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참으로 어렵도다!
고등학교 때 물리학을 싫어했다.
물리 선생님을 '제물포(제기랄 물리 포기)'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물리를 못하고 싫어하는 걸 선생님 탓이라고 했다^^;
물리학은 재미없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여전히 어렵다.
리처드 파인만도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안이 되고, 이 말로 핑계를 삼을 수 있겠다.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 물리학에 익숙하지 않으며 양자 물리학이 무엇인지, 양자 물리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프롤로그에 밝혔다. 어쩌면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하기보다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도 했다.(p.11~12)
양자론은 화학의 기초, 원자와 고체 그리고 플라즈마의 작용, 하늘의 색깔, 우리 뇌의 뉴런, 별의 동역학, 은하의 기원 등 세계의 수많은 측면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은 컴퓨터에서 원자력발전소에 이르기까지 최신 기술의 기초가 됩니다. 공학자, 천체 물리학자, 우주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은 매일 이 이론을 사용합니다.
양자론은 이 세계가 정해진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 입자들로 구성된 것이라는 세계의 이미지를 부숴버렸지만, 우리가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양자론의 낯설음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공간 속의 입자들이라는 단순한 유물론의 실재보다 더 섬세한 실재, 대상들 이전에 '관계'로 이루어진 실재를요.
'프롤로그- 눈부신 현실의 실체를 마주하다' 일부 발췌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양자역학의 기본상수인 '플랑크 상수'를 만들고,
아인슈타인은 빛과 그 밖의 모든 전자기파가 실제로 기본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입자는 진동수에 따라 고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최초의 '양자'인 것이죠. 오늘날 우리는 이를 빛의 양자인 '광자'라고 부릅니다. 이 광자의 크기를 플랑크상수 h로 측정합니다. 각 광자는 그것이 속해 있는 빛의 진동수의 h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갖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기본 에너지 입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광전효과라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고, 실제 측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특성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1905년 초에 이미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제기된 문제가 매우 심각하여 역학을 완전히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최초로 깨닫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양자론의 정신적 아버지라 불리고, 여러모로 양자역학에 영감을 주었죠. 빛이 파동인 동시에 광자의 구름이라는 그의 생각은 혼란스럽지만...
막스 보른은 아인슈타인에게서 역학을 완전히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측정 가능한 양으로만 관심을 제한했죠. 슈뢰딩거의 출발점이 된 드 브로이의 아이디어도 아인슈타인의 광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1부- 기묘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들여다보라: 세계의 입자성(p.48~50)
양자론을 구축한 사람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노벨상 연속 수상으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 빛의 양자를 도입해 광전효과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1922년에는 닐스 보어가 원자의 구조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죠. 1929년에는 드 브로이가 물질파의 개념으로 수상했습니다. 1932년에는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창시'로, 1933년에는 슈뢰딩거와 디랙이 원자 이론의 '새로운 발견'으로, 1945년에는 볼프강 파울리가 이 이론에 대한 기술적 기여를 한 공로로, 1954년에는 막스 보른이 확률의 역할을 이해한 공로로 (사실 그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냈지만요) 수상하였습니다. 유일하게 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파스칼 요르단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하이젠베르크와 보른과 요르단이 이 이론을 창시했다고 (옳게) 주장했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요르단은 나치 독일에 너무 많은 충성을 보였습니다. 인간은 패자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법이죠.
