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베르, 법이라는 이름의 별을 쫓은 사내의 뒷모습
간밤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음원을 들었다. 미제라블을 보다 보면 유독 눈에 밟히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 장발장이 아니라, 그를 평생 쫓는 경찰 자베르다. 보통은 그를 꽉 막힌 악역이라 부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하지만 너무나 위태로운 '원칙주의자'의 정점이다. 레 미제라블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건 장발장의 고난보다 자베르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자베르라는 인물은 파고 들수록 마음이 복잡해지는 캐릭터다. 단순히 악역이라고 치부하기엔 그가 가진 신념이 너무나 확고하고 고결하여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자베르를 또한 단순히 '원칙주의자'로만 보기엔 그 영혼 밑바닥에 깔린 결핍과 슬픔이 훨씬 더 깊다. 그가 가진 지독한 외로움, 자기혐오를 읽은 자들은 레 미제라블 내내 자베르를 발을 동동구르며 보게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념이 굉장히 유연한 편이라 나와는 정반대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베르를 안타까워하고 좋아하는 걸 보면, 그가 가진 비극적인 정의감을 가슴 깊이 동경하는 때문일 것이다.
자베르가 안타까운 이유
1.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법 집행자이자 사냥꾼
자베르는 감옥에서 태어난 자신의 출신을 평생의 수치로 알았다. 그는 법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그가 장발장을 그토록 집요하게 쫓은 게 장발장의 모습에서 자신의 뿌리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기능이 된 삶
자베르에겐 친구, 연인 그리고 취미도 없다. 그는 오직 '경찰'이라는 직업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보여진다. 다른 인물들이 사랑이나, 꿈 그리고 혁명을 위해 노래할 때 그는 오직 임무만을 노래한다. 차가운 제복 속에 자신을 가줘버린 그 메마르지만 숭고한 삶이 너무나 안타까운 부분이다.
3. 정직함이 독이 되어버린 남자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틀렸을 때 적당히 타협하거나 변명을 늘어놓으며 살아남는다. 자베르는 '내가 틀렸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 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만큼 정직해버렸다. 그는 자신의 오류조차 정직하게 단죄해야 했던 영혼이었다.
4. 세계관이 무너져버린 남자
장발장이 자신을 살려주었을 때, 자베르는 감사가 아닌 공포를 느꼈다. 자신이 평생 믿어온 '법의 정의'보다 '인간의 자비'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1막 대미를 장식하는 "One Day More(내일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웅장하고도 복잡한 서사가 담긴 곡이다. 단순히 곡이 좋은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목적과 운명을 가진 인물들이 내일이라는 시점을 두고 각자의 속마음을 쏟아내는 '폴리포니(다성음악)'의 정수다.
이 노래는 여러 인물의 멜로디가 겹쳐지며 진행되는데, 그들이 기다리는 '내일'이 모두 다르다. 모두가 내일의 사랑과 혁명을 노래하는 'One Day More'에서 자베르는 혼자 다른 결을 걷는다. "이 폭동의 불꽃을 잠재우고 질서를 되찾겠다"는 그의 다짐은 웅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애석하다. 타인은 내일의 희망을 꿈꿀 때, 그는 오직 '과거의 죄'를 단죄하기 위해 자신의 내일을 바친다. 그 지독한 성실함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첫 단추였다는 사실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모두가 내일의 희망을 노래할 때, 자베르는 오직 '단죄'를 위해 자신의 내일을 바친다. 그 지독한 성실함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첫 단추였다는 사실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비극적인 모두의 운명 앞에서도 결국 내일은 온다는 장엄함, 그것이 '내일로'가 주는 소름 돋는 감동이다.
