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판업계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책을 읽는 사람과 양은 정해져 있는데, 출간되는 책은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인은 이를 '책의 홍수'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에서 1년에 ISBN으로 출간되는 책의 수는 70,000~80,000권이다. 2018년에는 독립출판물이 증가하면서 약 100,000권 가량이라는 통계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절대 수요는 정해져 있고, 공급이 많아지면 최상위 수요 양이 줄거나, 하위 수요 양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2018년 최대 판매 부수를 기록한 책은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이다. 호불호 갈리는 내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판매 부수는 고작 55만 부이다. 인쇄로는 6~8억 정도이다. 당연히 많은 수치이지만, 1등 치고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하위 수요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17년 13세이상 평균 독서량은 9.5권이다. 19세 이상 성인으로 하면 8.3권이다. 1년에 10권의 책을 읽는다고 가정했을 때, 절대 수요인 69,990권은 한 사람에게 있어 '그냥 종이 묶음'에 불과할 수 있다. 출판 시장에서는 흔히 '사장' 된다고 한다.
책이 판매되지 않더라도 책의 가치는 변함없다. 그러나 글을 쓰는 작가와 책을 출간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영향을 받는다. 부업이 아닌 전업 작가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책이 살아남으려면 온라인에서 자기 분야 30위권 이내에 머무르거나, 오프라인에서 흔히 말하는 보이는 매대에 진열되어야 한다. 특히, 오프라인에서는 누워 있든, 세워져 있든 정면이 보여야 한다. 옷장에 옷 걸어놓듯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은 사장될 확률이 크다. '판매되는 책'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흔히 1쇄(한 번 인쇄하는 단위)를 넘기지 못하는 책이 90%라고 한다. 온라인 순위 안에 못 들거나, (시간의 흐름에 밀려 꽂힌 책을 제외하고) 책장에 꽂힌 책이 90%를 뜻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책을 출간할 때 자신의 책이 90%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출판 시장이 어렵지만, 나는 10%가 될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상으로든 통계상으로든 누군가는 90%가 되어야 한다.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리고 찾아야 한다. 자신의 책이 팔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명작가가 69,990권 안에 포함되지 않으려면 이 방법 말고는 딱히 없다. 하늘은 글 쓰는 모든 이에게 세익스피어와 같은 능력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안타깝지만, 누군가에게는 공정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