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착기 13.
어둡고 황량하던 겨울의 병원 기숙사부지도
봄이 되고 여름이 가까워져오면
푸르름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관리되지 않아 잡초더미같은 잔디밭에도
푸르름이 가득하고,
어딘가 나무 한그루에 매달린
버려진듯한 밧줄과 나무 한 토막으로 만들어진 그네에도 아이들이 줄을 서 있다.
큰아이도 이 그네를 태워주면
크게 함박웃음을 짓곤 했다.
롱아일랜드. 이곳 카운티 병원 기숙사에 이사온 후
네 번째의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참 언제까지나 도무지 지나갈 것 같지가 않던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우리는 이곳을 떠나
미주리 주로 가게 될 것이었다.
벌써 큰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가고,
작은 아이는 돌을 넘기고 있었다.
더위가 슬슬 다가오던 어느 6월의 하루.
남편은 모처럼 일찍 퇴근을 했다.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레지던트 졸업식.
어느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빌려서 하는 파티이다.
한국에서도 인턴을 끝내던 날. 레지던트를 마치던 날.
또 공중보건의를 끝마치던 날까지
그 해방감 역시 이루 말로 할 수 없었겠지마는,
미국에서 말도 안 통하는 시간을 견디며 겪어낸
3년의 시간을 마치는 행사의 날이었으니,
그 기쁨은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쁨이라기보다는 안도함이라고 해야 할까.
행사장으로 가는 남편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뿌듯하고 밝아보였다.
모든 레지던트가 그날 다 졸업식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아정신과를 택해서 3년만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세 명의 레지던트, 그리고 4년차를 다 마치고 가는 다른 레지던트들을 위한 자리인 것이다.
그날 함께 졸업하며 소아정신과 펠로우십을 가는 동료들은 Duke university, Georgetown university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옮겨갔다. 4년차 일반정신과를 마치고 가는 동료들은 Southern California, Conneticut 병원의 정신과 프로그램으로 정해져 있었다. 모두에게 창창하고 빛난 앞날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그 날만큼은 모두가 눈부신 미래를 그렸다. 남편 역시 또다시 시작될 영어와의 전쟁,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 등은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있었다.
졸업식의 하이라이트는
프로그램디렉터로 3년간 레지던트들을 교육하고 돌본
Dr. S의 축사였다.
To our 2012 graduates, you tell me, I must show ‘em.
How great they are, in my graduation poem.
So I will tell the accounts of all they are achieving,
While suppressing my sadness that they are all also leaving.
It has been a hard year,
which put character to the test,
And this group’s attitude and efforts have been the very best.
So in alphabetical order I will tell you about each,
How they work and relate and study and teach.
나의 2012년 졸업 학생들에게.
이렇게 졸업 축시를 들려주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들이 이룬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대들이 떠나기에 슬픈 마음을 잠시 누르면서 말이죠.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대들의 태도와 노력은 과연 최고였습니다.
이제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룬 일들과 공부하고 가르친 성과들에 대해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축시 몇 번째에서 남편의 이름이 불렸다.
Dr. Hong
has been a resident most quiet and smart,
He has excelled at psychiatry, both the science and the art.
With high PRITE scores, and strong review from each patient and each student,
His clinical work is always both thoughtful and prudent.
He has children of his own,
As a child Fellow, He’ll probably practice on his kids at home.
He’s off to the Child Program in St.Louis’s Washington U.
Where we are confident his excellence will continue.
닥터홍은 가장 조용하고 또 현명한 레지던트였습니다.
정신과에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과학과 예술에도 또한 뛰어났습니다.
PRITE 점수는 매우 높았고, 각각의 환자와 가르칠 학생들에 대한 철저한 리뷰로
그는 언제나 신중하고 사려깊게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에겐 자녀들이 있습니다.
소아정신과 펠로우로서,
집에서도 또한 자녀들을 돌보겠지요.
그는 이제 세인트루이스에 워싱턴 유니버시티에 소아정신과 프로그램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잘 해나가리라는 것을 우리는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온 멘트 외에 마지막으로 그는 덧붙였다.
I am really curious what and where he is going to do after 10 years later
나는 닥터홍이 십년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그해로부터 정확히 십년이 된 지금,
그 때 Dr.S의 그 말을 떠올리며 지금도 눈물짓곤 한다.
졸업사에 붙이는 의례적인 멘트라고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
그러나 어찌 남편이, 또 내가
그 말들을 쉽게 넘길 수 있겠는가.
그저 하는 격려라 들을 수 있겠는가.
지난 3년간,
좌절하고 절망할 때마다,
모든 걸 그만두고 한국에 가려할 때마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포기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비난을 들을 때마다,
지켜주고 막아주고 용기를 주었던 Dr.S가 아니었던가.
3년을 무사히 마치고,
영어로 인한 고통은 더이상 겪지 않게 되었으며,
훌륭한 소아정신과 프로그램이 있는 워싱턴 유니버시티로 결정이 된 이 시점에서 들려주는
그의 그 한마디.
10년 뒤를 기대해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그의 말은
앞으로의 10년을 버텨나가게 해 줄 수 있는 든든한 묘약이자 희망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의지하여 그 십년을 걸어왔다.
과연 DR.S의 바람과 기대만큼
남편이 좋은 의사, 중요한 것을 행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의사가 되어있는지
우리는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지금 부족하다면 앞으로 십년뒤에는 더욱 그런 의사가 되어있기를 또다시 소망하면서 말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