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서해를 품다

by 목하


바닷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소라에 귀를 대면 들리던 그 바닷소리를 듣고 싶었다.


직장생활에 좀 적응을 하나 싶었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아직 새롭고 낯설었다. 내가 발버둥 칠수록 더 나에게 착 달라붙는 것만 같은 스트레스들이 쌓여갔다. 그런 스트레스를 바닷소리로 쏴아 밀어내고 싶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바닷소리가 필요했다.


그런 내 마음을 들은 남자친구가 이번 주말 서해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가만.. 언제 서해를 보았던가? 동쪽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서해 바다는 나에게 그려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 사회과 부도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동해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수심이 얕아 다양한 갯벌 생며체들이 산다. 뭐 그 정도…


지난 토요일 아침.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일찍 집을 나섰다. 집에서 1시간 반 남짓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서해로 향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희뿌연 해무들이 사방을 덮어 바다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찰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 남자친구와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어느새 해가 뜨며 서서히 해무가 걷히고 반짝거리는 서해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찬란했다.


질퍽한 모래 곳곳에 각색의 조개가 문양처럼 박혀 있었다. 열에 하나 소라가 있었지만 내가 기대한 커다란 소라는 아니었다. 바닷소리를 담고 있을 만한 소라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소라를 찾아주는 남자친구를 보니 그 아쉬움은 다시 행복함으로 번졌다.


문득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서해 근처에 발령을 받아 함께 살았던 게 기억났다. 어릴 적 찍은 사진 한 장이 떠올랐던 것이다. 해맑은 표정으로 손에 모래를 잔뜩 묻히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나. 전라도 서해에서 찍은 거랬다. 사진 속 나는 이 세상 행복을 다 품고 있는 듯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자친구가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어쩌다 돌아가신 거야?”

“돌연사. 원인을 몰라”


아버지의 사인은 돌연사였다. 그 사실이 너무 어이없어 어머니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그 시절 아버지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성품이 순하시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셨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셨다. 그런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적 과로가 쌓여서 갑자기 상태가 위독해지셨고 그렇게 아버지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져 하늘로 먼저 떠나시게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성격을 빼닮은 나였다. 나는 이제 그 아버지의 고달픔을 몸소 겪고 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아버지께 가서 그 고달픔을 어루만져 준다면 아버지는 더 오래 사셨을까? 말도 통하지 않던 딸 대신 비슷한 고달픔을 가지고 있는 딸로서 아버지의 차디찬 손을 어루만지며 서해처럼 찬란한 미소를 띠어 보이면, 아버지의 마음이 이내 따스해졌을까?


애석하게도 지금의 나와 그때의 아버지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차디찬 세상을 낭창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낭창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도와주고 계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 곁에는 나를 딸처럼 어하둥둥 챙겨주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말이다.


얕은 물결의 어루만짐 속에서 말갛게 빛나던 조개껍질들, 저무는 해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 연하게 채색된 서해의 하늘,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 이런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이게 삶의 기쁨이지. 이 기쁨을 품에 안고 또 오는 나날들을 명랑하게 살아보자!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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