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우리의 말이 통하지 않기 시작할 때

이해받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by 김지윤

"제발 날 이해해 줘"라는 간청이 담긴 장문의 메시지를 쓰고 또 지우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서른이 가까워지자, 친구와의 대화에도 '설명'이 필요해졌죠.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어요.


내 마음을 끝까지 설명해야만 하는 관계는, 이미 지치게 만드는 관계라는 걸.


'설명'에서 '침묵'으로 발걸음을 돌린, 서로 다른 파장을 인정하기 시작한 서른 준비기의 첫 기록입니다.




서른이 가까워지자, 어느새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설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내 심정을 좀 이해해 줬으면…”


한때는 눈빛만으로도, 한두 마디만으로도 통했을 것 같은 사이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의 무게를 전달하기 위해선 문장을 더 늘려야 했고, 상황을 더 자세히 묘사해야 했으며, 때로는 나의 과거까지 끌어와 증명해야만 했다. 마치 법정에서 유리한 증거를 늘어놓는 변호사처럼. 그런데 재판장은 늘 나였고, 피고도 늘 나였다.


그리고 그 ‘설명’이 길어질수록, 우리 사이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설명은 다리가 아니라, 해자가 되어버렸다. 내가 더 깊게 파면 팔수록,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더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


·


그날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 셋이 모인 자리였다. 결혼을 앞둔 지영이의 신혼집 이야기, 회사에서 승진한 수진이의 바쁜 일상이 오갔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나에게로 화제가 넘어왔다.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취업 준비는? 전에 말했던 자격증은?”

“음… 사실 요즘은 조금 쉬면서 방향을 다시 생각 중이야. 그 자격증보다는…”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진이가 말을 가로챘다. 그녀의 표정은 익숙한 걱정 어린 미소였다. 그 미소는 그동안 수많은 설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거 아니야. 나라도 좀 봐, 이렇게 바쁜데도 계속 도전장 내는 거지. 네 나이에 쉰다는 건, 사실 도망이라는 뜻이야.”


순간, 공기가 무거워졌다. 카페의 따뜻한 커피 향기와 달콤한 디저트 냄새가, 갑자기 차가운 배경 소음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말은 응원의 틀을 쓰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네 방식은 틀렸어’라는 확신이, 그리고 ‘나는 더 잘하고 있어’라는 무의식적 과시가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마치 유리 조각을 밟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수진아, 나도 도전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속도가 다른 거야. 요즘 마음이 좀 혼란스러워서, 서두르기보다는 제대로…”

“마음이 무슨 마음. 다 핑계야. 우리 나이에 마음 따위 기다려주는 세상이 어딨 어?”


그녀는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친근함의 제스처였지만, 그 순간 나의 몸은 살짝 굳었다. 그 한마디에, 내가 몇 주, 몇 달 동안 마음속에 모아 온 모든 단어들 ‘번아웃’, ‘재정의’, ‘내적 성장’이 무너져 내렸다.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내 말을 ‘들으려’ 하는 게 아니라, ‘잘라먹으려’ 하는구나. 내 이야기는 그녀에게 하나의 ‘케이스’였고, 그녀는 이미 판결을 내린 판사였다.


옛날, 스물두 살의 나였다면 무엇을 했을까? 나는 고개를 숙이며 그 질문을 했다. 그때의 나는 분명 눈물이 핑 돌았을 거다. 그리고 그 눈물을 참으며, 목소리를 떨리게 만들어서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거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결정했는지 들어봐’, ‘너도 한번 내 입장이 되어봐’, ‘나도 힘들어’, ‘나도 노력하고 있어’. 설명의 고리를 더 길게, 더 촘촘하게 만들으며,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지기를, 그녀의 눈빛에 동정이나 이해가 스치기를 간절히 바랐을 거다. 그게 친구 사이의 ‘의무’라고, 진정성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스물여덟 살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큰 바람이 잔잔해지듯, 모든 감정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냥 미소를 지었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 순간이 정말 이상했다. 설명하지 않으니 오히려 속이 텅 비고, 그 빈 공간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나의 가치를, 나의 선택을, 그녀의 승인 아래 두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나의 인생이 그녀의 논리 체계에 포섭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방감. 그것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거대한 체제로부터의 이탈이었다.

