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김치

할머니 김장김치의 유통기한

by 정 은 작가

2011년 11월 29일....

친정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한 날...

친정엄마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정 할머니 댁에서 김장을 하며 시집 간 큰 손녀에게 김치 한 통을 보내라 하셨는데, 그 김치를 받았냐고...

주말에 친정 할머니랑 엄마가 김장을 100포기 하셨단다. 그리고 그 중 몇 포기가 우리 집으로 보내진 것이다. 김장 후라 그러신지 할머니께서 몸살 기운이 심하다고 하셔서 어제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단다. 혈관까지 다 전이가 된 상태시란다.

친정 부모님은 일단 할머님을 단순 감기라고 하고 병원에 입원시키고, 입원 관련 물품을 챙기러 나오시는 중이란다. 엄마와의 통화를 끝낸 후 어제 온 택배를 아직 냉장고로 넣지도 않고 베란다에 턱하니 놓아둔 김치를 얼른 식탁으로 가져왔다. 사람이 어찌나 간사한지...

매년 아무렇지도 않게 김장 김치를 받아먹다보니 ‘올해 또 보내셨구나~ 내가 시간이 날 때 김치냉장고에 정리해야지’ 하며 베란다에 택배로 온 김치를 그냥 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님이 췌장암 말기라고 하니, 택배 온 김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식탁위에 올려놓고선 마지막이다 싶어 사진도 찍고, 혼자 펑펑 울었다.

7남매 장남의 맏손녀가 나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친정 조부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지금도 시집 간지 8년이나 된 맏손녀의 아이들 이름까지 다 기억해 주신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 가끔 맡겨져 자라다 보니 내게는 엄마 같은 할머니시라 할머님의 병명을 알게 되니 묵직한 아픔과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친정 부모님은 이제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볼 것이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위해 나도 주말마다 대구에 내려가겠지...

유한(有限)의 시간을 살면서 무한(無限)의 삶을 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다니...

이 마지막 김장 김치를 어찌 먹을꼬...

어릴 적 시골에 가면 김장 후 점심에는 늘 김치 볶음밥이었다. 안방에 놓아둔 화로는 할머니의 전용 버너였다. 점심에는 화로에 삼바리를 올려놓고 시커먼 손잡이가 있는 웍을 올린 후 들기름을 자작하게 부어 팬을 달궜다. 그런 후 김장 김치를 손으로 대충 찢어 들기름 두른 팬에 볶으셨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와 함께 김치의 양념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적당히 김치와 들기름의 고소한 꼬신내가 나면 아랫목 이불에 넣어둔 밥 2공기를 꺼내어 볶은 김치 위에 올리셨다. 그럼 신문지 위로 팬을 내려 볶은 김치와 밥을 비비셨다. 완전한 김치 볶음밥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할머님표 김치볶음 비빔밥이 완성이 된다. 그리고 혹 매워 못 먹을까 손녀 걱정하며 아침에 해둔 계란 후라이를 할아버지도 안 계실 때 내 밥그릇에 올려주셨다.

그렇게 할머니 댁이 있는 소백산 산골 마을에서 겨울을 날 때면, 김장으로 생긴 찬으로 점심때는 계란 올려 진 세련된 볶음밥으로 반찬 투정 없는 겨울을 보내었다.

할머니와 김치에 얽힌 추억이 있다 보니 시집간 큰손녀에게 8년째 할머니 김장 김치를 보내주셨다. 김장 김치를 보내는 할머니의 핑계는 서른 평생 할머니 김치를 먹다가 낯선 시댁 김치가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냐며 그리 김장 김치를 보내주셨다.

나도 아이를 낳고 기르지만, 아이들 이유식 시기를 끝내니 해방감에 야호를 불렀던 엄마였다. 그런데도 친정 할머니는 당신의 손녀를 위해, 손녀의 자식들을 위해 아직도 내 먹거리를 그리 걱정해주시는 분이셨다.

그런 분이... 무한히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이 땅에서 유한의 시간을 살며 저 천국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신단다...

이사 갈 천국에서는 무한의 시간을 누리며 자식 걱정, 손주들 걱정이 아닌,

할머니의 삶이 온전히 주어지길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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