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설의 고향과 도립병원 이야기
이야기를 쓰다보니 자꾸 공포특집으로 가는 것 같다. 여름도 아닌데. 하지만 나의 공포특집은 몸을 살떨리게 하는 납양특집 공포가 아니라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즐거운 공포이다.
그 시절.
우리 세 자매의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는 매주 목요일 (아니, 화요일이던가) 저녁 8시 (아니, 9시이던가) KBS ‘전설의 고향'을 시청하는 것이었다. 시작 십분 전 우리 셋은 이미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이불을 준비해놓고(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숨어야 하니까) 간식거릿까지 다 가져다 놓은 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방영을 기다릴 준비를 마쳤다.
하얀 바탕에 시커먼 수묵화 그림과 함께 한자로 휘갈겨 쓴 ‘전설의 고향'첫 화면.
그리고 ‘따라라~ 따라라 란~ 빠밤 ~ 빰!’ 하는 웅장한 음악이 나오면 이미 우리의 심장은 쫄깃해졌다. 뒷간을 갈 일이 걱정이고, 집 밖에 나갈 일이 걱정이더라도 그래도 일단은 머리를 풀어헤친 피흘리는 귀신 정도는 나오고, 무덤을 파헤치는 장면 정도는 나와줘야 아 그래도 전설의 고향 제대로 봤구나..하면서 흡족해 하던 것이 그 당시 우리의 수준이었다. 매번 저승사자로 나오는 배우의 시퍼런 얼굴과 시커먼 갓도 공포를 자극하기엔 제대로였고, 집안에 우물이나 지나치게 예쁜 여배우가 나와도 그 회는 제대로 된 무서움이 보장된 편이었다.
다들 동의하시겠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구미호'와 ‘내 다리 내놔~ ‘편이었는데, 앞뒤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그저 ‘내다리 내놔~’만 기억나는 그 편은 그 후로도 몇 년동안 우리들의 밤길을 위협한 단연 최고의 편이었다.
나에게 죽음이란,
도립병원 장례식의 풍경과 함께 슬며시 내 삶에 들어왔다.
우리집은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도립병원 뒤 한옥집' 하면 웬만한 사람은 ‘아 그 집~ 도립병원 뒤에 그 한옥집?’ 똑같은 대답이 되돌아오는 그런 집이었다. 할아버지가 지으시고, 우리 아빠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어린시절을 지낸, 나름 동네의 상징적인 집이었을 뿐 아니라 또 도립병원이 워낙에 마을의 중심지여서 그곳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대문정도는 보지 않을 수 없는 집이었다.
그 말은 곧, 우리 세 자매들의 삶의 중심에도 역시 도립병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후에는 그냥 '의료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우리집 뒷방에 세들어 사시던 화연언니네가 도립병원 안에서 매점을 해서 우리는 참새방앗간처럼 늘 그곳을 들락거렸고, 근처 병원 사택의 아이들은 다 우리 친구들이었고, 병원 앞의 널따란 공터는 아빠와 친구분들의 테니스코트장이었고 등등 우리에겐 도립병원은 놀이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장례식이 있을 때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곡소리와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면 그곳은 갑자기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평소에 테니스를 치시던 아저씨들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흐느끼는 여인들과 그들의 눈물 젖은 흰 옷고름들이 허공을 떠돌았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던 언니와 나는 병원의 낮은 담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곤 했다. 어떤 여인은 울다가 기절을 했다 깨다가를 반복했고, 그들의 곁에서 위로하며 함께 울던 여인들과 멀리 관을 옮기던 베옷 입은 남자들의 모습은 어린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슬픔이라기보다는 신기한 것이었다. 때때로 흘러나오던 워어이워어이 곡소리는 죽음과 저승으로 가는 길목을 신비스럽게 했다.
저 여인들은 왜 저렇게 우는 것일까.
얼마나 슬프면 기절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도 혼절을 하던 그 여인의 통곡은
담너머로 풍기던 향냄새와 함께 가끔씩 내 기억에 떠올랐다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으니, 병원 공터 한쪽에는 지하실과 연결되는 뚫린 바닥이 있었다. 그 지하실은 병원에서 장례식을 위한 시신을 보관해 두는 곳이었다고 들었다. 해가 진 뒤에도 종종 병원을 가로질러 갈 일들이 있었던 우리에게 그곳을 거쳐가는 일은 두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전설의 고향을 통해 내 다리 내놔~’하고 쫓아오는 귀신의 존재를 접한 뒤에는.
어느 날엔가 해진 뒤 작은언니와 함께 도립병원 매점에 심부름을 하러 가야했다. 언니는 ‘내다리 내놔' 귀신 때문에 무섭다며 힘껏 전력질주를 해서 뛰어가고, 언니보다 다리도 짧고 달리기도 못했던 나는 한참 언니 뒤에 뒤쳐져서 가야했다.
그때 실제인지 환상인지, 환청인지 저승사자의 소리일지도 모르는 어느 소리가 지하실로 연결된 창을 통해 들려왔다…. 그리고 ‘내다리 내놔~’하고 따라오는, 시체실에서 벌떡 일어나 쫓아오는 어느 귀신의 환영과 함께.
사실 나의 공포는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신 아빠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 때는 도립병원의 건물이 새것으로 바뀌었지만, 그 전에는 일제시대의 건물로 으스스한 분위기가 더 풍겼을 뿐 아니라 병원 주위를 둘러 하얀 벚꽃나무가 엄청나게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봄이면 그 풍광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체실의 공포와 더불어 더욱 무서웠단다. 고모들과 집에 들어올 때면 일부러 고개를 멀리 돌려 병원쪽은 보지도 않고 뛰어오곤 하셨단다.
아빠의 어린시절에는 사고사가 나면 많은 시신들이 도립병원으로 오곤 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해서, 수학여행을 트럭으로 가다가 차량이 전복되어 실려온 고등학생들, 연탄가스로 사망한 여고생, 산소호흡기 하나가 없어서 죽은 어린 학생 등.
그 이야기들은 귀에서 귀로 흘러가 슬픔은 공포가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하여 시내를 다시 돌고, 돈 이야기는 다시 아이들 귀로 과장되어 돌아오곤 한 것이다. 지금 같으면 난리난리가 났을 죽음의 형태들도 그 시절에는 그저 삶과 죽음의 한 부분으로, 누군가의 슬픔과 한맺힌 통곡으로 끝나고, 어느 여인의 옷자락을 눈물로 적시며 그렇게 받아들여지곤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삶도 죽음도,
이승도 저승도,
슬픔의 통곡도 공포도,
내다리 내놔의 귀신도 산 사람도...
어린 소녀의 공포도
소녀의 아빠의 어린시절의 두려움도.
그저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이 모든게
신비스러운 나의 세계에서 어우러져
또다른 세계를 자아내고 있었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