·

집에 돌아와서도 그 평온함은 계속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부터, 아니 집에 와서도 몇 시간을 그 말 한마디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가 게으른 건가?’,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수진이는 계속 성장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건가?’ 자책과 열등감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댈 테다. 그리고 결국 밤중에 핸드폰을 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음성메시지를 남기거나, 감정이 가득 담긴 장문의 카톡을 보냈을 거다. 그것은 다시 한번 ‘설명’이었고, ‘변명’이었으며, ‘구애’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집이라는 안전한 공간에 들어서자, 오히려 카페에서 느꼈던 그 평온함이 더 선명해졌다. 나는 진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배가 고를 뿐이었다. 저녁을 해결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확인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마치 실험하는 과학자처럼 호기심이 동했다. ‘과거의 나’라면 지금 무엇을 했을까? 그 상상력의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 들고, 수진이에게 보낼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진짜로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건 그저 유령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였다. 과거의 나, 그 설명에 목말라하던 유령에게.


수진아, 오늘 자리에서 내 말을 마저 못 끝냈는데. 사실 요즘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어. 취준 실패하고, 자꾸만 비교되고… 네가 바쁜데도 도전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자괴감도 들고. 그런데 네가 ‘핑계’라고 하니까 정말 마음이 아팠어. 나도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여기까지 쓰고 멈췄다. 그리고 이 문장들을 천천히, 한 줄 한 줄 다시 읽었다. 온통 ‘나’로 시작하는 문장들. 하지만 그 안에는 ‘나’가 없었다. 있던 것은 오직 ‘수진아, 제발 날 봐줘’, ‘수진아, 날 인정해 줘’, ‘수진아, 날 불쌍히 여겨줘’라는 외침뿐이었다. 이것은 설명이 아니라 애원이었다. 나의 취약점을 드러내며 상대의 연민을 구걸하는, 굴욕적인 교환이었다.


나는 그 모든 문장을 삭제했다. 깨끗한 빈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썼다. 이번에는 달랐다.


수진아, 오늘 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속도대로 가고 싶어. 이해해 주길 바라.


이것도 지웠다. ‘이해해 주길 바라’라는 끝맺음이 여전히 ‘허락’과 ‘승인’을 구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마음은 놀랍도록 가벼웠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깨달음이 스쳤다. 진정한 이해는 간청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은 파장에 놓였을 때, 같은 고도를 날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수영장에서 물결을 맞추듯이. 파장이 다르다면, 고도가 다르다면, 아무리 고함쳐봤자 소음만 커질 뿐이었다. 나는 그저 내 파장에 맞는 사람을, 내 고도에 있는 사람을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진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그녀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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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수진이와의 관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모든 마음을 털어놓고 모든 고민을 나누는 ‘한 몸’ 같은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 기대와 환상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가벼운 일상을 나누는 친구’. 맛집 정보, 유튜브 영상, 공통 지인의 소식, 드라마 이야기. 그런 가벼운 이야기들만 오가는 사이. 그 안에도 웃음과 위로는 존재했지만,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판단하거나 수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축소가 아닌, 재정의였다.


처음에는 서운했다. 가끔 그녀가 SNS에 올리는 성공적인 모습을 보며, ‘예전 같았면 이걸로 또 한 시간 통화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가슴이 쓰렸다. 한때는 내 마음의 구석구석까지 다 털어놓으며, 서로의 상처에 짠 소금이 되어주던 사이였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서운함보다는 편안함이 더 커졌다. 무리하게 맞추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주는 안도감. 그것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었다. 거대한 기대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가벼운 만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서른을 앞둔 나에게 찾아온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내 마음을 끝까지 설명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관계는, 이미 그 자체로 지치게 만드는 관계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 나 자신을 소모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두기로 했다. 애쓰는 대신 흘러가기를, 설명하는 대신 침묵하기를, 이해받으려 발버둥 치는 대신 편안한 거리를 두기를 선택하는 법을 말이다.


아직은 서툴다.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에, 의도치 않은 판단에 여전히 가슴이 조여올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픔을 자책의 연료로 쓰지 않는다. 그 고통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설명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짜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마음속에 새기는 문장이 생겼다. 칼로 살짝 새기듯이.


‘이 사람과 나는, 아마 이 주제에 대해서는 마음의 파장이 다른 사람이구나.’

‘우리는 서로 다른 고도를 날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을 새길 때마다, 오히려 관계가 선명해진다. 그 사람 전체가 아니라,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어긋난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씩, 나는 그 어긋남을 메우려 애쓰는 대신, 그 어긋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중이다.


오늘도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말이 꼬여 가슴이 답답하다면,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긴 설명, 이 정교한 변명, 이 감정에 찬 호소, 이것들이 정말 ‘소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구애’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구애가 필요하지 않은 관계로, 조금씩 발길을 돌려보는 거다. 그것이 나를 잃지 않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




매주 수, 일 연재가 될 예정입니다.

연재글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쓰일 예정입니다.(오해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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