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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남은 인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by 기공메자

"내일을 걱정하는 대신,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라."

- 에픽테토스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의 걱정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은 살면서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후회가 뭘까? 후회는 우리가 과거에 한 일이나 결정에 대해서 아쉬움과 회한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때로는 어떤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면서, "만약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필자 역시 반평생을 살면서 후회를 참 많이 하면서 살아왔다. 지나간 세월을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앞으로 반평생을 더 살아야 하므로, 잘못된 부분을 반성하고 수정하며 나아가는 것이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지내온 일생을 회고하며 3가지를 가장 많이 후회한다.


첫 번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죽을 때가 되면 “좀 더 주면서 살 수 있었는데...” 하고 말이다. 이렇게 긁어모으고, 움켜쥐어 봐도 별것 아니었는데 왜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나서 이것이 가장 큰 후회가 된다고 한다.


두 번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걸,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쓸데없이 행동했던가? 라고 후회한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말이다. 복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또한 이러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관련하여 필자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1988년도에 소방공무원으로 입사했다. 80년대 공무원 봉급은 월 20여만 원 내외로 박봉이었다. 은행 대출을 받아 13평 아파트에서 아내와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은행 대출이자 갚기도 버거워 카드 돌려 막기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는 왜 그리 팍팍한 삶이었는지 모르겠다. 가족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아끼고 저축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삶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금전적으로 타인에게 베푸는 삶은 실천하지 못했다. 단지, 나의 직업이 소방관으로서 각종 재난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국민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음에 대해서는 나름 자긍심을 갖고 있다.


데이비스 브룩스 저자의 '두 번째 산'에서 첫 번째 산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하고, 두 번째 산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비유를 했다. 나의 삶은 인생 전반기에는 첫 번째 산을 오른 것이다. 인생 후반전은 타인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 보자고 계획해 본다. 헌신이란 말 그대로 대가를 기대하지 않은 채로 무언가에 매진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웃들과 글쓰기 나눔을 통해 헌신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관련하여 나는 농담이라도 상대방에게 악하게 못하는 성격으로, 남들 표현에 의하면 착한 사람이다. 셀프 칭찬하니 좀 뻔뻔한 것 같다. 가끔씩 자기 자신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며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은 자신감을 키우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억에 의하면 60 평생 타인에게 나쁜 말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직장 다닐 때 딱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소방 인사계장(소방령 / 5급 사무관)을 할 때의 일이다. 00항공대장(소방정 / 4급 서기관)이 사전에 나의 부서에 함께 근무했던 인사 담당자와 다툼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00항공대장이 나에게 찾아와서 "계장님! 직원 교육 똑바로 시키세요."라고 하는 거였다.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 야 이 X 새끼야. 내 직원 교육은 내가 시키는 거야. 네가 뭔데 남의 일에 콩 나라 밤 나라 하는 거야"라고 과 사무실 직원들이 다 듣게 큰 소리를 친 적이 있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욕이었다. 그때 좀 참을걸,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세 번째,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관련하여 나는 소방관이라는 공직자의 신분이 되면서부터는 오로지 국민들 안전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은 늘 뒷전이었다. 생각만 하면 아내와 아들 생각이 자꾸 난다. 남편이‥ 아빠가 미안했다고… 지금은 소방관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그나마 복지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당시는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근무체계였고, 설·추석 명절과 건조·강풍·풍수해 등 기상 특보가 발효되면 늘 비상근무를 해야만 했다. 하물며 VIP가 해외 순방 나가면 또 비상근무를 해야만 했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1년 365일 중 3분의 2는 소방서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다. 여름휴가 중에도 풍수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비상근무가 발령되어 즉시 복귀해야 했다. 해외여행! 어림도 없다. 국내 여행이라도 마음 편히 가봤으면 했다.


소방관은 늘 걱정 속에서 1년을 보낸다. 봄철에는 농사철 농기계 안전사고 및 산불 걱정! 여름철에는 휴가철 이동객 및 물놀이 안전사고 걱정! 가을철에는 단풍철 관광객 안전사고 및 산불 걱정! 겨울철에는 빙판길 안전사고 및 폭설 고립사고 걱정!


이제 좀 살만하니 아들은 다 성장해서 홀로서기 하겠다고 한다. 아내는 아직 직장인이어서 함께 여행 가기가 쉽지 않다. 젊은 시절 가족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해 후회가 많다.


<핵심> 인생 전반전을 마무리하면서 후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을 한다.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생을 다하는 날까지 가족에게 헌신하면서 살고자 한다. 또 글 쓰는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도 나눔 하며 베푸는 삶을 실천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격언처럼 숙고·성장·도전하는 삶을 살 것이다.


<글의 요약: 후회의 길목에서>


지나간 날에 후회가 스며들어,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나누고, 참으며 살리라.


베풀지 못한 손길 그리워,

무겁게 쥔 것들이 아쉬워,

오늘은 나누며 살아가리라.


참지 못한 말이 부끄럽지만,

그때 더 참았다면 달랐을 텐데,

이제는 더 여유를 가질 것이다.


행복을 잃어버린 날들,

웃으며 살아가리라.

후회의 바람 속에서도,

내일을 향해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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