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해 겨울은 잔인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말로
그 길고 긴 이야기를.
짧고 아쉬운 이야기를.
춥고 차가운 이야기를.
따뜻하고 눈물같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그리운, 그러나 정작 단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수두룩해 아쉬운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시작할까. 그러면 시작도 하기전에 괜히 눈물부터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이름 따윈 부르지 않는 편이 낫겠다. 그냥 ‘안녕. 모두들…’ 이렇게 인사를 건네며 이 글을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 이제 25년 즈음이 흘렀으니 제법 희미해질 법도 한데 흐려지기는 커녕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 그 3년의 기억들을 나는 어떻게 그려내야 하는 걸까. 그게 가능이나 한 걸까. 그 시간들을, 다만 일부라도 글로 다시 그려낸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나는 그냥 그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되는대로, 뒤죽박죽, 그렇게 눈물이랑 환희랑 같이 기억해내보려고 한다. 그저 그렇게 인사를 건네며.
안녕. 모두들. 잘들 있는 거지. 그렇게.
처음부터였다.
시작부터 이미 무지갯빛도 핑크빛도, 하늘빛도, 흰색도 아니었다. 우리의 시간은 이미 짙은 회색이었다.
잿빛. 혹은 짙은 네이비색. 우리의 무거웠던 철제 갑옷 동절기 교복 코트 색깔처럼 짙은 네이비.
우리의 시작은 바로 그런 색이었다.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들어갔을지라도,
무지갯빛 미래를 꿈꾸며 시작했을지라도,
‘그 화려한 색은 대학 입학 후로 미루어 두어라. 너희의 3년은 잿빛일지어다.’
그게 바로 우리의 시작이었다.
찬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색. 짙은 잿빛의 색깔 속에 가두어 버린 우리의 열 여섯. 열 일곱. 열 여덟.
그런데 왜 이렇게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토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그 3년을 반추하는 걸까. 잿빛 속에 감추어져 있었기에 더욱 그 안에서 반짝였던 우리의 소년소녀 시절. 청춘의 시작. 청춘이라기엔 너무 이른 나이일까. 어쩌면 너희는 청춘이 아니라고 그렇게 어른들이 우릴 가두어 버린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순간에 회한덩어리였던 나의 청춘과 작별하면서, 내가 얼마나 그 때를 사랑했는가를 깨달았다.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시간이 한해 한해. 흐를 수록. 나도 깨닫는다.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한가득 지고 아침마다 램프길을, 백계단을 오르던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던 그 시절이 그다지도 찬란한 우리의 시절이었음을. 잃어버린 우리의 청춘이었음을.
그리고 내가. 우리들이. 그 청춘을 얼마나 사랑했던가고.
5년 전이던가.
오랜만에 한국에 나갔던 나.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났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결혼식'을 이유로 만나기는 점점 어려운 법이다.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제법 점잖을 뺐다. 짙은 양복. 빳빳한 정장. 낮은 음성에 미소들. 축의금 봉투. 오고가는 안부와. 쉽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 제법 중년의 가장. 중년의 회사원 모습이 보이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익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았다. 짐짓 어른인 척 점잖을 빼고 있지만, 그 안에 보이는 소년소녀 시절의 장난끼어린 표정들을 나는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넥타이에 정장차림을 벗어던지고 푸른빛 촌스런 교복을 입혀놓으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 반 여자아이들의 비난과 비웃음을 송두리째 사고도 남을 장난꾸러기들임, 새침떼고 앉아 있지만 그 교복치마를 입혀놓으면 눈물많고 샘 많던 여자아이들이 틀림 없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흘깃. 혼자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해 2월. 그렇게 춥고 어둡고 또 설레던 합격의 2월로.
1993년.
Xx외고.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고 미래를 다 얻은 것 같았던 그해 2월.
몇 달 전. 각기 학교에서 나름 공부로는 한자락씩 했던 우등생들. 저마다 큰 포부를 안고 화려한 선전문구를 자랑하는 ‘외국어 고등학교'라는 곳에 우리는 발을 디뎠다. 시험은 어려웠고. 경쟁은 치열했다. 대학입학 시험도 아니었건만, 이미 나는 시험에 떨어지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5대 1이 가깝다는 경쟁률을 어떻게 이겨내고 합격할 수 있을까.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쉽고 애가 탔다.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는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었다. 짙은 네이비 교복도 입고 싶었고, 별모양이 새겨진 넥타이도 매고 싶었다. 그 세상만의 특권으로 보이는 학교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쓰여진 스쿨버스도 타고 싶었고, 그래. 무엇보다 그 특별한 이름을 얻고 싶었다. 어느어느 외국어 고등학교 학생. Xxx. 그 영광스런 이름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치러진 시험 끝에 비록 원하던 불어과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서어과'에 그것도 4지망으로 간신히 붙게 되었다. 체육을 어지간히도 못했던 탓에 20점 만점의 체력장에 16점 최하점을 받은 것이 그 탓이라고 두고두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4지망으로 서어과에 간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렇게 얻게된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다.
Xx외고 1학년.
넥타이에 새겨진 별 한 개.
명문대로 가는 패스트 트랙.
학원 선전 책받침에 새겨진 외고합격생 리스트의 내 이름.
그렇게 처음 우리반 아이들을 만난 오리엔테이션의 2월인가, 1월의 어느 날.
교실에는 숨막힌 정적이 가득했다.
서로를 탐색하기에도 어색하고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묵직한 무게의 학교와 분위기가 주는 중압감에,
나는 숨이 막혔다.
건물이 너무나 웅장하여 답답했고,
우리는 영원히 탈 수 없다던 학교 안 엘레비이터의 위용에 괜시리 당황스러웠고
학교 안에서 제일 좋다는 팔각정 모양 수위실의 오만함에 기가 죽었다.
그것이 나의 첫 인상이었다.
시험을 보러 왔을 땐 느끼지 못했던 ‘이제 나의 학교'가 되어 버린 xx외고의 첫 인상.
엄청난 과제에 숨이 막힌 채 오리엔테이션의 날이 끝났다.
이찬승 vocabulary 한 권 모두.
수학 선행학습.
약 오십권 분량의 한국문학작품 읽고 독후감 쓰기.
그렇게 아직 시작의 문에도 서지 못한 우리의 준비가 모두 끝났다.
큰 숨을 한 번 쉬었다.
모두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 학교에 갔으니 명문대학은 따놓은 당상이네'
‘이제 3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면 되겠네'
나의 가치는 외고와 함께 이미 어느 정도 평가가 끝났고, 또 평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