- 장발장 : 자베르의 추격을 피해 코제트와 다시 도망쳐야하는 두려운 내일
- 마리우스와 코제트 : 혁명 그리고 도피, 혼란 속에서 갓 시작된 사랑이 헤어짐으로 끝날까 애타는 내일
- 에포닌 : 짝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위해 그의 사랑을 찾아줘야만 했던 가슴찢어질, 외로운 내일
- 앙졸라스와 혁명군 :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독재에 맞서 싸워 세상을 바꿀 운명의 내일
- 테나르디에 부부 : 혼란을 틈타 시신을 뒤지고 돈을 챙기며 꿈꾸는 탐스러운 내일
- 자베르 :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장발장을 반드시 체포하겠다는 집념의 내일
인물들의 속사정이 정말 다르다. 이 곡의 소름 돋는 점은 이전에 나왔던 각 인물의 테마곡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인데,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의 테마곡 'I Dreamed a Dream'의 변주나 'A Heart Full of Love'의 감성을 가져간다. 자베르는 특유의 단호한 저음을 유지하며 마지막 모든 인물이 합창하며 'Tomorrow Comes!'를 외친다. 이는 비극적인 모두의 운명 앞에서도 결국 내일은 온다는 희망과 두려움이 뒤섞인 장엄함이 있기 때문이다.
자베르의 진심은 그의 솔로곡 'Stars'에서 가장 빛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제 자리를 지키는 별들을 보며, 그는 법과 질서의 영원함을 찬양한다. 흔들림 없는 별이야말로 그가 평생 닮고 싶었던 완벽한 존재였으리라. 하지만 별은 따뜻함을 주지 못한다. 차갑고 완벽한 그 빛은 결국 그가 맞이할 시린 최후를 예시하는 것만 같아 더 슬프게 들린다.
그의 솔로곡인 'Stars'를 들어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변하지 않는 질서를 찬양하는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고독하고 단단한지 잘 느껴진다. 그 강직함이 결국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 하면서도 슬픈지점이다.
자베르는 끝내 장발장의 자비라는 '예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평생을 바친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삭제했다. 유연함이 미덕인 세상에서 끝까지 부러지는 길을 택한 그의 고집. 그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순수한 형태의 결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차가운 강직함을 사랑하게 된다.
자베르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원칙주의자'의 극단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자베르라는 인물은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시스템의 수호자'이지만, 그 시스템이 담지 못하는 '인간성'이나 '예외'를 인정하지 못해 무너지는 비극을 상여한다.
이런 지독한 원칙주의자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자베르를 보며 느꼈던 그 복잡한 감정처럼, 그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버거운 존재들이다.
1. 그들이 있어 다행인 점: '예측 가능한 공정함'
세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뼈대 역할을 해줘야 한다. 빽도 안 통하고 뇌물도 안 통하는, 그 서슬 퍼런 원칙이 살아있어야 사회에 '예측 가능성'이 생긴다.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적당히 타협하고 눈감아줄 때, 자베르 같은 이들은 끝까지 선을 지킨다. 그들의 고집 덕분에 우리는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산다. 부패한 곳을 정화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결국 타협 없는 원칙이다.
2. 그럼에도 그들이 아픈 점: '숨 막히는 정의'
하지만 원칙이 '사람'보다 앞설 때 그 정의는 흉기가 된다. 법의 글자 하나하나에만 매달리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고뇌와 눈물을 보지 못한다. 유연함이 거세된 원칙은 주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옥죄어 버린다.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시선은 때로 정의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자베르의 비극은 그가 악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세운 그 완벽한 올바름의 노예가 되어 일어난 일이다. 스스로 만든 정답에 갖혀 그 정답보다 더 거대한 '인간의 자비'라는 예외를 품지 못한 고결한 맹신자. 그래서 나는 그 강직함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참으로 마음이 안타깝다.
글을 마치며: 숭고함 앞에 선 나의 작은 고백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감히 그 숭고한 영혼을 두고 '안타깝다'느니 '마음이 아프다'느니 말할 자격이나 되는 걸까. 자신의 온 생애를 던져 신념을 증명하려 했던 그 거대한 인물 앞에서, 나의 연민은 어쩌면 참으로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 쉽게말해.. 내가 이 존재를 불쌍하다 아니다 할 깜냥이 안된다는 것 같단 말이다..
하지만 그를 향한 이 애석함은 내가 그보다 나아서가 아니다. 그가 짊어졌던 그 무겁고 차가운 별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느끼고 싶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경외심이었음을 고백한다. 자베르, 그는 끝내 부러졌지만 그 파편조차 눈부시게 빛나는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