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라는 물음에 마땅한 대답이 없을 때
요즘 취미 찾기에 유난히 열심이다. 지난해 오래도록 번아웃을 겪으며 올해 세웠던 목표 중 하나가 일과 관련 없는 취미를 찾는 것이라서.
나는 남는 시간에 주로 무언가를 읽거나 쓰는데, 책 읽기와 글쓰기 참 좋아하지만 자꾸만 일과 관련해서 쓰거나 읽을 때도 비문학 아티클과 책만 편식해서.. 그래서인지 계속하면 오히려 내게 남은 에너지를 모조리 쓰게 되어 기고 요청이 오거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있더라도 속도를 조절하려 노력 중이다.
운동 중에서는 서핑을 정말 좋아한다. 개인 서핑 보드와 수트를 살만큼 서핑을 좋아하고 특히나 바다를 사랑하지만 한철 계절에만 하다 보니 몇 년째 아직 초보 수준이라 어디 가서 취미예요라고 말하기가 조금은 부끄럽다. 필라테스, 요가, 헬스는 내게 아직 취미라기보다는 생존용이다.
새로운 곳에 가거나, 공연과 전시를 보는 건 좋아하지만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팬이었던 적 없어서일까? 누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 게 없었다. 또 가끔 무언가를 술술 설명해 주고 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멋있고 부러웠다. 그게 음악이든 위스키든, 무엇이든.
그래서 올해는 생산성과 정말 관련 없으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취미가 뭘까? 생각하며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뭐든 해봐야 아는 법이니까. 또 작년의 경험을 통해 하루 종일 일만 하고 내 여유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보다, 일단 내 정신과 몸이 즐겁고 건강해야 내가 맡은 일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첫 번째 시도, 공연 보기
매주 금요일 저녁을 ‘자체 문화데이’로 정하고 미리 일정을 잡고 예약을 해두는데 생각보다 정말 좋다. 월-목 동안 일에 조금 지쳐도 금요일이 기다려지고 일할 맛도 난달까. 또 금요일 저녁에 다 놀고나도 주말이 이틀이나 남아 있어서 더 좋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되어 가본 재즈바 Entry55는 생각보다 입장권도 저렴했고 공연도 너무 즐거웠다. 처음 간 날 공연은 '김순영 재즈탭 밴드'의 공연이었는 데 재즈에 탭댄스를 접목해서 한 시간 내내 정말 재밌었다. 그날, 돈을 많이 써야만 좋은 공연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벌써 두 번 정도 다녀왔는데, 두 번째로 봤던 공연은 '이규재 라틴재즈 올스타' 공연이었다. 라틴재즈라는 또 새로운 재즈 장르를 알게 되었고 콩가를 비롯한 온갖 타악기를 구경해 볼 수 있었다. 매번 공연 라인업이 다르고 재즈바 내에서 외부 음식도 먹을 수 있다. 공연을 즐기면서 자리에서 맥주, 와인, 하이볼 등의 다양한 술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더 신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달까.
그리고 이밖에도 틈틈이 시즌별로 뮤지컬이나 전시회도 알아보면서 다니고 있다. 재밌어 보이는 영화가 있으면 공연 대신 영화도 본다. (이번에 부르노마스 슈퍼콘서트 예매는 실패해서 참 슬프다..)
두 번째 시도, 와인
회사 근처 와인바 Delf에서 양윤주 소믈리에가 직접 화이트와인 클래스를 한다길래 얼른 신청했다. 평소였으면 클래스 가격이 저렴하진 않아서 고민했을 것 같은데, 예전에 맥주를 배우고 나서 맥주 취향도 찾고 최애 술이 됐던 기억이 있어서 신청했다.
또 와인바를 가거나 양식을 먹으러 가서 와인을 골라야 할 때, 꽤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잘 몰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와인을 먹거나 주문할 때 '엇 나는 와인 잘 모르는데'하며 쭈뼛쭈뼛 고르지 말고 한 번 배우고 당당하게 골라봐야지! 싶었다.
와인클래스는 기대만큼 좋았다. 먼저 소믈리에님께서 준비해 주신 레몬, 라임, 자몽, 블루베리 잼 등의 여러 아로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후각 훈련을 했다. 연습을 하고 나니까 처음에는 잘 구분하지 못했던 화이트 와인 샤도네이, 소비뇽 블랑, 리슬링 3종을 구분할 수 있었다. 또 와인은 항상 치즈, 하몽 안주가 클래식이라 생각했는데 한국식 치킨이랑 먹어보는 것도 꽤나 색다르고 편견을 깨는 경험이었다.
다음에 와인을 고르는 자리가 생긴다면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잘 골라보거나 추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와인도 앞으로 조금씩 마셔보고 배워보고 싶은 카테고리다.
세 번째 시도, 차
사실 차는 원래 즐겨마시는 음료다. 유럽 여행 중에 집 앞 텃밭에서 각종 다양한 허브를 키우던 가족이 찻잎을 바로 따서 허브 차를 내어준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아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말했더니 엄마가 그때부터 집 앞 텃밭에서 각종 허브를 키우신다. 로즈메리, 애플민트, 캐모마일 등을 키우시더니, 인터넷과 책으로 공부하며 열심히 차를 말리고 덖는 것도 공부하셨다. 그래서 덕분에 몇 년째 맛있는 무농약 제주 허브차를 마셔오고 있다. 특히 봄철에 엄마가 여린 쑥 잎을 골라 덖어주시는데 쑥차가 정말 맛있다.
하지만 차를 집에서만 먹었지 따로 다도를 배우거나 차를 다양하게 시음해 본 적은 없는데 이번에 오므오트에서 하는 티 세레모니에 회사분들과 참여했다. 총 네 가지 차를 내어 주는데, 그저 다양한 차 맛만 보는 것이 아니다. 시즌별 주제가 있고 네 종류의 플레이트의 컨셉도 모두 달라, 내어주실 때마다 하나씩 설명해 주시는데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이번 시즌의 컨셉은 화폐로 만원 권과 천 원 권에 담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하셨다고 한다. 사실 화폐를 쓰면서도 한 번도 그 안에 그린 '일월오봉도', '계상정거도' 등의 그림과 뜻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는데 같은 화폐인데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시즌별로 작가님과 함께 다기, 유리잔 작업도 하신다고 하는데 그 매력에 반해 티 세레모니를 들은 날 다기 세트를 사버렸다. 앞으로 다도를 조금씩 배워서 술 안 마시는 사람들과 차 모임도 해보면 좋겠다 싶은데 과연 팽주가 될 수 있을는지?
직장인으로서 취미를 찾으려 시도해 온 몇 개월이 꽤나 즐겁고 행복했다. 앞으로도 취미를 찾기 위한 시도, 혹은 취미 생활을 이어가려고 한다. 나와 내 삶을 위해. 또 다른 시도를 하거나 깊이가 깊어진다면 그때마다 글을 남기려고 한다.
취미를 찾는 나의 여정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이전의 나처럼 조금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직장인에게, '나도 취미를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