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절구를 빻던 달과 그윽한 밤 하늘

4. 나의 밤호수 이야기

by 밤호수


밤호수

호수 밑 그윽한 곳
품은 꿈 알 길 없고
그 안에 지나는 세월의
움직임도 내 알 길 없네
오직 먼 세계에서 떠 온 밤 별 하나
그 안에 안겨 흔들림 없노니
바람 지나고
티끌 모여도
호수 밑 비밀 모르리
아무도 못 듣는 그곳
눈물 어린 가슴 속 같이


호수는 별 하나 안은 채 조용하다.


(by 모윤숙)




나의 밤호수 이야기

그 날은 불꽃놀이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동네 고등학교가 전국 야구대회 같은 데서 1등을 했던 날이었을 게다. 언니들과 나는 이미 본 적도 없는 불꽃놀이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어올라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과는 정 반대로, 부모님께서는 밤이 되자 우리 세 자매에게 이부자리를 깔아주신 채 두 분이 나가 버리신 것이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우리를 데리고 나가실 계획은 애초부터 없으셨던 듯 했다. 좌절에 빠진 우리들은 잘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이부자리 위에 누워 이리뒹굴 저리뒹굴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 언니들이 제안한 것이 바로 ‘다슬기'.

우리 세 자매가 그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간식이었는데 시내 성심당 제과점 앞에서 아저씨가 파시던 것이었다. 언니들과 이리저리 동전을 꺼내 몇 백원의 동전을 모은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하게 되었다. 바로 이 밤에 누가 나가서 다슬기를 사올 것이냐!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첨된 나.

그리하여 주머니에 동전을 짤랑거리며 겁도 없이 우리집 삐그덕거리던 대문을 열고 나왔던 그 날 밤.

잊을 수 없는 그 날 밤.
문을 열고 나오자 집 앞 새까만 빈 터 위로 터지던
색색의 불꽃놀이.
요즘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공터 위로 떠 있는 달.
그리고 불꽃들.
그 그림은 어린 내 가슴에 그대로 박혀 버렸다.

하늘은 더할 수 없이 까맣고,
달에는 분명 토끼가 절구를 빻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불꽃들이 찬란하게 터지고 있었으니,
그곳은 정녕 아름다운 나의 ‘밤호수'였다.

내가 다슬기를 사왔었는지,
그 이후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밤하늘 뿐.

그 후에도
어릴 적 살던 커다란 한옥집 옆 공터 위의
새까만 밤하늘은
늘 나에게 꿈의 안식처였고
공상의 나래터였다.
어릴 적 그 동네를 떠났지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밤하늘을 기억했다.

낮에는 친구들과 흙과 돌멩이로 소꿉놀이를 하던
강아지풀과 토끼풀과 온갖 잡초가 무성했던 공터.
해가 질 무렵이면
저녁 먹고 난 후의 만남을 다시 기약하며
아이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던

그 곳.

밤이 되면 아이들의 조잘거림을 따스히 흡수한 밤하늘이 깊고 푸르게 짙어지던 그 곳의 하늘.
토끼가 절구를 빻던 달과 그윽한 밤 하늘.
모윤숙의 시 ‘밤호수’를 읽을 때면 늘 떠오르는 나의 밤 하늘.

그 밤하늘이 때때로 그리운 건,
기억인지 상상인지 분간되지 않는
그 날의 밤하늘이 그리운 건,

토끼가 살고 있는 달로부터
너무 많이 도망와 버린
내 나이 마흔 자락인 때문일까.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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