1부- 기묘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들여다보라: 세계의 입자성(p.54~55)
[배경 지식]
막스 플랑크
독일의 물리학자(1858~1947). 독창적인 에너지 양자(量子)에 대한 생각에 도달, 보편상수 h(플랑크상수)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매우 혁명적인 생각으로서 마침내 양자론의 전개를 초래하였고 물리학에 커다란 전기(轉期)를 가져왔으며, 이 공로로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막스 보른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1882~1970). 양자 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른은 "양자역학, 특히 파동 함수의 통계적 해석에 대한 기초 연구"로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33년 1월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하자 유대인인 보른은 괴팅겐 대학교 교수직에서 정직되었다. 이후 영국으로 이주(출처: 위키 백과)
하이젠베르크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양자역학의 주요 선구자 중 하나(1901년~1976). 막스 보른과 파스쿠알 요르단과 함께 논문을 쓰기도. 1927년에 발표한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나치 독일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우란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이기도 하였다. 하이젠베르크는 클래식 음악을 즐겼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다방면에 소질이 뛰어난 천재였다고.(출처: 위키 백과)
슈뢰딩거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파동역학의 건설자(1887년~1961). 슈뢰딩거 방정식은 시스템의 파동 함수를 계산하고 시간에 따라 어떻게 동적으로 변하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양자 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양자 물리학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후, 1935년에 코펜하겐 해석을 반박하는 아주 중요한 사고 실험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으로, 이들의 이름 머리글자를 따서 EPR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슈뢰딩거의 이름으로 제안된 슈뢰딩거의 고양이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1935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어떤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고 계수기와 망치가 연결되어 계수기가 방사선을 감지하면 망치가 상자 안에 있는 병을 깨트려 병 안에 들어있는 독성물질이 흘러나오며, 이 상자를 열기 전에는 안에 있는 고양이가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로 공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양자 중첩 상태가 뭐냐는 질문에 까 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설명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불충분한 설명이라는 주장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드 브로이
프랑스 물리학자이자 귀족(1892년~1987). 전자의 파동성을 가정하고 모든 물질에는 파동의 특성을 갖는다고 제안했다. 이 개념은 양자역학 이론의 중심 부분을 형성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닐스 보어
덴마크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1885년~1962). 코펜하겐 대학교에 이론물리학 연구소(현재의 '닐스 보어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 연구소는 1920년에 문을 열었다. 보어는 한스 크라머르스, 오스카르 클라인, 게오르그 해베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포함한 물리학자들을 멘토링하고 그들과 협력했다. 1930년대에 보어는 나치즘의 난민들을 도왔다. 덴마크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후, 그는 독일 핵무기 프로젝트의 수장이 된 하이젠베르크와 유명한 만남을 가졌다. 1943년 9월 보어는 독일군에게 체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스웨덴으로 도피했다. 그곳에서 그는 영국으로 가서 미국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영국 임무인 '튜브 앨로이스'에 관여했다. (출처: 위키 백과)
이토록 많은 찬사를 받고 이토록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수많은 기술을 낳았는데도, 이 이론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닐스 보어는 이렇게 씁니다.
"양자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에 대한 추상적인 설명만이 있을 뿐이다. 물리학의 임무가 자연이 어떠한지 기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리학은 자연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다룰 뿐이다"
1부- 기묘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들여다보라: 세계의 입자성(p.55)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 사진이다.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마리 퀴리,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인류의 전설과 같은 물리학자들이 모여 있다. 참석자 29명 중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다. 그래서 이 사진엔 ‘역사상 가장 똑똑한 사진’, ‘인류 최강 정모(정기모임)’, ‘물리학자 어벤저스’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물리학자들이 이 사진에 자기 얼굴을 합성해 넣어 패러디하는 경우도 많다. 벨기에 기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의 기부금 덕분에 최고의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이 회의에선 당시 태동한 양자역학 이론이 맞는지 격론이 벌어졌다. 보어가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하자 아인슈타인은 자연현상은 확률이 아니라 엄격한 인과법칙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토론 끝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보어가 옳았던 쪽으로 가고 있다.
책만 읽어서는 '양자역학'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어서 동영상을 참고했다.
https://youtu.be/5qda0bql1cg?si=gosii5hkNHEc_GpT
이 책을 감수하신 이중원 교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https://youtu.be/6JBKUG-B83c?si=rKyfBKUsQHToUPWO
삼프로TV '언더스탠딩' 에서 카이스트 김갑진 교수님을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양자역학'과 '양자 컴퓨터'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책 2부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양자 현상에서 뭐가 그렇게 이상한 걸까요?
