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겠습니까?

상행인지 하행인지는 말 안 했다.

by SooAh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릴 때 와는 다르게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적인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처음 작가를 하겠다고 서울행을 결정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 사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걸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도 정말 기대가 됐다. 거기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한 공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가족들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나의 서울행을 걱정했지만 나는 그런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기대와는 다르게 힘든 생활 때문에 많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버티고 싶었다. 버티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행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용감했던 것 같다. 안전함 보다는 모험을 선택하고, 그 모험에 성공했을 때 내가 느끼는 희열을 즐겼던 것도 같고.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아주 많이 다르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미 하던 일을 지역만 바꿔서 해보려는 건데 무섭다.

이 곳에 와서 좋았던 일을 세어보라고 하면 셀 수 있을 정도로 이 곳은 나에게 좋은 일 보다 안 좋은 일을 더 많이 안겨주었다. 이제야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러기에 나에게 2년은 악몽 같았고 지옥 같았다. 새로운 일이 주는 두려움, 새로운 지역에서의 시작 같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더 버티는 게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잘하고 싶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나에게 위로를 해주었던 아이들이 있었고 학부모들이 있었다.

“선생님 믿고 보내요.” 한 마디에

“선생님 정말 좋아요.” 한 마디에 웃었고 힘을 냈다.

그렇게 2년을 잘 버텼는데도 아직 이 곳이 나에게 주는 행복이 부족한 걸까?





“나랑 같이 일 해볼래요?”

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휘청거린다.

“그래. 올라오는 게 어때?”라는 어른들의 말에 이미 마음은 그곳에 가있다.

나에게 같이 일 해보자고 제안 안 사람은 나를 이 곳에 올 수 있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 하고 있는 업체의 담당자인 그 사람은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설을 오픈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나 보다 더 나서서 일을 진행시키려 노력해준 사람이었다. 부산행을 결정한 나에게 가족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는데 괜찮겠냐는 우려도 해주었다. 부산행은 순전히 내 의지였지만 이 곳에 와서 있었던 일을 다 듣고는 자기가 되려 미안해했다. 그리고 내려온 이후에도 간간히 나의 생활을 묻고 살펴주었다. 가끔 통화를 하면 같이 일 해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게 그냥 예의상 하는 말 인 줄로만 알았다. 미안해서, 나에게 뭔가 위로를 주고 싶어서. 사실 그 말에 나는 엄청난 위안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힘이 됐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심이었다.

“여기 와서 같이 해봐요. 같이 하면 우리 서로에게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내가 계속 목말라했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나를 알아봐 주는 것.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내 능력에 손뼉 쳐주는 사람.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내 능력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주는 사람과 일 하는 게 좋지 나의 부족한면 만을 찾아내는 사람이 뭐가 좋을까.


이 곳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부족하다는 걸 들어야 했다. 나는 계속 잘한다는 말만 듣고 일해왔는데 이 곳에서는 계속 내가 부족하다고 알려주었다.

‘원장님. 이런 것만 더 하면 좋은데 왜 이게 안 될까요?’

‘원장님. 왜 회원이 늘지 않을까요?’

아무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나에게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박수를 쳐주어도 이런 말 한마디에 내 자존감이 곤두박질쳤다. 지 잘 난 맛에 살던 민 작가는 그런 말을 들어서는 안됐다. 그런 말을 듣더라도 이내 내가 잘했다는 걸 보여줘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이 곳에서의 나는 그런 말을 듣고도 한 마디 하지 못 할 만큼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너는 너무 못해’라는 말은 독약과도 같은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말이 독이 되어 나를 더 못 하는 사람, 능력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필요하다니. 나처럼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니. 정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이 기뻤다.


담당자를 만나고 난 후 나는 부동산 어플을 뒤져 내가 오픈하려는 동네의 시세를 알아봤고 유튜브를 통해서 그곳의 상권부터 아파트의 구조까지 찾아보았다. 어느 곳이 입지가 좋은지 어디에 오픈해야 할지 매일매일 수업이 끝난 후 찾아보고 고민했다. 엄마에게도 이 사실을 전해서 당장 다음 주에 난 그곳에 가서 부동산을 둘러보겠노라 알렸다. 이렇게 호기롭게 준비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렵다.

‘가서도 이렇게 잘 안되면 어쩌지?’

‘결국 또 빚만 남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 건지 엄마는 너무 빠르게 진행하려는 나에게 걱정스러운 말을 했다. 돈도 없으면서 무작정 일을 벌이면 어쩌냐고, 조금 더 생각을 해보라고. 그렇게 나에게 다시 와서 함께 살고 그 옆에서 일을 하라고 성화를 부렸던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까 나는 더 불안해졌다. 엄마가 제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다른 누구보다 응원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틀렸다. 막상 간다고 얘기를 했더니 나보다 더 많은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그런 나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조금 늦은 나이.

그래서 한 번의 실패가 주는 위험이 어린 친구들보다 더 크게 닥칠 수 있는 나이.

아마 그래서 나도 바로 실행을 하지 못하고 걱정을 하는 거겠지. 호기롭게 서울행 기차에 올라타던 23살의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 그때 보다 몸만 늙은 것이 아니라 마음도 늙고 용기도 늙어서 상처의 회복 속도가 더디다는 걸 직감적으로 아는 거겠지.

그 때문에 나의 새로운 목표는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동안 지역을 옮겨서 새롭게 시작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꾸준히 어느 곳에서 오픈하면 좋을지 알아보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내 마음도 잘 살펴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