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강렬한 곳이 또 있을까

1. 뒷간 이야기

by 밤호수


나에게는 지금도 눈만 감으면 마치 오늘을 살듯이 눈에 보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곳이 있다.
커다란 나무대문을 열고 들어가 눈에 보이듯 훤하게 돌아다니고 응석을 부리고 오만 참견을 다 하고 다니고 언니들을 쭐레쭐레 따라다니는 곳이 있다.

나의 고향. 나의 고향집. ㄷ자형 한옥집.


마당 가득 철마다 꽃이 가득 피어있고, 나무나무마다 팬티만 입고 타잔처럼 타고 오르고 그 위에서 책을 읽던 나의 어린 모습이 있는 곳. 젊고 아름답던 엄마와 아빠가 있고, 따뜻했던 할머니가 계신, 강아지 두 마리와 언니들. 그리고 늘 사랑방에 손님이 복작거리던, 그때로도 흔치않던 전통 한옥집.

나는 지금도 그곳을 동시에 살고 있듯이 느낄 때가 많다. 삐그덕 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늘도 난 그 안의 세계를 만난다. 영원히 죽지 않고 내 안에 살아있는 고향집의 따뜻한 향내를 느낀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렬한 곳.

뒷간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한옥집 구석에는 전방 10미터 앞에서부터 족히 그 아우리가 심상치 않은, 좀처럼 범접하기 쉽지 않은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뒷간'이었다. 이 뒷간은 ‘ㄷ'자형 한옥집의 저쪽 구석에 독채로 있었다.

나는 항상 이곳이 무섭기도 하고, 부엌의 가마솥에서 나는 고소한 밥냄새와 섞인 희한한 뒷간냄새가 싫기도 해서 그쪽 언저리를 피해 다녔다. 뒷마당으로 가야할 때에도 일부러 반대쪽으로 멀리 돌아서 가곤 했다. 다행히 막내였던 나는 언니들에 비해 뒷간이용 의무 나이를 조금은 늦출 수 있어서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도 집안에서 토끼변기를 이용하곤 했다. (지금도 그 모양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늘색 토끼변기)


그러나 어느샌가 나도 엄마와 할머니의 강한 압력 - 뒷간을 이용할 때가 되었다는 - 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린 나에게 그 부담이 어찌나 컸던지 꽤 큰 스트레스가 되었었다. 어떻게든 낮에는 변기와 집 안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볼일을 해결하고, 밤에는 이불에 늦게까지 실례를 해서 지금껏 친척어른에게 ‘오줌싸배기'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은 다 그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줌싸배기가 시집을 갔어?
오줌싸배기가 아들을 낳았다고?

지금도 고모부는 내 소식만 들으시면 오줌싸배기. 임을 강조하곤 하신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이불에 지도를 그리곤 했던 나의 흑역사는 이리하여 나이 40이 되었어도 꼬리표처럼 따라디니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이해하지 않을까. 차라리 ‘오줌싸배기'로 남고자 했던 나의 처절한 투쟁을.



다들 옛날 집의 뒷간을 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의 뒷간으로 말하자면, 으스스한 외관을 갖추고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회색 시멘트 바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서 다리에 힘이 풀리면 아래로, 똥통으로 똑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하고 - 한쪽 구석에는 비닐 바구니 안에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항상 직사각형으로 정확히 잘라놓으신 신문지가 한뭉텅이씩 늘 담겨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아니 고전이 되어버린 뒷간 공포 시리즈. 화장실 아래에서 빨간 손, 파란 손이 나오고 ‘빨간휴지 줄까, 파란휴지 줄까' 뭐 그런 거 물어보는 귀신.. 이 뒷간에는 그 귀신이 살고 있음에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뒷간을 이용할 수가 있겠는가.
전설의 고향을 그리 좋아하면서도, 정작 귀신이 살고있을 뒷간은 갈 수가 없는 것이 어린 나의 현실이었다.
그리하여 밤에 실례를 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집 구석구석에서 찌린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 밝혀지며, 할머니께서 총대를 메고 나의 ‘뒷간훈련'을 담당하겠다고 선언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할머니가 특별히 준비하신 기다란 막대기를 하나 들고 뒷간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밖에서, 나는 안에서 그 막대기 한쪽 끝을 붙잡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섭고 불안해서 끊임없이 ‘할머니, 할머니!’를 외쳐댔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 하고 나오면 커다란 눈깔사탕 하나씩을 꺼내주시곤 하셨다. 얼마나 어깨를 으쓱하며 식구들에게 자랑자랑을 해대곤 했던지.


그렇게 온 집안 사람들의 칭찬과 과도한 관심 속에서 뒷간 훈련을 마친 나는 그 후에는 아주 잘 이용하곤 했다. 마치 어른이 된 듯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 안 있어 나는 더이상 뒷간을 이용할 일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를 골라서 내어주는 친절한 귀신이 살던 그 뒷간도 갈 일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훈련하지 않고 좀 더 버틸 걸 그랬나 보다.

별이 가득했던

우리 한옥집 앞마당의 밤하늘이 그리운 것처럼.
옛 부엌의 커다란 가마솥에서 번지는

고소한 밥냄새가 그리운 것처럼.
서있지 말라고 잔소리듣던 할머니 방 앞 문지방이

그리운 것처럼.
우리집 뒷간도 그리울 때가 종종 있으니
뒷간마저 추억의 힘으로 가득 그리움을 뿌린 모양이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 / 임수진.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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