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쓰기
나카무리 구니오가 쓴 '하루키는 이렇게 쓴다'라는 책을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의 특징을 33개의 작법으로 정리해 놓았다.
그 가운데
4. 구체적인 '연도'를 쓴다.
8. '일상의 작은 일과 시간에 의식을 집중하는 생활'을 묘사해본다.
9. '장소'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한다.
19.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한다.
20. 나이를 구체적으로 표시한다.
21. 기묘한 음식(음식 먹는 방법)이 등장한다.
22. 음식에 비유한다.
23. 술의 종류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묘사한다.
24. 몇 번째인지에 대해 묘사한다.
이런 항목들이 나온다. 물론 이것은 소설 혹은 여행기 에세이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루키의 글을 읽을 때는 이런 것들을 기대하게 되고 이런 부분에 멈추게 되어 상상력을 작동시키곤 한다. 하루키가 딱히 '연도'나 술이 몇년도산인지, 음식 먹는 방법이라든가 차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용에 크게 지장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몰라도 하등 지장없는 정보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없으면 매우 심심하고 아쉽다. 뭔가 느낌이 살지를 않는다.
마라톤을 끝낸 뒤, 결승점 근처의 코플리 플라자 안에 있는, 보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시푸드 레스토랑인 '리갈 시푸드'로 갔다. 거기서 진하고 따뜻한 클램 차우더를 먹고, 스팀드 리틀넥(뉴잉글랜드 지방에서만 잡히는 조개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시푸드 믹스트 프라이를 먹었다.
하루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가운데 '불완전한 영혼을 위한 스포츠로서의 마라톤 풀코스' 중에서
위 문장에서 하루키가 마라톤을 끝낸 뒤 어떤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이렇게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있다. 없다'로 말하자면 '없다.' 그냥 '식사를 했다' 로 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은 글의 분위기를 살리고 뒤에 나올 웨이트리스의 중요한 말 한마디로 가는데 확 달라지는 분위기를 세팅해 준다. 하루키가 마라톤을 끝내고 어디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독자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마치 그냥 먹어도 맛있을 음식이지만 참기름 한방울, 후추 한 꼬집을 뿌렸을 때와 같다고 할까.
디테일은 중요하다
우리 일상에서도 디테일은 중요하다. 줌으로 에세이수업을 할 때 누군가가 머리띠나 목에 두르는 스카프를 하고 나타나면 화면이 갑자기 화사해진다. 입술에 붉은 색만 더한 누군가가 있어도 화면에 빛이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줌 수업을 할 때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차림에 물 한 잔, 커피 한 잔 정도를 들고 나타난다. 마치 에세이를 읽듯 편안하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그 편안안 화면에 누군가 깜찍한 디테일을 더한 날이면 그 화면 전체가 블링블링해지는 효과가 있다. 만약 모두가 다 화려한 꽃장식을 했다던가, 모두가 다 형광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 피로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디테일과 TMI의 차이가 나타난다. 디테일이 넘치면 TMI(Too much information)가 된다. 문자 그대로 too much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원했던 건 디테일이지 TMI가 아니다.
독자에게 이 정보를 알려야 하는데. 하는 강박관념 버리기
처음 에세이를 쓰다보면 '독자가 이 정보를 꼭 알아야 할 것 같은데...'라는 불안함에 시달린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의 모든 배경, 모든 인물의 사연, 주변 환경까지 다 알려줘야지만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것만 같다는 불안함. 슬쩍 지나가는 인물의 한 마디조차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속 배경을 다 이야기해줘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 그때 내 상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까지도 다 알려주지 않으면 몹시 불안하다.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빼고 뺐지만 그래도 남겨둬야 할 것 같은 정보들이 넘친다.
그렇다면 자. 독자는 어떨까? 이야기를 읽어나가야 하는데 자꾸만 이 정보 저 정보. 작가가 나를 붙잡고 앞으로 못 가게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한다고 치면 독자 입장에서 그 글이 잘 읽힐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보면, 이야기가 '부연설명'을 위해서 샛길로 자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샛길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잘 돌아온다. 그런데 자꾸 얘기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려고 하다보니까 정작 중심 줄기가 되는 사건은 진도가 잘 안나간다. 진짜 중요한 부분에 가서는 이미 힘이 빠진다. 웃을 준비를 하고 기다렸는데 본론이 나올 때쯤 준비했던 웃음은 사라져 버렸다. 빵 터질 순간은 이미 바람이 빠졌다. 가지치기한 이야기들이 엄청 중요한 건줄 알고 거기에서도 힘을 주고 웃을 준비를 했는데 알고보니 없어도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이쪽저쪽에서 힘을 뺐으니 결론에 가서는 흥미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나로선 '중요한 정보'였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이야기를 멈칫거렸던 정보들. 그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TMI였다. 독자는 무슨 '복선'이라도 되는 줄 알고 몇 번 멈추고 쓸데없는 정보에 감정을 쏟아버린 것이다. 전체 글은 이미 긴장이 빠져버린다.
디테일과 TMI의 공통점
*독자가 꼭 알 필요는 없다
*내용의 흐름과는 별 상관이 없다
*몰라도 내용을 다 알 수 있다
*둘 다 많으면 안된다.
디테일과 TMI의 차이점
TMI가 많아지면 독자는 처음엔 복선인 줄 알고 열심히 읽다가 나중에 힘이 빠진다
디테일이 적당히 있으면 읽는 즐거움이 있다
TMI는 글을 정신사납게 한다
디테일은 글에 생기를 주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TMI가 한두개라면, TMI가 재밌다면, 독특하다면 때론 디테일이 되고,
디테일이 아무리 재밌고 유쾌해도 너무 많고 과해지면 TMI가 된다.
TMI를 옷으로 표현하자면,
위부터 아래까지 과한 색상, 화려한 무늬, 자잘한 무늬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디테일은
슬쩍 걸친 스카프 하나, 블랙 의상에 화려한 하이힐. 호피무늬 핸드백.
다시 말하면, 글의 세련됨과 촌스러움을 결정하는 것은 디테일이다. 딱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지 세련된 글이 된다. 아무리 화려한 기교도, 배꼽 잡는 유머도, 작가 입장에서 중요한 정보도 많아지면 독자를 피로하게 한다. 하물며 글에 상관없는 곁가지의 정보라면, 그게 한두번을 지나쳐 반복된다면 독자는 이미 글을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좋은 에세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딱 읽기 좋은 Detail인지 TMI인지 판단해보기.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TMI에 매달리고 있는건 아닌지 확인하기. 모르겠을 때는 다 삭제하고 한두 개만 남겨보기. 그러면 디테일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언제나 과한 건 모자라느니만 못한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