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행복합시다.
이곳에 돌아오고 이제 3년이 지났다.
3년 동안 나는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많은 응원을 받았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원하는 곳은 어디인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알고 보니 나의 평안이었고
내가 잘하는 것은 웃는 것이었다.
나를 원하는 곳은 가족들의 품이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역시 가족들이었다.
이 간단한 것을 나는 몰랐다.
난 내 이름 석자를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는 것을 원하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다 추켜세워주는 것을 원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난척하고 똑똑한 척해서 남들 앞에서 나를 뽐내는 것을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아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어?"라고 물어왔다.
나는 부자가 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라면 나는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3년 남짓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면서 나는 나의 평안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알게 됐다.
많은 돈도, 주변에 많은 사람들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다.
돈을 잘 벌 때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도 나는 평안하지 않았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서 오로지 머릿속에 그 생각만 했다.
그런 생각들은 내 스스로 나를 못 난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나도 모르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이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싶다.'라는 말도 안 되는 사명감.
그렇다고 내 모든 삶이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울면 나도 같이 울었고, 슬펐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잘되기 시작하면서 나를 떠났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한 명씩 한 명씩 나에게 날을 세웠고 나쁜 말을 했다.
어릴 때였다면 그런 말들에도 눈치채지 못하고
'역시 나는 인복이 좋아'라며 좋아했겠지.
교묘하게 말을 돌리며 나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겠지.
그런데 이제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다.
나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
없었다. 가족들 말고는.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의 인간관계를 그저 허울뿐인 관계였으니까 다 허물고 새로 짓기로 했다.
나의 아픔에도 나의 기쁨에도 진심으로 나를 대해주는 사람들로 채우기로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남의 즐거움이나 슬픔에 나를 갈아 넣지 않기로 했다.
우리, 각자 살자.
늬들의 행복도 늬들의 불행도 늬들이 감당하자.
나도 내가 감당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