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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Dec 24. 2022

이별과 어깨통증의 상관관계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11월 내 삶을 이루던 많은 것들과 이별했다.

비슷한 시간을 함께 했던 파스타 가게와 지난 연인.


 2017년부터 하루하루 가득 차 있던 그 사람과도, 매일 출근하던 가게와도 안녕을 고했다.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휴식을 줘도 되는 시간이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쉬는 것도 편하지가 않았다.

무엇이든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서른둘.

서른셋 엔 결혼을 하고 가게를 운영할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짐 정리 중, 2017년에 써 두었던 이력서를 발견했다.

2022년의 새 이력서에는 자영업 기록이 남았다.

연애 경력을 쓰는 것만큼 의미 없을 파스타 가게 운영 기록.

한 며칠 동안은 지난 5년이 의미 없게 지나간 게 아닌가... 공허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5년간 일을 하면서 나랑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느꼈던 시간 덕에 더 이상 자영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영업 코스 중에서도 하필이면 코로나라는 큰 장애물이 있는 길을 지나와서인지, 너무 지쳐있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스물일곱의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었다. 그러다 그때도 '취업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어찌어찌 시작한 파스타 가게 알바가 일이 되었었다.

서른둘의 나는 여전히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번에도 '취업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하나 푹풍 검색을 하고, 인강을 들어보려고 했다.


 '왜 달라진 게 없어, 난?'

아무것도 내 앞에 놓여진게 없는 상황이 5년 전과 똑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과감한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뭘 하든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블로그며, 웹소설이며, 습작 대본이며 이것저것 무작정 썼다.

이력서도 썼다. 이제 드라마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매일 서빙할 때도 잘 버텼던 어깨가 뻐근해졌다.

하루종일 같은 자세로 글을 써서일까? 뭐, 이 정도로 아프다고? 처음엔 당황했지만

차차 몸이 적응하자 이는 기분 좋은 통증이 되었다.

마치 어깨 통증이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된 것 마냥.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빠르게 드라마 보조 작가가 되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다.

순식간에 많은 것이 바뀌어간다.


 5년 동안의 시간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와 보낸 시간들이 내가 마음을 먹게 만들어줬다.

과거의 내가 했던 아픈 실패들이 오늘의 내가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제 무서울 게 없다. 다른데 눈 돌리지 않고 무작정 시작해볼 수 있는 단호함이 생겼다.


 길들여진 물길을 틀어야 했다. 아마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면 꽃구경도 하고 나들이도 다녀오다,

결국 방향을 틀지 못했을 거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물길을 틀자 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빠른 유속에 깜짝 놀랄 만큼 물이 밀려들어왔다.

수영을 배워둬서 다행이다. 달리기를 하는 습관을 들여서 다행이다.




 "드라마 보조 작가가 되었고, 이제 서울로 이사해."

 하루 정도 고민하다가 나의 지난 연인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그냥 그 누구보다 기뻐해 줄 것 같았다. 예상대로 그는 기뻐해주었다.

그는 많은 건 변하겠지만 날 응원하는 건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때는 그와 함께하며 막연한 꿈을 떠드는 것만으로도 충만했던 시간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드라마 작가라는 꿈을 꿔온 나인데, 그 꿈을 위해 나아가는 것보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행복했었다. 결혼을 하면 내 작업실을 만들자고 했었다.

그때 행복 회로를 돌리며 말했다. 언젠가 수상 소감을 말할 날이 오면,

 "언제나 날 믿고 응원해준 남편 고마워요."라고 하겠다며 웃었었다.


 전화로 그가 나중에 성공해서 수상소감을 말하게 되면 뭐라고 할 건지 다시 물었다.

 "날 한때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사람 덕에 이 자리에 왔어요,라고 해야겠다."

 라고 내가 말했다.

이별 후, 어떤 날은 가시가 잔뜩 돋아 그를 아프게 만들고 싶어 진다.

그래서 그를 세게 긁어버렸는데, 그는 잠시 울음을 삼킨 후 고맙다고 했다.

장하다고, 넌 분명히 그 자리에 설 테니 꼭 그렇게 말해주라며.




 지나 온 내 시간들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과거이고 굳이 말하자면 '실패'라고 기억될 시간이지만,

참 많은 걸 배웠다.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동안 받은 응원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를 만들어 줬다.

결국 내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게 그의 계속되는 응원 속 진짜 메시지라는 걸 안다.

가끔은 미워 죽겠지만, 나도 그 사람을 응원한다. 진심이다.


우리는 서로를 응원한다.

너와 나를 응원해.

몇 번의 응원의 말이 쌓여 얼마나 단단한 사람을 만드는지 우리는 배웠으니까.

서로가 각자의 세상에서 더 단단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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