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어둠 - 도현신

by 지유

르네상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본주의,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활 등... 나는 대부분 긍정적인 이미지이다. 특히 바티칸 여행에서 만났던 회화, 조각 작품에서 받았던 감동으로 인해 그 동안 르네상스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많았고, 또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평소의 그런 감정으로 인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중세에 대한(상대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많으면 중세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태도가 깊어지게 되는 것 같다.) 오해도 조금은 해소가 되었고, 르네상스에 대해 잘 드러나지 않던 이면을 보고 나니,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기회가 된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를 오해하고 있다면 아마 르네상스의 본거지인 이탈리아는 예술이 발달하고,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암흑의 역사에서 빛의 역사로 넘어갔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르네상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은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총 11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예술, 약탈, 해적, 전쟁, 흑사병, 종교개혁, 과학, 마녀, 노예, 제노사이드, 제국주의



11개의 키워드를 통해 그동안 알고 있던 유럽 중세와 르네상스에 대한 내용을 먼저 제시해보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 또는 오해에 대한 내용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우선 첫번째 키워드는 예술이다. 르네상스 시절 회화, 조각 등의 예술이 화려하게 꽃피웠던 지역이 이탈리아의 피렌체이고, 그 이유는 메디치 가문의 아낌없는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메디치 가문, 특히 로렌초는 도시를 마음대로 다스리며 사람들이 자신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화려한 행사를 개최하며 예술가를 후원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로 시집을 가 왕비가 된 로렌초 데메디치 2세의 딸인 카트린 드메디시스는 신교도인 위그노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끔찍한 성바르톨로뮤 축일의 학살(1572.08.24)로 불리는 살육까지 저지른다.


아마도 르네상스 시절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화려하게 예술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메디치가문과 같은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실상은 후원자들이 자신의 실정을 가리거나 도시의 금고를 마음대로 쓰고 사치와 허영을 부리기 위해 예술가를 후원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 같다. 즉,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을 후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두번째 키워드는 약탈이다. 우리가 르네상스의 본거지로 알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이다. 평화롭게 예술활동이 이루워졌을 것 같은 이탈리아는 사실 약탈과 전쟁이 빈번히 일어나고, 매우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웠던 사회이며 특히 그 혼란의 중심지가 바로 로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로마 교황 간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게 지속된 상황에서 16세기 초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력이 팽창하면서 로마를 공격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합스부르크에 소속된 용병은 란츠크네히트로 개신교를 믿으며 잔인하게 약탈을 하기로 유명한 용병들이었다. 이렇게 기독교 군대에 의해 로마가 함락되고 약탈을 당했다는 사실은 교황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리고 예술가들이 로마교황청의 원조를 받기 어렵게 되어 프랑스나 베네치아 지역으로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 떠나게 되었으며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 갈등이 심화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세번째 키워드는 해적이다. 보통 16C 신항로의 개척으로 인해 지중해 무역이 쇠퇴하게 되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아 르네상스가 몰락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바르바리 해적단이 지중해에서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게 되어 지중해 무역이 쇠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바르바리 해적단이란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왕국이 1492년 스페인 군대에 의해 멸망하면서 수많은 무슬림이 북아프리카로 도망치게 된다. 이러한 무슬림 난민들은 스페인과 기독교를 증오하게 되고, 오스만 출신인 오루크와 히지르라는 해적 형제을 만나면서 북아프리카 해안 지역에 정착하고 항해술을 익히며 유럽 기독교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고 해적이 되었다.
바르바리 해적단의 노략질로 지중해 무역이 힘들게 되자 아마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대항해 시대를 열게된 것으로 보인다. 바르바리 해적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접했는데 아마도 지중해 무역이 쇠퇴한 원인으로 신항로 개척이 강조된 것은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네번째 키워드는 전쟁이다. 두번째, 세번째 키워드와 상관이 있는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공통적으로는 르네상스하면 편안하게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하고 암흑의 시대를 벗어나 합리적인 사고를 지니며 이성과 철학이 발달한 시대로만 여기지 말고, 유럽 각지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아수라장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즉, 이성적인 사고와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가 주류를 이룬 합리적인 시대라는 르네상스에 대한 환상을 덜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각인 것 같다.





다섯번째 키워드는 흑사병이다. 흑사병하면 유럽의 중세를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흑사병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대는 14C이고 1770년 모스크바에서 흑사병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흑사병이 중세에만 유행했던 것이 아니라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사병이 유행을 한 원인으로 중세의 사람들이 목욕을 잘 하지 않아서 흑사병이 크게 유행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중세에도 공중목욕탕이 있고, 목욕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었으며 흑사병이 유행하게 된 원인은 과도한 인구 집중에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흑사병이 유럽에서만 유독 유별났던 것이 아니라 중국, 이집트 등에서도 유행했었기 때문에 흑사병을 통해 중세 시대를 폄하하는 것은 옥시덴탈리즘의 단골 소재라는 것이다.


