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호수 Feb 01. 2023

7.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ADHD 약을 먹다.

리탈린


(나) 왜 의사는 나에게 이 약을 처방했을까?

(남편) 가장 흔하게 쓰이는 약이기 때문이지.

(나) 가장 흔하게 쓰이는 약은 딴 것도 많은거 아니야?

(남편) methylphenidate 계열이 가장 흔하게 쓰이거든. 리탈린은 그 중 하나야.

(나) 왜 가장 흔한데?

(남편) 효과가 가장 좋고, 오랫동안 쓰여서 약에 대한 검증도 다 끝났거든. 약의 장점과 약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나) 부작용도 가장 적다는 거네?

(남편) 그런 뜻은 아니야. 하지만 부작용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이지. 오랫동안 쓰였기 때문에. 충분히 인식을 하고 약을 쓸 수 있다는 거지. 오랫동안 임상을 거쳤다는 뜻이야.



약 복용 첫째 날.


나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12시경 약을 한알 먹었다. 아주 조그마한 약이라 삼키기에 전혀 부담감은 없다. 궁금하다. 이 알약이 내 몸속에 들어가서 어떤 작용을 할까? 한두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변화도 없다. 그런데 오후 두세시가 되자 기분이 이상야리꾸리하다. 아주 희한한 기분인데,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것 같다. 네다섯 시가 되자 더 심해진다. 커피를 백잔쯤 마신 듯 하다. 커피도 투샷만 들어가면 두근두근 하는 난데,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손에 땀도 난다. 이런게 바로 부작용인가? 유난히 실수도 잦다. 공중에 붕 뜬 것 같아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서너시간이면 약의 효과가 끝난다고 했는데 저녁 여덟 아홉시까지도 지속되었다.


이틀 후.


남편과 의논하여 일단 하루 건너뛰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반알만 먹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쪼그만 약을 반으로 쪼개는게 더 힘들다. 그냥 먹고 말지. 아무 약속도 없고, 아무 할 일도 없는 날이기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고 생각하고 약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저녁이 되어서 남편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에야 아 맞다 나 약먹었지 라고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불과 두번째 시도에 거의 부작용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면 내가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 부작용을 몰랐던 걸까?


다시 이틀 후.


다시 이틀 후에 또 약을 먹었다. 이 약은 먹을 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고 그 효과가 단기적이라 다른 약보다 짧다고 했으니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제 이날이 되어서야 제대로 약이 작동하는 것을 스스로 느껴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두번째 시도부터 부작용은 거의 없었고, 바쁘지 않아서 스스로 약 먹었다는 걸 잊어버릴 일도 없으니 제대로 나를 관찰하자.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동안 계속된 관찰의 종합>  

    확실히 부작용은 거의 없어졌다.   

    원래 ‘잠을 못잘 수 있는’ 부작용도 있다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먹고 나서 바로 낮잠도 가능하다.  

    ‘식욕부진’에 대한 부작용은 내겐 부작용이 아니었다. 적당한 식욕부진은 필요하던 차였다. 다만 단기작용이라 저녁때가 되면 가출했던 식욕이 두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점 때문에 long acting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집중력 문제>

내가 약을 먹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의 가장 흔한 염려 가운데 하나는 adhd약으로 인하여 내가 가진 ‘아이디어와 창의력’ ‘약간 하이퍼된 에너지’가 사라지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런 걱정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시도’만 해보자고 생각한 것도 컸다. 계속 먹긴 어렵겠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 염려 속에는 아마 ‘adhd약이 하이퍼된 사람을 톤 다운. 말하자면 약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고 믿는 데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겠는가. 보통 adhd라고 생각하면 부산하고 정신없는 아이들을 제자리에 앉아서 집중하게 해주는 신묘한 작용을 한다는 이미지가 있으니까. 들쑥날쑥하는 개성과 창의력을 가라앉혀서 남들과 비슷하게 차분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당연히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에 걸쳐 약을 복용하면서 솔직히 정말. 깜짝. 놀랐다. 약 복용후 제대로 작용했을 때의 효과를 읽거나 들은 것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작용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 솔직히 이것을, 약의 효과를 인정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 글이 ‘그가 이겼다’였지만, 아직도 왠지 나의 adhd와 약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 남편에게 굴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런 쪼잔한 궁상맞음과 똥고집이라니! 이건 싸움이나 ‘사랑과 전쟁’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속시원히 약의 효과를 말하고, 나의 adhd를 인정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로 하자. 인정했다 안했다를 백만 스물 두번째 하고 있지만)


약을 먹은 후 약 20분~30분 정도가 지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차분해지는 것과는 다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앞에서 어떤 환자가 말했다는 ‘눈이 내린 고요함’ 말고 나는 이렇게 표현해 보겠다. 내 머리속에서 시시각각 요동치는 수많은 채널들과 캔버스 위에서 어느 한 부분, 아주아주 작은 한 부분에서 미세하고도 투명한 방울이 생긴다. 아주 투명하고 맑고 깨끗한 진공상태의 방울. 그 방울은 점으로 시작해서 점점 커진다. 날카롭고 미세하고 깨끗한 머릿속 세계를 그 방울이 점점 부풀면서 채우고 있다. 약의 작용과 함께 떠오르는 감각적 이미지가 이런 식이었다. 굉장히 날카롭고 예민해진다. 이건 내 신경이 예민해지는게 아니라 날카롭고 예민하게 머릿속이 깨끗해진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게 내 머릿속 모든 캔버스를 다 채우거나, 오래 지속되기에는 확실히 약의 용량이 적고, 작동시간이 짧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방울이 점점 커지지만 머리를 완전히 다 채우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 약이 작동되면 어느 순간 내가 ‘무섭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다. (원래도 글 쓸 때 빼곤 길게 집중은 잘 못하는 편이라) 그런데 순간순간 갑자기 내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머 나 이렇게 초집중하고 있었네? 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걱정했듯이 감정이나 정신상태를 <무뎌지게>만드는게 아니라 오히려 <맑게> <투명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나는 이 적은 양의 용량으로 살짝씩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분은. 그래 나쁘지 않다. 머리속이 조용해지고 투명해지는 기분이 어떻게 나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이런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아. 내가 고등학교 때 진작에 약을 먹었더라면? 시험공부할 때 먹었다면? 확실히 도움은 받았겠구나 하는. 뭐 안 먹고도 잘 살아오긴 했으니 불만은 없지만.


 




그래서 나는 조만간 의사를 만나서 long acting 약으로 바꾸어보려고 한다. 지금의 short acting으로는 내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줘서 ‘삶의 질’을 올리기에는 턱없이 적고 짧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좀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생활의 모습을 갖추고,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려면 내 나이와 몸무게에 맞는 약으로 용량을 맞춘 후에 제대로 다시 검증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것 또한 부작용 염려도 되고, 과연 이 기분이 유지될까 두려운 마음도 없진 않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의사와의 약속은 곧 잡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ADHD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약'을 처방받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