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행

미국정착기 12.

by 밤호수


미국에서 경험해 본 병원이라고는 오직 레지던트를 한 롱아일랜드의 시립병원.

레지던트를 인터뷰할 때 가본 네 군데의 병원이 다였던 그는 ‘소아정신과 펠로십은 정말 좋은 병원에서 하고 싶다. 좋은 병원을 경험하고 싶다.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여러 병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되도록 많은 인터뷰를 다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병원에 지원서를 내고 또 냈다. 그리고 꽤 많은 병원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남편은 그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열댓군데의 병원을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레지던트 때에 비해, 인터뷰를 받기도 훨씬 쉬웠고 그 가운데 여러 곳의 좋은 병원도 있었다. 미국에 진입할 때에 비하면 우리의 마음도, 현실도 훨씬 너그러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부쪽으로는 메인 메디컬센터, 버몬트유니버시티병원, 보스턴 mgh병원, 보스턴 터프트 대학, 예일대학병원, 그리고 서부의 uc sanfrancisco, 스탠포드, 중부쪽으로는 아래부터 뉴멕시코대학병원, 인디애나주립대학병원, 미주리주의 워싱턴유니버시티, 미시간 대학병원 정도로 압축이 되었다.

도대체 뉴멕시코는 왜 가냐는 나의 항의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비행기까지 타고 저 멀리 뉴멕시코주를 다녀왔다. 결국 비행기에서 내려 남부의 건조한 바람을 맞는 순간부터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도대체 쟤는 왜 여기 왔을까?’ 신기해하는 눈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왔다고 했다. 지금까지 잘 사용하는 커다란 albuquerque가방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albuquerque : 뉴멕시코의 주도) 뉴멕시코는 태어나서부터 죽 그곳에 산, 말 그대로 뉴멕시코 사람들만 있는 병원같다고 했다. 그러니 저 멀리 동부에서, 나아가서는 저 멀리멀리 알지도 못하는 한국에서 온 아시안 남자애가 뉴멕시코 병원을 오겠다고 인터뷰를 와있으니 모두가 신기해했을 법도 하다. 아무튼 남편에게도 그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병원은 몹시 좋아 보였지만 홀로 외계에 떨어져 있는 듯한 이질감은 이틀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동부 버몬트 유니버시티에 갈 때는 나도 따라간 기억이 있다.

어느 10월.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갑작스레 차를 끌고 가야했던 남편. 혼자 애들을 데리고 집에 있기 싫었던 나는 갑자기 짐을 싸서 세살짜리 아들과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딸아이와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뉴욕에서 일곱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밤이 깊고 산넘고 강을 건넜지만 쉽게 나오지 않는 먼 길이었다. 버몬트의 밤은 깊고 깜깜했다. 미국 동북부의 깊은 늦가을은 밤공기에서부터 달랐다. 타샤튜터 할머니의 고장으로만 알고 있던 버몬트. 가슴이 두근거렸다.

호텔에 들어갈 때는 이미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으나, 깨끗하고 세련된 호텔의 인상과 웰컴기프트는 여독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버몬트 유니버시티 병원은 면접자를 위해 호텔도 예약해주고, 병원 기프트를 호텔에 미리 보내 웰컴기프트로 준비해 주기까지 하는 세심함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특히 그 때 처음 만난 ‘vermont maple candy’는 그 날 이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사랑하는 캔디가 되었다. 메이플 시럽으로 유명한 버몬트에서 직접 만든 메이플 캔디. 더이상 '초원의 집'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 숲에서 메이플 트리에 구멍을 뚫어 눈덮인 겨울에 메이플을 받아내는 수고를 하지는 않겠지만, 아직도 전통방법을 어느 정도 고수하고 있다는 유명한 버몬트 메이플 캔디.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란! 상상이상이다. 그 캔디를 입에 넣은 순간 나는 말했다.

“여보! 우리 버몬트로 오자!”

안타깝게도, 이틀 내내 백인이 아닌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하며 우리는 차마 버몬트 유니버시티로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버몬트의 가을과 메이플 캔디에 나는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지만! 여행지로는 좋을지언정 실제 생활하며 살아갈 자신은 없었던 것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인터뷰 여행을 갔던 Uc sanfrancisco에서는 남편은 그다지 좋은 기억을 안고 오지 못했다. 유난히 텃세가 강하다고 느꼈고, 동부의 이름없는 병원에서 온 남편을 이상하게 보고 배척하는 느낌을 가졌다고 했다. 그곳의 프로그램 디렉터는 정신과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바꿔보고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실력있는 의사들을 영입하고 싶어했으나, 배타적인 분위기에 변화는 결국 쉽지 않았다고 후에 들었다.


남편이 가장 가고 싶어했던 곳은 뉴헤븐에 있던 예일대학교 병원과,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유니버시티(보통 와슈라고 함)였다. ‘좋은 병원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특히나 남편이 계속해서 관심있어 해 온 ‘영유아 정신건강’의 진료와 연구가 특화된 와슈는 가장 매력있는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와슈에서 만난 프로그램 디렉터인 유태인 소아정신과 Dr. G와의 만남은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었다. 유태인 의사들과의 각별한 인연은 우리가 어딜 가나 따라다녔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인터뷰 끝에 남편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유니버시티 병원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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