어쨌든 르네상스 이후 유럽 경제가 발전하면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모여든 노동자들이 증가하며 도시의 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이들을 수용할 상하수도 시설이 부족하여 도시의 위생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며 흑사병이 더욱 심해진게 된다. 즉 어떻게 보면 르네상스 이후 더욱 불량해진 위생상태는 중세보다도 비위생적이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섯번째 키워드는 종교개혁이다.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약 1000년간 통일되어 있던 서유럽이 종교개혁으로 크리스트교 세계의 통일성이 무너지고, 이후 구교와 신교의 종교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즉 종교개혁이 면죄부를 판매하며 부를 축적해가는 부패한 교회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개신교 종파들이 자기만이 진짜 기독교라고 주장하며 다른 교파를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열렬한 청교도 신도인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같은 경우 예술 분야에서 종교적인 것만 허용하고 표현의 자유와 문화를 억압하다. 그리고 성경에 몰입하여 경전 구절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태도로 인해 오히려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단순히 이성에서 비롯된 것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일곱번째 키워드는 과학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와 과학은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신 중심의 사고방식이 지배했던 중세보다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고 사람의 본성을 적극적으로 탐구한는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세 가톨릭교회, 특히 수도원에서 천문학, 지리, 화약과 같은 지식의 축적과 전달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 당시 모든 인구가 기독교를 믿던 시절, 유아세례 명단을 통해 인구를 파악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학과 교회의 대립적인 관계로 여겨지는 갈릴레오에 대한 면을 살펴보면 갈릴레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었으며 그의 딸은 수녀였다고 한다. 그리고 끝까지 지동설을 주장해서 교회로부터 박해를 받은 것처럼 알려진 것도 사실이 아니며 단지 당시 천문학의 수준을 봤을 때 지동설을 입중하기에 역부족이었고, 지동설은 이론이 아닌 가설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근대과학의 선구자인 뉴턴이 연금술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는 점은 과학과 이성, 종교가 적대적이고 대립적인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 수도원의 역할과 갈릴레오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안겨주었다. 유럽의 중세는 미개하고 암흑의 시대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부분이었다.





여덟번째 키워드는 마녀이다. 중세시대 하면 마녀와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로 마녀사냥은 15C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중세의 교회는 워낙 권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마녀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오스만 제국의 침략과 흑사병의 공포, 개신교의 출현으로 인해 가톨릭 교회의 위상을 재정립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을 때부터 마녀 사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종교를 향한 광신적인 믿음에서 비롯한 일로 여겨지는 마녀사냥은 실제로는 사회 혼란으로 종교적인 믿음이 점차 약해지자 교회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홉번째 키워드는 노예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흑인 노예 역사의 시작은 르네상스이다. 유럽의 노예는 원래 백인계 슬라브인(slave의 어원)이었는데, 대항해시대에 식민지에서 농장이나 광산을 관리할 노예가 필요해서 인디오를 노예로 부렸으나 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든 인디오들이 많이 죽게 되자 아프리카 흑인을 데리고 노예 매매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예로 팔렸던 흑인들은 가축으로 취급 받으며 오랜 시간 동안 멸시와 차별을 받게 되었고, 여전히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시작을 16C의 노예 매매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열번째 키워드는 제노사이드이다. 제노사이드라고 하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을 떠올리지만 이미 이전에 아메리카대륙에서 벌어진 원주민 살육을 빼놓을 수 없다. 르네상스가 부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대륙에서 들어온 황금,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7C에는 과도한 금채굴로 인해 신대륙의 금 산출량도 줄게 되었는데, 이 때 신대륙의 금과 은에 의존하고 있던 스페인 경제도 내릭막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화려하게만 보이는 빛의 시대 르네상스의 번영 이면에는 신대륙의 원주민 학살과 아메리카 문명의 파괴가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플랜테이션을 통한 단일 경작을 실시하여 오늘날까지 중남미 경제에 큰 문제점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열한번째 키워드는 제국주의이다. 자원 획득과 새로우 시장의 개척을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독점자본주의가 발달을 하게 되고, 축적된 부를 통해 새로운 투자 지역을 찾는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과 대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르네상스가 찬란한 이성의 시대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18세기 계몽주의 서구 지식인들이 종교를 폄하하고, 이성을 중시하면서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은 고대 그리스, 로마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식민지 개척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모습을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과 비슷하다고 여겨 좁은 유럽 안에서 기독교라는 신앙에 맹목적으로 매달린 중세인들의 모습을 미개하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한다.






11가지 키워드를 통해 르네상스의 이면을 살펴보았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고,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으로 인식되는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인 내용을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르네상스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중세에 대한 오해를 없앨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최근에 서양에서는 이러한 추세로 르네상스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세계사 문제집을 펼쳐보니 이 책에 소개된 내용 중 일부분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내용의 구조가 종합적으로 전달되어 있지 않아서 르네상스 시대의 빛과 그림자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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