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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려니 Apr 14. 2024

3. 숨구멍이 막히던 그때

시집살이 이야기

결혼 후 첫 주말. 오매불망 그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방과 방, 방과 부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에서 유일하게 해방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주말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눈 뜨면 보였던 칙칙한 천장 벽지가 그날은 다정히 ‘안녕?’ 환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드디어 신랑과 함께 우리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 긴장을 내려놓고 마음껏 늘어질 수 있는 날이었다.  

    

달그락달그락, 마음이 즐거우니 설거지를 하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디를 먼저 가볼까? 아니, 맛있는 것부터 먼저 먹을까? 빨리 나가고 싶은 생각에 조급한 마음은 진정될 줄 몰랐다. 옷은 벌써 전날 저녁에 골라 놓았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꾸물거릴 시간이 어딨나. 후딱 갈아입고 종종거리며 2층에서 뛰어 내려갔다. 신랑과 함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시부모님이 계신 안방 문을 두드렸다. ‘똑똑’    

 

“그래, 들어와라.” 

중 저음의 아버님 목소리가 들렸다. 신랑이 얘기했다. 

“저희 나갔다 오겠습니다.”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신랑 뒤에 서 있는 나를 아래위로 쳐다봤다. 

“새아가는 그렇게 입고 가는 거니?” 

모처럼 예쁘게 입는다고 신경 써서 고른 짧은 반바지였다. 

“이젠 아가씨도 아니고, 결혼도 했는데 그런 옷은 안 입으면 안 되겠니?” 

‘네? 뭐라고요?’ 상황 파악에 머리는 멍하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네.. 알겠습니다, 아버님.” 

심장이 쿵쾅거렸다. 걸리적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재빨리 긴바지로 갈아입고 내려왔다. 현관에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신랑이 함께 서 있었다. 외출에 들떠있던 난, 그 상황에서도 신나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얘들아” 아버님이 불러 세웠다.   

  

“아랫사람이 외출할 땐 ‘저희가 지금 나가서 어디를 가면 몇 시쯤 될 것 같고, 점심을 먹고, 어디를 들른 후 몇 시쯤에 집으로 출발할 것 같으니. 도착하는 시간은 몇 시쯤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어른께 인사드릴 땐 그렇게 하는 거야. 알겠지? 그래,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는 거지?”


조사 하나하나까지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완벽한 딕션으로 저리 말씀하셨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얼마나 힘써서 들었는데. 동공 지진이 일어나던 내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진공상태의 공기 속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더 기가 차는 사실은 뭔지 아는가. 그러면서도 저녁을 차리려면 4시까지는 들어 와야 한다는 계산을 반사적으로 돌리고 있던 나였으니. 

“저.. 먹고 올 것 같은데요.” 신랑의 대답에 정신이 돌아왔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쭈뼛거리고 서 있는 나를 보며 아버님이 얘기했다.     

“오늘은 나간다고 챙겼으니 일단 갔다 오너라. 그리고 새아가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주말은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다. 알겠지?”   

  

햇볕이 눈 부셨는지, 바람은 시원했는지, 점심은 맛있었는지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 설레게 기다렸던 첫 주말의 기억은 현관 앞에서 멈췄다. 어색하고 불안한 매일 속에 유일하게 기대고 있던 숨구멍이 틀어막히는 건 순간이었다. 아버님의 한마디에 내가 꿈꿔 왔던 순간이 어그러지는 건, 전 뒤집듯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무표정을 띠고 있는 시부모님과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남편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아니지. 이건 말도 안 되지’ 

 분명 절망했었다. 그러나 이내 다른 생각이 불만을 가로채며 튀어 올라왔다. 

‘아.. 이러면 안 되는 거구나.’ 

내가 아직 모르는 것. 익혀야 할 며느리의 본분이 많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려 애쓰고 있었다. 절망하는 나와 착한 며느리로서의 나, 그 중간 어디쯤에서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건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생각. 나 어떻게 해. 

그날 온종일 끌고 다닌 생각이었다. 무겁고 답답한 마음이 꽈리를 틀어댔다. 그 마음을 끌어안은 채 스스로 다독였다.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질 거라고. 처음이라 이런 거라고. 다른 며느리들도 다 하는 일이니까. 나도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믿으려고 노력했다. 착한 며느리만을 생각하며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노력이라는 놈. 이놈에 대해서. 

감히 나는 말 하고 싶다. 노력은 힘들어야만 한다고. 슬퍼서는 안 된다. 힘들어서 슬플 수는 있겠지. 하지만 슬픔밖에 없는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내가 했던 그 모든 노력. 힘들었다는 기억은 적다. 오히려 할만했다. 그저 오로지 슬픔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마치 이해한 듯 쥐어짜고 있었기 때문에. 슬퍼서 힘들었다. 그것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이기도 했다.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욕망에 갇혀, 노력이라 착각한 인내를 하기 시작한 거였다.  

    

 며느리의 본분은 무엇일지. 착한 며느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시부모님께 칭찬 듣고, 친정 부모님께 뿌듯한 자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내가 생각하는 착한 며느리는 그런 것이라 믿었다. 노력할수록 자꾸 눈물만 나는 데도. 칭찬과 뿌듯함의 끝에는 부모님의 행복밖에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철석같은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며느리의 본분이라 생각했나 보다. 

부모님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 가족의 안위를 살피며 뒷받침에 충실한 것.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며느리도 분명 존재한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난 아니었다. 그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런 이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들이 옳고 난 틀린 게 아닌데.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었을 뿐인데. 당연한 그 사실을 몰랐다.


가족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운다면. 난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가족 모두의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로로 세워진 행복이 아니라 가로로 평행한 평등한 행복. 가족 안에는 나도 들어가 있다. 나도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을 고민했어야 했음을 이제야 안다. 침묵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바꿔가야 했음을. 나 자신을 버려두지 말았어야 했음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그것을 고민했어야 했다.  

    

구태여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한다. 결혼 첫 주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던 현관 앞.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럴 수 있다면. 고개 숙여 인내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팔을 두르고 속삭여 주고 싶다.      

     


          

네가 해야 할 말은 “네, 알겠습니다. 아버님.”이 아니야. 그런 속에도 없는 말 말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 넌 숨 쉴 구멍이 필요하잖아. 숨구멍을 만들 노력을 해야지.    

 

“아버님, 주말은 저희 자유 시간을 가질게요. 저도 편하게 쉬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시부모님의 대답? 나도 알아. “그러렴” 같은 다정한 대답은 꿈도 꾸지 못할걸. 분명 불호령이 떨어질 테지. 그런데 있잖아. 그래도 해야 해. 야단을 듣더라도 표현해야 해. 생각해 봐. 그 뒤에 어떤 달라진 하루가 펼쳐질지. 맘 편히 신나게 돌아다녔을까? 아니지. 또 다른 걱정을 온종일 끌고 다녔을 거야. 하지만 아닌 척, 괜찮은 척 가면을 쓴 채 웃을 필요는 없었을 거야. 틀어 막힌 숨구멍에 혼자 몰래 꺽꺽대지는 않았을 거야.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듣더라도,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 며느리인지 알려주는 것. 중요한 건 그거야. 그렇게 현명하게 바로잡아 나가는 거야. 인내하는 노력은 그렇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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