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일을 다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연히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해지고 누구와 사랑에 빠지게 될 수 있을까?
매번 생각하지만 난 그 말에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 일은 정말 우연이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4년 전,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을 때, sns에서 우연히 예쁜 강아지를 봤다. 그 강아지를 보면서 매일매일 울던 날들에 웃음을 짓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는 서서히 긴 우울의 터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를 터널에서 꺼내 준 건 8할이 그 귀여운 강아지였다.
다른 사람의 sns 계정은 물론이고 인터넷 기사에도 댓글 한 번 안 달던 나는 그 주인과 강아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메시지를 보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너무 오버인 것 같아서 그 강아지의 사진이 아닌 다른 사진에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다.
나는 그 댓글을 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댓글을 시작으로 나는 그 강아지의 주인과 소위 랜선 인연을 맺게 됐다. 나의 댓글에 강아지 주인은 자기가 더 고맙다며 고맙다고 댓글을 달아주었고 그 이후 나는 그 사람들이 올리는 모든 사진에 댓글을 달며 댓글로 소통을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강아지도 예뻤지만 그 사람들이 불쌍한 강아지를 위해 후원을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보며 과연 누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이후 나는 그 사람들은 무조건 좋은 사람이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 하는 모든 말을 무조건적으로 좋은 일이라 믿어버렸다. 그래서 만나고 싶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고 있는 진짜 돈 많은 부자. 나에게 언제나 친절한 사람들을 랜선이 아니라 실제로 만나고 싶었다. 다행히 그 사람들도 나를 굉장히 보고 싶어 했다.
단 한 번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난 적이 없던 나는 용기를 내 그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 만남 덕분에 그 사람들과 나는 진짜 아는 사이가 됐다. 언니, 동생하고 불렀고 형부 처제 하며 불렀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진짜 언니 동생 형부 처제로 지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또 다른 가족이 생긴 느낌이었고,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렇게 1년을 넘게 집도 드나들고 서로의 이야기도 하면서 참 많이 가깝게 지냈다. 나는 우연이 가져다준 소중한 인연을 지키고 싶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방송일을 접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던 나는 그 사람들과 더 가까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들도 나에게 계속 내려올 것을 권유했다. 일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좋았다. 내가 꿈꾸던 도시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의 일을 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나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과감하게 부산행을 결정했다. 한 번 마음을 먹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작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지낼 곳을 마련했고 업체 담당자를 만나 이 곳에서의 일을 상의했다. 모든 일이 내 중심으로 잘 흘러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도전을 진행시켰다.
그 도전이 절망일 줄도 모르고.
이 곳에 온 이후로 내가 좋아했던 언니와 형부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렸다. 마치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내가 알고 싶지 않던 비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던 언니와 형부는 내가 아는 거랑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직업도 달랐고 나에게 했던 말들도 거짓말이 반이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로 이렇게 sns로 친해진 다른 동생에게 돈을 1억 가까이 빌렸다. 명목은 투자였지만 그 언니 개인에게 한 투자였다. 그리고 또 다른 거짓말로 아는 동생들 아는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물론 나에게도 카드론을 받아서라도 돈을 빌려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었고 빌려주지는 못 했다. 하지만 내가 돈을 빌려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하고 능력 없는 내가 너무 한심했었다. 그 사람들은 이런 나를 비웃듯 여러 사람들에게 내 욕까지 했었다고 한다. 내 앞에서는 둘도 없는 좋은 언니, 좋은 형부인 척을 해놓고서.
결국 그들과는 인연을 끊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인연은 필요하지 않았다. 관계가 끝나기 무섭게 그 사람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자기들 잘못은 쏙 빼고 나를 뒤통수치고 뒤에서 욕 하는 나쁜 사람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섞어가며 나를 비난하고 욕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연예인들이 왜 악플때문에 자살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나를 비난하고 욕 한다는 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매일매일이 지옥이었고 온 가족이 나를 걱정하며 보냈다.
다시 올라가려고 했다. 그 사람들 때문에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학부모들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통에 나는 부산이 너무 싫었다. 아름답던 꿈의 도시 부산은 나에게 악몽이었다. 악몽을 깨려면 여기를 벗어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아이들이 걸렸다. 몇 개월 수업한 게 다인데 아이들은 나를 믿어주었고 좋아해 주었다. 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떠나는 게 미안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매일 '가야 한다'라고 되뇌면서 한 해를 넘기고 벌써 두 해를 넘겼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사람들과 상관없이 나는 이 도시의 일원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여기까지 내려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건 사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우연히 예쁜 강아지를 보았고, 사람들과 친해진 것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 사람들이 너무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 곳에서 이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까.
그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하루하루 지옥을 살던 그때, 한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하고 이야기해줬다. 별 거 아닌 위로의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날 나는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 많이 울었다. 아이에게 고마워서, 또 이런 아이를 두고 떠나려고 하는 게 미안해서. 하지만 이제 미안하지 않다. 나는 아이들을 두고 떠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고맙다. 아주 많이.
우연이 만들어 준 인연은 악연이 되었지만 우연히 내려오게 된 이 곳에서 나는 지금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친구가 이사 선물로 만들어준 시계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민 작가의 내일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