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증 1주년 기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전을 하고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던 소장품들을 한 데에 모아서 나름의 스토리텔링과 함께 전시를 진행 중이다.
온라인 예약 티켓은 풀리기가 무섭게 매진행렬을 이었고, 용산에 사는 특권을 가진 나는 현장예매를 노리며 일요일 아침 10시 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실 매 주말마다 그렇듯이 출근하는 평일보다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때우느라 심심했는데 주말 아침이니까 여유있겠지 싶어서 느지막히 출발했더니, 아뿔싸 개장 전부터 줄이 이미 엄청 긴 상태였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 11시 쯤 내 차례가 돌아왔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둘러보는 내내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 소장품에 뒤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되려 그보다 더 앞서는 소장품들에 깜짝 놀랐다. 특히 도자기들과 청동구슬은 어제 만든 것 처럼 반짝반짝 빛났는데 물론 세월의 멋이 곁들어진 것도 멋지지만 어떻게 이렇게 상태가 좋은 고미술품들이 있었지 싶었다.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 유명작가들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모네의 수련까지 한 번에 아우르는 전시에 그저 황홀했다. 가족과 자연을 테마로 한 큐레이팅도 마음에 들었다. 이 부분은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조금 갈리는 것 같기도 한데 주제자체는 좋았지만 그 가상의 수집가가 자신의 콜렉션을 소개하면서 한마디 한마디 덧붙인 이야기들은 조금 아쉽긴 했다. 차라리 이건희 회장의 자서전 구절들만 적혀있었으면 조금 더 깔끔한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깊게는 아니어도 얕고 넓게 미술을 좋아하는 나는 355점이나 되는 전시품들을 보면서 개인수집가가 이 정도 소장품을 가질 수 있게 한 그의 부에 부러움도 생겼고, 계속 보다보니 내가 감히 부러워할 수준이 안된다는걸 깨달아서 그저 경이로웠다.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것 보다 이건희 회장의 부에 더 감탄하게 된 부분이 조금 더 아쉬워서 다음번에는 오롯이 작품을 즐기는 시간을 마련하려 재방문할 예정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하늘과 땅'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옮겨가며 볼 수 있는 색깔들을 동심원으로 나타낸 작품인데, 나는 보면 볼수록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땅 위의 나무인지 눈 안 홍채의 무늬인지 오묘한 검은색 선이 특히 좋았다.
초등학생 때 갔던 호암미술관에서, 대학생 때 처음 갔던 리움미술관에서 느꼈던 경이로움과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간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이런 작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기증한 유족들에게는 고마운 마음이다. 존경받는 재벌이라는 말은 가능한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오늘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