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치가 빠질 때 즈음
언니들이 학교에 가고 엄마아빠가 직장에 나가시면 집안의 나의 왕국이었다. 할머니와 일하는 언니를 쫓아다니고, 나무위에 올라가서 책을 읽고, 할머니 방의 벽장 속에 들어가서 엿가락을 훔쳐먹기도 하는 시간들.
그렇게 자유롭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다가오던 또 하나의 공포는 바로 유치가 흔들리는 것이었다. (뒷간의 공포에 이어 두 번째 공포인 듯하다)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집안 구석을 숨어다니며 혼자서 작업에 열중했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않게.
그 누구도 나의 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에.
어서 이 이를 빼내야 한다.
는 필살의 사명.
도대체 왜.
그시절의 우리는.
이가 흔들리면 실에 묶어서 이를 빼내야만 했던 것인가.
그 공포를 아는가.
나는 직접 당해본 기억은 없지만
언니들을 통해서 본 기억은 난다.
가차없는 할머니의 실묶기.
이마 때리기
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언니들의 자그마한 이.
그 다음에는 아빠가 그것을 멀리멀리 날려서 지붕 위로~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날려보내는 의식.
이 일련의 의식들은 언니들이 하는 걸 볼 때는
재미나고 두근두근하지만
내 상황이 된다면 이건 완전히 달라지는 얘기인 것이다.
공포 그 자체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밥을 먹기도 불편하고 잘 씹지도 못하고 하니 아무래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난 또 시치미 딱 떼고 아니라고 우기곤 했지만 할머니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직감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그 날도 아마 몇 번째인가의 유치가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이미 두어 번 어른들의 눈을 피해 혼자 이를 뺀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감을 갖고 몰래 이를 흔들고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매의 눈을 지닌 할머니는 내가 아침밥을 먹는 내내 뭔가 불편해 보임을 눈치채셨고, 이미 하얀 명주실까지 준비를 해놓고 나를 할머니방으로 유인하셨다.
언제나 할머니방 반짓고리에 있던 하얀 무명실은 나에게 포근함을 주었다.
할머니가 빳빳하고 깨끗한 새하얀 이불을 방 안가득 펼쳐놓고 무명실을 대바늘에 끼워 이리저리 꿰매시던 모습을 나는 참 좋아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무명실을 무릎 아래 숨겨놓고 나를 부르신 것이다.
이가 흔들리나 얼마나 흔들리나.
뒤에 덧니가 생겼나 안생겼나.
보기만 하자고.
누워보라고.
유인에 넘어간 나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웠고
그때 할머니 손에서 나온 무시무시한 하얀 무명실.
싫어 싫어 할머니 나 이 안 뺄 거야!
안 빼면 큰일나.
이 다 삐죽삐죽해져서 도깨비처럼 된다.
그래도 안 빼! 싫어!
그렇게 실을 감으려는 자와 도망치려는 자 사이의 실갱이는 계속되었고, 그 순간 할머니의 손에 잡힌 이는
쑥! 빠져
나의 입속으로 꿀꺽.
그 순간의 정적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와 나. 순간 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 정적.
그리고 공포.
그때의 공포는 십 년 전 큰아이가 긴 나무 계단에서 떨어졌을 때 느꼈던 공포와 맞먹는 것이었다.
아. 나는 이제 죽었구나.
나이 일곱 살에 이렇게 가는구나.
왕방울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루로 나가 전화를 걸던 그 때.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계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수업 중이시라는 말에, 쉬는 시간에 꼭꼭 전화를 걸어달라고. 급한 일이라고 부탁을 했다.
일곱 살 짜리가 급한 일이라니
전해주신 선생님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셨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엄마… 나 곧 죽어.
나 이 삼켰어.. 나 진짜 죽는 거야 ? 엄마 올 때까진 살 수 있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울어본 인생의 첫 기억이다.
엄마가 아니라고, 죽는 거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 해주고 할머니가 달래주어도 나의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를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후로도 아빠는 종종 놀리곤 하셨다.
수진이는 밥 안 씹어도 돼. 뱃속에 가면 다 삼킨 이가 씹어 줄거야. 그냥 삼켜.
라고. 그 말도 난 한동안 믿었다.
뱃속에서 그 이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또다른 치아들과 함께 입을 만들고 있는 무서운 상상을 한동안 하곤 했다.
그것은 까치에게 헌 이를 던지지 못하고 뱃속에 남긴 자의 저주와 같이, 오묘하고 무섭고 신비스러운 세계였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