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의 힘 : 사치에 대해서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문턱 : 의례

by Spring street

나는 사치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는 벌이와 저축간의 균형을 지키지 못한다는 고백과도 같다. 이 글은 어느샌가 와이프도 보게 되었다. 와이프도 보게 된 탓에 일종의 변명이 필요해 이 글을 적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번 글은 과소비에 대한 변명문이라고 봐도 좋다.


나는 고가의 물품에 담긴 스토리와 디자인 철학을 참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안경을 위해 안경점에서 비싼 류들이 모이는 코너에서 고른 안경이 몇 개. 실력과는 관계없이 모양이 아름다운 골프 클럽이 몇 개. 글을 쓰기 위해 모은 만년필이 몇 개와 만년필 보관함. 그리고 색깔놀이를 위한 잉크들. 다양한 소품과 잘 정리하기 위한 소품함들. 그리고 매장을 수리하기 위해 구매한 고가의 공구와 공구함. 나의 삶을 대변해준다 생각하는 의류 브랜드의 옷. 용도별 셔츠와 벨트, 구두 그리고 타이까지. 새로운 세계를 알 수록 점점 더 디테일이 쌓여간다.


우리는 흔히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일단 실행하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시작의 절반은 실행 그 자체가 아니라, 실행을 가능케 하는 환경의 구축에 있다. 엔진이 돌기 전 예열이 필요하듯, 인간의 정신이 일상의 관성을 벗어나 고도의 몰입 상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리적인 문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을 생략한 채 몰입을 강요하는 것은, 악기가 조율되지 않았는데 연주를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조율되지 않은 현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나올 리 없듯, 자신의 환경을 감성적이고 실질적으로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노력은 공허한 삽질에 그치기 쉽다 느꼈다. 그래서 환경을 가꾸고 의례를 치르는 행위는 결코 비효율적인 군더더기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에너지를 한 점에 모으기 위해 흩어진 정신을 수렴하는 가장 지능적이고 실질적인 '정신 조율(Mind-setting)'의 과정이다.



스티븐 프레스필드


"아마추어는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프로는 자리에 앉아 도구를 정비하며 영감을 소환한다"



나를 아는 가까운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조명의 각도를 맞추고, 만년필의 잉크를 정하고 채우고 필요하면 닦고, 굳이 마음에 드는 잔에 커피를 담고, 책상 위 소품의 위치를 결벽증 환자처럼 조정하느냐고. 그 시간에 차라리 한 글자라도 더 쓰고,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고, 글을 끄적이기 시작하는게 실속 있는 행동 아니냐고 말이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자면, 나에게 이 과정은 사치스러운 취향이나 시작을 미루기 위한 게으른 변명이 아니다. 이것은 차가운 세상의 속도에 내 영혼이 마모되지 않도록 치르는 가장 묵직한 ‘생존의 의례’다. 나는 내 삶이라는 영화를 책임지는 감독인 동시에, 그 스크린 속을 살아가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행위나, 돈을 벌기 위한 행위는 결국 내 이 의례 과정을 더욱 내 딴에는 숭고하게 하기 위함에 있다.


모든 영화는 첫 촬영 전, 빈 세트장에 조명을 달고 소품을 배치하는 지루한 과정에서 시작된다. 감독에게 있어 세트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주인공의 감정을 지배하고, 대사의 무게를 결정하며, 장면의 공기를 완성하는 절대적인 영역이다. 세트가 어설프면 배우는 몰입할 수 없고, 감독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나에게 환경을 가꾸는 일은 바로 그 ‘세트장을 짓는 행위’와 같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이 내가 원하는 결로 채워지지 않았을 때, 내 안의 엔진은 결코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는다. 디테일이 무너진 환경에서 억지로 짜내듯 내놓는 결과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며, 결국 나라는 사람의 본질까지 흐릿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결과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믿는다. 디테일은 장식이 아니라 본질을 지탱하는 뼈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준비'라는 이름의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나만의 성소(Sanctuary)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내가 선택한 음악이 공간의 공기를 바꾸고, 손끝에 닿는 도구들이 비로소 이 작업의 적임자처럼 느껴질 때, 내 뇌는 비로소 '일상'이라는 모드를 끄고 '창조'라는 모드를 켠다. 그때야 비로소 내 삶, 내 취미, 내 시간이라는 영화의 슬레이트가 쳐진다.


이 의례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나는 감독의 의자에서 일어나 주인공의 위치로 걸어 들어간다. 완벽하게 세팅된 세트장 위에 선 주인공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소품이 제자리에 있고, 빛이 내가 원하는 각도로 쏟아질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이라는 카메라 앞에서 가장 나다운 연기를 펼칠 수 있다. 남들에게는 낭비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밀도 높은 몰입으로 뛰어들기 위한 에너지의 응축 시간인 셈이다.



윈스턴 처칠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그 후에는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이것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장센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주문이다. "이제 네가 주인공이 되어 몰입해도 좋을 만큼, 모든 무대는 완벽하게 차려졌다"라는 허락이다.


준비가 길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세트장을 짓는 데 공을 들인 감독만이 관객의 영혼을 흔드는 장면을 뽑아낼 수 있듯이, 나만의 의례를 견고히 쌓아 올린 사람만이 삶의 매 순간을 영화 같은 감성으로 완성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의례를 치루며, 나의 시간을 가치 있다 여기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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