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역사박물관
1990년대 중반 네덜란드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가끔씩 그로부터 네덜란드 유학생활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교환 학생 기간 1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조기 귀국한 사연이기도 했다.
‘튤립과 풍차의 나라’ 이미지를 안고 설렘으로 떠난 그의 유학생활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했다).
20대 초반까지 점잖고 가풍 있는 집안에서 자란 그에게 한국의 사회적 관습은 지켜야 할 신앙과도 같았다. 젊음의 일탈이나 일상의 파괴를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고 딱히 그럴 동인도 (아직) 없었던 터다.
바람과 구름의 꿈을 안고 선진문물을 접하며 학문에 매진하겠다는 다분히 ‘모범생’적인 태도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는데….
현실은 대마초 피우는 클래스 매이트, 동성애자 룸메이트, 성매매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도시의 홍등가. 친구에게는 맨탈 붕괴가 시작됐다고. 지금에서야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찬반을 떠나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는 토픽이 되었지만 내 기억으로도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생활(?)은 문란한 것이고 죄악시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상징이었다.
어제는 더치 아트의 역사와 작품을 만나러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Rijks Museum)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예약을 하고 도착한 곳은 암스테르담 역사박물관(Amsterdam Museum)이었다.
여행객의 이 정도 실수는 한 번의 헛웃음으로 다분히 용서가 되기에 ‘우연을 잡아 필연으로 만들자는 생각으로’은 아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
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 구석기, 신석기 레퍼토리를 뛰어넘어 16세기~17세기부터 시작한다. 네덜란드 역사는 근데(Modern)부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실 네덜란드는 이 시기가 역사의 황금기(Golden Age)였다.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 페르메르 같은 세기의 미술 거장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이다. 해외 식민지 개척과 무역, 상업, 금융으로 부를 이룬 신흥 부르주아들의 유행, 미술품 콜렉팅이 ‘더치 아트’의 토양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박물관은 이제 자부심 충만, 역사 스토리를 이어가나 싶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NO ONE IS FREE WHEN OTHERS ARE OPPRESSED’, ‘CLOSED MIND COME WITH CLOSED MOUTH’ 같은 포스터로 식민지 시대의 반성을 이야기한다.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계속 ‘생각’하게 되는 포스터, 설치 작품, 참여 액티비티가 이어진다. 모든 개인을 억압하는 관습, 편견, 차별로 부터 생각의 자유와 사회적 관용을, 그리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유사상가(FREE THINKER)’의 나라 네덜란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덕적 잣대, 전통적 관습, 사회적 편견 또는 종교 윤리만으로 비이성적으로 또는 무차별적으로 부정적 평가나 처벌을 하기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 보고 처벌보다는 예방하는 방식의 정책을 만드는 게 네덜란드이다.
예로, 대마초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대마는 마약류 중에 중독성이 가장 낮고 불법 마약으로 취급할 경우 블랙마켓 음성 거래로 딜러에 의해 더 중독성이 강한 코카인이나 헤로인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참고로 네덜란드에서도 코카인이나 헤로인은 불법이다.)
박물관 전시는 계속되었다. 신체, 사상, 언론의 자유를 상징하는 듯한 작품과 함께 깨뜨리고 싶은 관습이나 억압을 유리 접시에 적어 벽에 던지는 참여 퍼포먼스도 있었다.
네덜란드 ‘FREE THINKER’의 역사적 맥락에서 일종의 순결(?)한 희생자가 되었던 친구가 떠오르며 네덜란드의 ‘자유 ‘를 온전히 이해했다면 그야말로 선진문물을 접한 모던보이로 거듭났을 텐데…’하는 마음과 ‘유물 전시’가 아닌 ‘자유사상’이라는 ‘생각 전시’로 암스테르담의 정체성을 역사박물관에 담은 그들은 끊임없이 생각의 틀을 깨는구나 싶었다.
나도 접시에 ‘OOO OO’을 적어 오른팔 이두근 삼두근의 온 힘을 다해 와장창 깨버리고 왔지만 그런다고 ‘FREE THINKER’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자유의지’와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운 생각’이란 걸 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