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엄마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틀 전에서야 내막을 알게 되었다.
“왜 여태 나한테 말 안 했어?”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지. 튼튼이도 있는데 산모가 걱정하면 애기한테 안 좋아.”
속에서 화가 났다. 딸들은 엄마 말에 늘 화부터 난다. 걱정이 되니까.
“그래서 뭐래. 병원에서.”
“걱정할 것 없대. 췌장에 종양이 예쁘게 나서, 악성 종양일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대더라. 병원에서 젊은 의사한테 먼저 소견을 들었는데.”
엄마는 제법 담담하게 말한다.
“엄만 그 의사가 신뢰가 가서 믿고 안심했는데, 네 아빠 성격 알잖니. 너무 젊어서 신뢰가 안 간다고.”
아빠는 엄마를 집 옆 카페로 불러 느닷없는 사랑 고백을 했다고 한다. 황소고집인 엄마의 마음을 꺾으려고 내가 너 없이 더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일생일대의 소원이니 좀 더 큰 병원에서 한 번만 더 진찰을 받아보자고 간절하게 말하는데 엄마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엄마는 여동생에게 그 얘기를 다시 들려주면서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네 아빠가 그런 고백을 한 건 삼십 년 평생 처음이었어.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그리고 아빠의 고백은 그대로 먹혀들어 소원대로 췌장암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아산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단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내가 친정을 들린 이 날 받아서 왔다. 다행히 아산병원 최고 췌장암 전문의 교수도 암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라고. 현재 양성종양인 상태로 2.4센티에서 더 자라지 않는지 6개월마다 추적검사를 하면서 확인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빠는 안심했다고 한다.
맏딸인 나에게 말도 없이 2개월을 숨기며 몰래 검사하고 결과지를 받고 또 얼마나 끙끙대고 맘고생을 했을지 안 봐도 훤해서 속이 상했다. 임신 22주 차인 딸에게는 죽어도 알릴 수 없는 부모 마음이란 게, 나도 자식을 낳아봐야 이해를 할지.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었다. 2개월을 먼저 알았다면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가 췌장암일 가능성이라니? 결과를 듣고 나서도 속이 쓰리는데 결과도 모른 채 검사 결과만 기다렸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안 봐도 뻔하다. 나는 걱정이 많아 눈물로 몇 날 며칠을 기도하며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또 어땠을까. 아빠는 나와 여동생이 중학생일 무렵 고향 친구를 췌장암으로 잃었다. 그렇게나 착하고 순했다던 종수 아저씨는 불과 40대 초의 나이에 췌장암 진단받고 몇 개월도 안 돼서 비쩍 말라 해골이 된 모습을 마지막으로 우리 또래 자식 둘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착한 녀석이 너무 일찍 가버렸다고 한숨을 깊게 쉬며 소주를 마시던 아빠가 기억난다. 거기다가 요새 엄마가 줌바를 열심히 다녀서 날씬해졌던 터라, 아빠는 이게 혹시 췌장암 증상으로 인한 체중 감소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아무튼 검사결과 당장은 암이 아니라 하고 지켜보는 쪽이긴 한데, 아빠도 마음을 조금 놓은 것 같지만, 집에 돌아와서 이틀을 생각하니 나는 맘이 놓이질 않는다. 췌장이라니? 왜 하필 췌장에 종양이 생긴 걸까. 우리 엄마 나이가 이제 끽해야 55살인데. 외할아버지는 85세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아직 정정하시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눈물이 또 핑 돈다. 나는 이상하게 엄마만 생각하면 감정의 복받침이 자제가 되질 않는다. 장녀라 그런 걸까?
마음이 편치 않아 오늘만 두 번을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하루종일 엄마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엄마는 또 하필 독감에 걸렸단다.
“아무래도 네 아빠한테 옮은 것 같아. 넌 괜찮니? 감기 기운 같은 건 없지?”
“괜찮아. 난 아무 이상 없어. 나 독감 주사도 맞았잖아.”
이제 엄마도 독감주사 챙겨 맞을 나이야. 연말에 미리미리 맞아 둬. 또 잔소리를 하고 끊었다.
남편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 했기에 혼자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정리하다가, 공시 공부하던 이후로 일절 펼쳐도 보지 않았던 성경을 꺼내 들어서 마태오 복음서를 읽기 시작한다. 계속 훌쩍훌쩍 콧물과 눈물이 흘러서 머리까지 아파 온다. 이렇게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나일론 신자에게 하나님이 벌을 주시지 않을까. 그래도 하나님, 엄마처럼 착한 사람 절대 먼저 데려가지 마세요. 튼튼이 태어나서 대학 입학하고 엄마랑 대학 투어도 다녀야 하고 할게 많아요. 혼자 또 울면서 기도한다.
휴지로 코를 세게 풀고 시계를 보니 저녁 8시다. 오늘은 목요일이던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로니쌤의 줌바 강의가 있는 날이다. 아무래도 독감인데 줌바에 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당장 카톡을 날린다.
‘줌바가지마!!’
카톡에 답이 없다. 십 분 뒤쯤 왜? 라는 몰티즈 이모티콘과 ‘흥칫뿡 줌바는 가야 해~~’라는 답장이 온다. 다른 줌바 회원들에게 독감 옮긴다, 민폐다, 오늘 눈이 많이 와서 길도 미끄럽다, 독감 덧난다. 또 긴긴 잔소리를 퍼붓는다. 이 와중에 친정 가족 톡방이라 여동생은 ‘엄마 독감이야???’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져 보이지 않고 아빠는 신나서 나를 응원한다. 전화를 한 번 더 걸어 안 간다는 걸 확인받고, 따뜻한 차를 타 마시고 집에 얌전히 누워있으라고 마지막 잔소리를 남기고 끊었다.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면 엄마를 더 자주 보러 가야겠다고 맘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