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피디 Feb 04. 2021

# 이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다

Walking mommy We can mom it

은퇴 후 노부부만 남은 집은 생각보다 평온하지 않았다.  

어떻게 40년 넘게 살아온 부부가 저렇게 서로에 대해 모를까 싶을 만큼  

마치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기싸움할 때처럼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물론 주로 엄마의 일방적인 폭풍 잔소리와 푸념이 대부분이었고  

딸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제삼자가 봤을 땐 그럴 수도 있지 정도의 사안으로도 그러는 게 답답했다.  

자식들이 나서서 설득도 해보고 나몰라라도 해보고 맞장구도 해보고 했지만  

‘사랑과 전쟁’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일방적으로 ‘사랑과 전쟁’을 뚝 멈췄다.  

아빠가 로또라도 됐나? 숨겨둔 땅이 있었나? 별의별 생각을 하며 넌지시 엄마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얼마 전 절에서 법문 듣는데 한 스님이 말씀하셨단다.  

지금 남편이 내 속을 썩이고 있다면  

전생에 내가 그만큼 남편에게 뭔가 죄를 지어서 그 업을 지금 받는 거다.  

웬만하면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말씀을 하시면서  

한 가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지금 상대방에게 자꾸 잔소리를 하고 비난하고 힐난하면서 그 업을 이번 생에 풀지 못하면 

내세에서 부부로 다시 만난다고... 

그 한마디에 우리 엄마는 ‘사랑과 전쟁’을 뚝 그쳤다.  


지금 엄마에겐 내세에서 다시 아빠를 만나게 된다는 것   

이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기에... 


나도 그만 입을 좀 닫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 남이지만 내 편, 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