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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에이 Dec 13. 2019

85. 황금죽, 추억

서천 카페 실내에서 만난 아이들로 인증을 편하게 해나가고 있다. 이제 몇 개 안 남았다 ㅜㅜ

오늘은 황금죽.
이 녀석과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

엄마는 나와 달리 반려식물을 정말 잘 기른다. 물 주고 햇살 주는 건 기본. 매일 마른 수건으로 잎을 닦아주고, 때가 되면 분갈이도 잘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영양제도 준다. 지나가다 길가에서 이름 모를 이파리를 주워 엄마가 화분에 심으면 무럭무럭 자라 화분이 되곤 했다. 그중 하나가 황금죽이었다.

신랑과 내가 결혼하고 2년 뒤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 엄마는 그렇게 키워 정성스레 분갈이 한 황금죽을 선물했다. 황금죽만 준 건 아니었다. 몇 개가 더 있었다. 맞벌이라 바빴다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 나는 그 녀석들에게 관심을 주고 잘 기를 자신이 없었다. 엄마가 정성스레 키워 준 그 화분들은 우리의 첫 집에서 처참하게 죽어가기 시작했고 엄마가 일산으로 오게 되면서 도로 가져갔다.

우리 집에서 거의 다 죽어가던 녀석들이 엄마네로 가니 파릇파릇 생생해졌다. 녀석들은 엄마의 따스한 온정을 받으며 잘 자랐다. 지금까지 녀석들은 엄마네서 몇 번의 분갈이를 했고, 그중 하나는 시댁으로 입양되었다.

엄마 손에서 잘 자라는 그 녀석들을 보면 생각한다. 엄마의 연약함이 문제였던 게 아니라, 온정을 연약함으로 받아들인 내 안의 무언가가 문제였던 게 아닐까 하고.

여전히 나는 관상용 식물 앞에선 주춤한다. 알고 싶어 길러보려고 하지만 백전백패하기 때문이다. 넘어서지 못하는 무언가가 자꾸 걸리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덕분에 추억을 곱씹으며 내 안의 까칠한 그 녀석을 또 한 번 만나본다.

아, 그런데 황금죽이 백합과란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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