고마운 공간이다. 특히 마드리드에서 만난 성당들은 작렬하는 태양에 지친 뚜벅이 여행자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었다. 수세기에 걸쳐 융성했던 스페인 제국이 남긴 유적들은 훗날 휴일을 맞은 관광객들의 볼거리와 쉴 곳이 되어 있었다. 느닷없는 무상함이 새삼스럽다. 사실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중세의 건축물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순백색의 웅대한 마드리드 왕궁 앞에서 이 화려한 궁전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마드리드의 여행에서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과 함께 했다. 딱딱하고 실용적인 제목과는 달리 여행의 출발, 동기, 귀환 등에 대한 알랭 드 보통 특유의 감수성과 철학이 녹아있다. 역시 믿고 읽는 알랭 드 보통이다. 마드리드에서 읽은 그의 글은 지금까지의 여행 방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자주 사진을 찍거나 기념품을 구매함으로써 여행지에서 마주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말 그림'을 통해 비로소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름다움의 요소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미적 취향을 설명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한다


말 그림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사진을 찍어 두었으니 나중에 묘사해야지하는 게으름도 작용했다. 마드리드의 명동 같은 Gran Via 거리에 부드러운 예각의 모서리를 가진 건물이 눈에 띈다. 대로변에서 예각으로 빠진 골목길 위에 그 모양 그대로 올라온 건물이었다. 건물이 먼저 만들어졌을까, 길이 먼저 만들어졌을까. 그냥 지나칠 뻔했던 길에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놔둬본다. 그리고 그 가벼운 생각들이 날아가버리기 전에 황급히 메모했다. 여행 중에는 이렇게 시시한 단상도 왠지 간직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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