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은 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사라졌는가
“공룡 멸종의 원인은 무엇인가.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다음 시간까지 제출하세요.” 미디어학과 전공 수업을 가르쳐주시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등학생 때 들었다면 그저 공룡 멸종의 원인을 단순히 서술하면 될 과제였겠지만 미디어학 수업에서 이 질문은 내 머릿속에 큰 물음표를 남기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교수님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너무 뜬금없게 느껴진 나머지 내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해졌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나는 수업 내용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수업 시간에 분명 힌트가 있을 것이기에. 교수님께서 그 질문을 하시기 전에 학생들에게 최근에 동물원에 간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땐 자주 찾던 동물원이었지만 이제는 다들 잘 가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 이제는 왜 동물원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해당 맥락과 연관 지어 공룡 멸종의 의미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동물원을 잘 찾지 않는다..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공룡 멸종도 분명 물리적으로 멸종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데.. 인식적 차원에서의 멸종을 물으시는 거 같은데.. 왜 공룡이 사람들의 큰 관심사로써 살아남지 못하였는지가 질문의 의미겠다!‘ 나는 질문의 의도를 대략 파악한 후 생각을 펼쳐 나갔다.
‘그렇다면 왜 공룡은 현대 사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나도 긴 시간이 지나버려서, 현대 정보화 시대에는 공룡보다는 당장 중요한 것들이 넘쳐나서?’
그럴 듯 하지만 시원한 답을 얻진 못한 기분이었다. 나는 관심 대상을 옮겨 보기로 했다. 공룡에만 머물기보다는 비교 대상을 찾아서 그 차이를 파헤치는 게 더 쉬울 듯싶었다. 이번에는 물리적 실체는 비록 존재하지 않지만 인식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존재하는 것은 뭐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없어. 근데 중요하게 기억되는 것? 아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이들 모두 한 때 이 세상에 존재했었고 생을 마감했지만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그들의 사상을 공부하고 믿고 있지. 이들이야 말로 물리적 멸종을 극복한 사례인 거야. 또한 신화도 생각해 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은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 때 실제로 존재했었던 공룡보다 분명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더 큰 지분을 차지해..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국가, 경제라는 것도 우리가 보고 만질 수는 없지만 우리 삶 속에서 배제될 수 없는 분명히 존재하는 개념들이지. 그렇다면 이것들은 무슨 이유로 공룡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 인식적 멸종을 면하게 된 걸까.‘
긴 고민 끝에 내가 얻은 답의 중심에는 바로 인간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같은 과거 철학자들은 우선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지혜를 남겼다. 신화의 경우 그것이 갖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인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상징성을 갖는다. 국가, 경제와 같은 개념들은 인간 사회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는 것들이다.
즉 이들은 결국 인간과 관련하여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의미와 이야기를 갖는다는 점에서 공룡과 다르다. 공룡은 인간과의 연관성도 부족하고 인간 사회에 영향을 줄 법한 의미나 상징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과거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인간 사회에서 기억되기에는 부족한 것이었고, 이들은 물리적 멸종만이 아니라 어느덧 인식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을 하면서 공룡을 얼마나 생각하고 접하는지, 정보 전달의 주 매체인 미디어에서 공룡은 콘텐츠로도 거의 선택받지 못하는 추세이다.
결국 물리적으로 존재하진 않아도 인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인간 사회에 어떤 의미를 주고 상징을 갖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관심 갖는 것들, 소비하는 정보와 콘텐츠들의 바탕에는 모두 인간이 그 중심에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