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로웠다.
그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오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로, 아무에게도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고, 누군가의 한숨을 대신 들어주었으며, 필요 이상으로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숨이 막히는지 모르겠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들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었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은 대체로 빠르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도 계속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찌르며, 결국은 스스로 답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종류의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을 몇 날 며칠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의 말이 오해로 받아들여졌던 날, 진심이 왜곡되어 마음 한쪽이 오랫동안 쑤시던 순간, 가까웠던 친구가 낯설게 느껴졌던 때,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느라 정작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못하던 시간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너무 잘 들어줘. 그래서 다들 너한테 기대는 거야."
당시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마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훈장처럼 느껴졌다.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부드러운 사람... 그런 수식어들은 마치 나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인생의 무게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자, 그 말의 진짜 의미가 서서히 드러났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정중하게 포장된 경고였다. '너는 네 마음보다 남의 마음을 먼저 챙기느라 지쳐가고 있다'는 신호였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나는 조금 더 뒤로 물러나 있었고, 누군가 서운해할까 봐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늘 먼저 연락하고, 먼저 맞추고, 배려했다. '먼저'라는 두 글자는 마치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주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의 지침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내가 먼저' 움직일 때, 그 마음의 에너지는 대부분 내가 감당해야 했다.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며 초조해했고, 내 배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더 노력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사람 사이에 서있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한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내 마음이 너무 약한 걸까?'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이상한 걸까?'
그러던 어느 날, 큰 사건을 겪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가 힘들었던 건 관계 자체가 아니라 그 관계 속에서 한 번도 나를 중심에 둔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마음속의 혼란이 해석되기 시작했다. 사람 사이가 힘들어진 건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를 잃고서도 계속 관계만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20대 초반,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학교에서는 같은 과 친구가, 동아리에서는 취미가 맞는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면서 고생을 함께하는 동료가 생겼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멀어지는 일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변화에 개방적이었다.
하지만 20대 중후반을 지나 30대에 가까워지자,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계는 더 이상 무한정 늘어나지 않았다. 지킬 수 있는 만큼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불편한 마음을 억지로 삼키며 버티는 관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 '아는 사람'의 경계가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해서 마음이 닿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의 삶의 속도가 달라지자 자연스레 멀어졌고, 그 멀어짐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변화가 아프고 서운하게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관계란 유지되는 것보다 자연스레 정리되는 것에서 오는 평온함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평온함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진정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주는 달콤함을 좋아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편안함을 주고, 신뢰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꽤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뒤편이 있었다. 좋은 사람에게는 참 많은 것을 기대한다. 한 번의 호의는 두 번, 세 번의 호의로 이어져야 하는 암묵적 규칙이 생기고, 배려 또한 자연스레 이어져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따랐다. 나는 이러한 기대들을 묵묵히 감당하며 스스로를 점점 작게 만들었다. 내 경계선은 흐려졌고, 내 필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좋은 사람'이 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편한 사람이 된다는 건, 나의 감정보다 상대의 편의를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다. 내 시간보다 남의 시간을, 내 마음보다 남의 마음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관계는 균형을 잃고, 결국 한쪽만 점점 지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침을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오히려 "원래 그렇게 잘해주던 사람이었는데..."라는 말만 남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멀어짐'을 관계의 실패라고 생각했다. 말이 잘 통하던 사이가 갑자기 어긋나고,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 조금씩 멀어지고, 가까웠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면, 뭔가 잘못된 것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거나, 내가 변한 탓이라고 자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른 관점을 배우기 시작했다. 멀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매일 성장하고, 조금씩 변화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듯이 관계도 그렇게 움직인다는 것을. 어떤 관계는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의미를 주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내 인생의 한 장을 함께 채우고 다른 책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것은 배신도 실패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삶이 흐르는 방식이다.
내가 더 이상 그 관계 속에서 나다워질 수 없다면, 그건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 빈자리는 새로운 성장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하니까.
관계에서 '나'를 먼저 두는 작은 연습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평생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아왔는데, 갑자기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죄책감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변해갔다.
누군가의 감정보다 내 감정을 먼저 살피는 연습.
상대의 요청보다 내 마음의 여유를 먼저 확인하는 연습.
모든 대화에서 내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 과감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연습.
예전 같았으면 이런 행동들이 미안함과 불안함을 불러왔겠지만, 지금은 다른 감정이 먼저 온다. 그것은 바로 확신과 평안이다. 나를 지키지 않고서 유지되는 관계는 결국 나를 잃게 만든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이후부터다.
관계는 결국 균형이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과는 자연스레 편안함이 생기고, 그 편안함 속에서 관계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억지로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몰라도 되는 마음을 억지로 헤아리지 않아도 되는 사이.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각자의 공간을 지켜주는 관계.
그런 관계가 얼마나 귀한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남을 위해 빈 의자를 마련하라'는 교훈을 듣는다. 그 말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남을 위한 의자는 마련해도 정작 나를 위한 자리는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 마련한 의자에 앉아, 그들이 와주기를 기다리다 지친다. 그들이 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너무 많이 오면 압박받는다.
나는 이제 다른 접근법을 배우고 있다. 먼저 나를 위한 자리를 만드는 것. 내 마음에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가 충분히 안정되고 아름다워졌을 때, 비로소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렇게 하니 관계의 역학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상대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채워진 상태로 관계에 들어갔다. 그래서 주는 것에도, 받는 것에도 더 진심일 수 있었다. 과잉 배려도, 기대도 사라졌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다.
이 프롤로그를 쓰는 동안, 나는 마치 오래 전의 나 자신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 시절의 나,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며 "괜찮아"라고 말하던 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나치게 애쓰던 나, 결국 지쳐서 사람들로부터 숨어버리고 싶어 하던 나.
그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사람 때문에 힘들게 살아온 게 아니야. 사람 속에서 너를 잃어버려서 힘들었던 거야. 그리고 그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어왔어."
이 글은 바로 그 시절의 나에게 건네는 편지이자, 지금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 사이에 서 있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는 당신에게, 누군가에게 기대어주기보다 스스로를 먼저 챙겨야 하는 시기에 놓인 당신에게, 더 이상 '좋은 사람'으로만 살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멀어짐이 두려워 관계를 붙잡아온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지쳐도 괜찮습니다. 혼자 있고 싶을 때도 괜찮습니다. 관계에서 뒤로 물러서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먼저 살펴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상처받았던 그 마음은, 결국 당신 자신을 더 잘 보호하라고 알려주는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관계에서 힘들어했던 것은, 당신이 무감각하거나 냉담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깊게 공감하고, 너무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 진심과 공감능력은 결코 약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가장 큰 힘입니다. 다만 그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올바른 대상에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할 뿐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 힘을 향해야 할 대상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사람 사이에서 상처받았던 마음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것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 발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건강한 관계를 위한 귀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 속에서 나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진정한 나를 찾는 길도 관계를 통해 열립니다. 단, 그것은 나를 잃어버린 채로 맺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발견한 상태로 맺는 관계여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만약 당신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공명한다면, 그것은 당신도 이미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어쩌면 첫걸음을 내딛는 중일 수도 있고, 중간쯤 와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더 이상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사이에 서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
관계 속에서도 나다울 수 있는 용기,
타인을 배려하되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지혜.
이것들이 바로 이 브런치북과 함께 탐구해나가고 싶은 주제들입니다.
당신의 여정이 어디에서 시작되든, 제가 써온 글들이 작은 동반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관계의 중심에서 본인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함께 걷기 시작합니다.
매주 수, 일 연재가 될 예정입니다.
연재글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쓰일 예정입니다. (오해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