전자가 특정 궤도에 있다가 이리저리 도약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양자의 기묘함은 '양자 중첩'이라고 불리는 현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양자 중첩'이란, 어떤 의미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속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대상이 여기에 있으면서 저기에도 동시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이젠베르크가 "전자는 더 이상 하나의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죠. 전자는 여기나 저기 중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둘 다에 있습니다. 전자는 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마치 한 번에 여러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한 대상이 여러 위치의 '중첩된 상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렉은 이 기묘함을 '중첩 원리'라고 부르며 양자론의 개념적 기초로 삼았습니다.
2부 극단적인 아이디어를 모은 기묘한 동물 화집 p.63
꿈처럼 미묘하고 매혹적인 양자 현상, 바로 '얽힘'은 여러 양자 현상 중에서도 가장 미묘한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서 우리를 가장 멀어지게 하는 현상입니다. 슈뢰딩거의 지적대로, 양자역학의 진정한 특징이죠. 그러나 그것은 실재의 구조 자체를 엮어내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2부 극단적인 아이디어를 모은 기묘한 동물 화집 p.63
양자의 기묘함은 '중첩'과 '얽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양자 역학 원리가 종합적으로 들어간 기술이 ‘양자 컴퓨터’입니다. 기존 컴퓨터는 전기가 통하면 1, 통하지 않으면 0으로 표기하는 2진법 구조의 ‘비트’로 구성돼있습니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돼있는 ‘큐비트(qubit)’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세계를 큰 규모에서 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입자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수많은 작은 변수들의 평균치입니다. 개별 분자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전체를 보는 것이죠. 너무 많은 변수가 관여하기 때문에 요동은 무의미해지고 확률은 확실성에 가까워집니다. 흔들리고 요동치는 양자 세계의 무수히 많은 불연속적인 변수들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서는 몇 개의 연속적이고 잘 정의된 변수로 귀착됩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달에서 바라본 모습과 같습니다. 푸른 구슬의 매끈한 표면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렇기에 양자적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양립할 수 있는 겁니다. 양자론은 고전역학도 포괄하고, 우리의 일상적 세계상도 근사치로 포괄합니다. 근시라서 냄비 속의 끓는 물이 안 보이는 사람의 경험을 눈이 좋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듯이, 양자론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분자 규모에서 보면, 강철 검의 날카로운 칼날도 폭풍우 치는 바다의 가장자리처럼 거칠고 비뚤배뚤한 것이 됩니다.
고전 물리학적 세계상은 그저 우리가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견고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고전 물리학의 확실성은 단지 확률일 뿐입니다. 옛 물리학이 제공해온 선명하고 견고한 세계의 이미지는 사실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4부 현실을 엮는 관계의 그물망 p.130~131
저는 인간이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확실성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에 대한 탐구는 확실성을 먹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성의 근본적인 부재를 먹고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날카롭게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의심에 마음을 열고 더욱 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와 호기심, 반항, 변화에서 비롯된 생각의 힘입니다. 앎의 모험이 닻을 내릴 수 있는 철학적, 방법론적 초석이나 최종 고정점을 존재하지 않습니다.
5부 "현상이 모습을 드러낼 상대가 없으면 현상에 대한 명료한 기술은 없다." p. 182~183
카를로 로벨리는 자신이 철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라고 하면서 미천한 기계공이라고 한다. 자신의 직업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가르주나 라는 철학자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배울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자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얘야, 너 몹시 심란한 얼굴이구나,
당황했나보구나. 자, 기운 차려라.
여흥은 이제 끝났어. 여기 있는 배우들은
이미 말했듯, 모두 요정이었고
공기 속으로, 옅은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
그리고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럼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그 자체도
그래,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이 실체 없는 광경이 사라지듯,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꿈을 만드는 재료, 우리 짧은 인생은
잠으로 끝맺는 것.
