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없이 지질했던 나의 첫사랑
사지를 늘인 네 주윌 맴돌다
따스한 햇살에 행여 네가 녹아내릴까
작은 그늘을 드리우고
검은 구슬에 비친 너의 세상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널 닮은 이가 이기지 못할 짐을 인 양
차마 고개 들지 못하고
슬픔을 떨구며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까
시간의 간극조차 잊어버린 채
흘리고 간 그의 슬픔을
고스란히 주워 네 눈에 담은 탓으로
반질반질 윤 나는 네 눈에 비친 나조차
쉼 없이 일렁였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 덩그러니 던져진 듯
때꾼한 네 눈에 귀를 포개고
가만 되내었다
네 오른 세상은 온전한 내 것이길
닮은 건 체온뿐이니
서로에게 따스함이길
짝사랑을 자인한 순간은
잔인하게도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든 향하는 마음이 쌍방이면 얼마나 좋을까.
한 사람을 향하는 마음의 무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해졌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탄식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들어줄 사람 없는 말은 공허했고 허황된 바람이라 무기력했다.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을 푸념처럼 늘어놓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이에게 내 마음이 너를 향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 그 마음을 접으라고 말할 자신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 자격 운운하며 스스로 을이 되길 자처하는 꼴이라니.
시소에 혼자 앉아 하늘로 솟은 반대편 시소 끝을 바라보듯 내 마음의 무게로만 가득해 혼자 널을 뛸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초라해지는 스스로를 괜찮다 채근하며 원망하는 날들을 반복하다 하루는 이전과는 다른 산만한 위로라도 이 또한 너를 향한 나의 마음임을 알아줬으면 욕심내는 모습이 애처로워지기도 했다. 좁디좁은 마음의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려 애쓰는 모습이 낯설고 가여워 남몰래 우는 날들도 잦아졌다.
인내와 배려가 전부인 사랑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제자리를 맴돌며 방황하다 벼랑 끝에 서기로 마음먹고 크게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너 좋아해.
차곡차곡 쌓아온 마음은 더할 나위 없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마음의 수면 위로 출렁출렁 넘실대는 말 한마디, 언제든 기회만 된다면 내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번지 점프대 위에 선 채 반 걸음을 못 떼고 망설이는 사람마냥 어렵기만 했다. 너무 오래 마음에만 담은 탓이려니 곁에 있는 그 사람도, 한겨울의 추위도 잊은 채 텅 빈 공원을 걷고 또 걸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마주 볼 자신이 없어 나란히 걷기만 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한 마디에 스스로 입을 틀어막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오한으로 오들오들 떠는 내게 외투를 걸쳐주고는 말없이 웃어 보이던 그를 향한 내 짝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루하루가 꽃길일 거라 믿으며 시작한 연애는 때론 짝사랑보다 처절한 고행이었으나 먼저 농익은 마음이라 사랑도 조금씩 여물어 갔다.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그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스무 살의 짝사랑이라 원 없이 지질했고 어리석었다. 주제를 모른 채 상대의 미련한 마음까지 위로하는 아둔함이었을지라도 누군가를 마음 다해 사랑하는 일은 잇속을 떠난 순수한 치기이므로 아름답고 낭만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