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저 멀리 저벅저벅 걸어오는 걸 보았지. 알 수 있었지. 아, 목감기구나! 너. 걸어오는 모양새가 딱 그랬지.
며칠 찬바람에 목을 내놓고 다녔거든. 논다고 애 좀 쓰기도 했고. 입천장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연결 부위 있지. 거기가 엄청 따끔거리더라고. 신경이 쓰여서 모과차를 따뜻하게 타서 마셨어. 역시 모과차. 바로 목에 기름칠한 것처럼 낫길래 약한 애인가 했어. 그러고 또 하루 이틀 신나게 보낸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목에 뜨겁게 달궈진 철 수세미 하나가 지나가는 것 같지 뭐야. 모과차로 진압된 줄 알았던 건 내 착각이었지.
바로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어. 처치를 아주 거침없이 하는 병원으로 내가 선정했거든. 어르고 달래고 이런 거 없어. 한방에 낫고 싶으면 무조건 거기에가. 난 의사가 아니니까 어떤 의학적 처치인지 잘 모르지만 말이야. 뭘 뿌린 다음에 뭐로 문지르거든. 나는 이걸 조진다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는데. 정말 그런 기분이야. 아픈 목을 일단 더 아프게 만드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따끔거리던 목이 씻은 듯 가라앉아.
코에도 뭘 찔러 넣고, 뭘 뿌리고, 뭘 뽑는데 이게 다 뭔지 몰라도 눈까지 시큰거릴 정도로 아프거든. 이상한 건 그걸 하고 나면 코하고 목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원활하게 연결돼서 모든 게 편안해져. 어른도 눈물 찔끔 날 정도인데, 아이들은 오죽하겠어. 그런데도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종종 오는데, 나는 이제 알지. 엄마의 마음을. 당장에 괴로워도 빨리 나으니까 거기로 오는 거야.
병원 문을 나서서 약국까지 가는 동안 벌써 나아지는 게 느껴져. 거짓말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한번 감기에게 속았으므로 넘어가지 않지. 안심하는 대신 한약으로 된 감기약 몇 포를 더 사.
집에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뜨끈한 물에 감기약을 먹어. 한약을 따뜻하게 데운 다음에 그것도 천천히 마셔. 달큰한 쌍화탕이 목구멍을 타고 천천히 흘러도 입이 좀 마르고, 혓바닥에 약의 쌉싸름한 맛이 남은 것 같을 때. 담요를 덮고 누워버리는 거야.
약 기운에 한숨 자고 나면 자는 동안 흘렸던 땀이 살짝 식으면서 개운해지는데,
그게 참 좋아. 낫고 있다는 게 실감나잖아.
다 그런 게 있지 않아? 내가 아플 때 나한테 잘 통하는 비법 같은 거.
생리통일 땐 어떻게 하고, 두통일 땐 어떻게, 체하거나 속이 안 좋을 땐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아픈 건 싫은데, 내가 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아가려면 아파보는 것밖에는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내심 좀 어른이 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나를 낫게 하는 나만의 비기를 알고 있으면 안전하잖아. 언제든 나아질 수 있으니까.
내가 나랑 살 때 알아야 할 게 뭐 별건가.
이런 것만 알아도 좀 수월할 것 같아.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