7부 이 세계를 조금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지도- 하지만 정말 가능할까? 결론이 나지 않은 이야기를 결론 맺으려 한다 中 p.225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인 <템페스트> 4막 1장
양자역학에 대한 긴 명상을 마친 후의 느낌이 이렇다고 카를로 로벨리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인 <#템페스트 >의 4막1장의 대사를 인용한다. 물리적 세계의 견고함이 마치 프로스페로(템페스트의 주인공)의 구름 덮인 탑과 화려한 궁전처럼 녹아서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것 같고, 현실이 거울들의 놀이 속에서 풀어헤쳐져 버렸다고 말한다. (p.230~231)
그리고, 양자의 발견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세계상에는 아찔함, 자유로움, 쾌활함, 가벼움이 있다고 말한다. (p.234)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아찔함, 자유로움, 쾌활함, 가벼움! 학창시절에 물리라는 과목이 공식을 무작정 외우고 정답만을 찾는 게 아니라, 이런 학문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괴테는 바람이 몰아치는 극한의 #헬골란트 에 대해 "자연의 끝없는 매력을 보여주는" 지상의 장소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이 성스러운 섬에서 #벨트가이스트 (세계정신, 세계영혼, 세계를 지배하는 정신적 원리), 즉 '세계정신'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하이젠베르크에게 말을 걸어 우리 눈에 드리운 안개를 조금이나마 걷어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이 정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견고한 무언가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다른 무언가가 열리고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게 됩니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던 실체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부드럽게 흘러가는 덧없는 삶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사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비추며, 18세기의 차가운 역학으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어안이 벙벙해지더라도, 우리가 깊은 신바감에 젖게 된다 해도요.
7부 이 세계를 조금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지도- 하지만 정말 가능할까? 결론이 나지 않은 이야기를 결론 맺으려 한다 中 p.234~235
이렇게 카를로 로벨리는 이 책을 마무리한다.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여기서 결론을 맺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물리학의 시인'의 면모가 한껏 드러난다. 대 문학가인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인용해서 양자 역학의 세계를 보여 준다. 아찔하면서도 자유롭고, 쾌활하면서도 가벼운...
이 책을 감수하신 #이중원 교수님의 글에도 카를로 로벨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어서 기록을 남긴다.
로벨리의 탐구는 관찰 가능성에 기반해 양자 이론을 꽃피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그 여정의 전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광활하고 방대하다. 과학과 철학의 영역을 경계 없이 넘나들면서 통섭적으로 사고한다.
이제 양자 이론은 하이젠베르크의 기대와 달리 양자적 대상이 관찰을 통해 우리(혹은 '관찰자')에게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물리적 대상이 서로에게 나타나는 방식 곧 관계를 기술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스며 있는 로벨리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벨리는 양자 세계에 관한 자신의 관계론적 관점이 자연주의 철학의 바탕 위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세계가 인간의 정신 속에만 있다고 보는 관점(관념론)과 세계가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물질 입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관점(유물론) 모두를 비판한다. 또한 현상 이면에 실재가 있고 현상은 이 대상 실재의 발현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대상을 현상들의 연결 매듭으로 보는 에른스트 마흐(경험비판론)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이나 '나'라는 존재 또한 세계와 마찬가지로 어떤 실체나 토대 없이 관계와 상호작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감수의 글 p.242~243)
[후기]
1925년 북해의 외딴 섬, '성스러운 섬'이라는 뜻의 헬골란트 섬에서 하이젠베르크가 닐스 보어가 던진 양자역학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시점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고민하다가 쉴 때는 섬의 바위를 오르거나 괴테의 <서동시집>에 실린 시를 외우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수학적으로 모순이 없는 완전한 양자역학의 한 체계를 세웠다고. 멋지군! 한편으로는 내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라는 것을 절감한다. 뭐, 괜찮다. 사실이니까. 알고 인정하며 사는 게 낫겠지!
아직도 나는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며칠 째 책을 읽고 동영상을 봐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공부해보고 싶다! 어려운데 신기하게 빠져드네... 아직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책은 반도 정리를 못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