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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찌니 Sep 08. 2024

아내도 처음, 어른이 되는 것도 처음

안녕하세요 저는 오영이라고 합니다

전화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짧은 호흡이 간간이 섞여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로 작았다.


"제가 누구인지 몇 살이고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겨우 찾은 정보가 지금 전화받으신 분이 제 가족이라고 하셔서.. 죄송해요. 사실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뭐라고 불러야 할 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 저 아세요? 저 기억하시나요? 아니.. 저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 이렇게 갑자기 연락드려 이런 말 해서 죄송한데.. 아.. 그게 저도 지금 뭐가 뭔지 몰라서요.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저 좀 만나주시면 안돼요?"

속사포로 두서없이 내 할 말만 쏟아냈다.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혼나려나 싶어 무섭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겁이 나는데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게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 바로 지금처럼 후회할 수 도 있겠지만 말이다.

'전화하지 말걸.. 기억 좀 더 찾고 할 걸 그랬나? 아예 연락 안 할걸..'

그렇게 한참생각이 복잡 미묘하게 흐를 동안 수화기 너머에서는 여전히 간간히 호흡소리만 들리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혹시.. 울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막힌 수도가 터진 듯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온다.

"어디 있다 이제 왔어.. 히끅.. 내가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찾은 줄 알아? 자기만 힘들지!! 나도!! 나도..  힘들었단 말이야..!!

내가 자기가 얼마나 필요했는데.. 어디로 사라졌다 이제 나타나서 뭐? 기억을 못 한다고?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차라리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지 비겁하게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생각해 온 거야? 지금 와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따발총같이 쏘아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에  무섭게 쏘아대기까지 하니 겨우 차올랐던 용기가 다시 쥐구멍으로 숨어버렸다.  

'그냥 끊을까..? 계속 들고 있어야 하나..? 나한테 엄청 화나신 거 같은데 만나지 말까? '

수만 가지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수화기만 든 채 이번엔 이쪽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한참을 뭐라 울며 소리치며 야단을 치는 것을 듣고 있었더니 어느새 조금 진정되셨는지 조금은 차분해진 말투로 물어본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거예요? 나를 기억 못 한다고.. 했죠?"

"네... 지금은 엄마집에 있어요"

"아.. 엄마.. 집.. 어머닌 잘 계시죠?"

"우리 엄마 아시죠? 바꿔줄까요?" 순간 엄마의 안부에 화색이 돌아 이때다 싶어 바꿔주려던  찰나 차갑게 돌아오는 목소리에 냉기마저 감돈다.

"아뇨. 어떻게 만나긴 하셨나 보네요. 그럼 제가 뭘 해드리면 되죠? 저한테 뭘 바라시는 거예요?"

냉랭해진 목소리에 다시 긴장감이 돌아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아.. 아뇨. 뭘 바라는 건 아니고 혹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이었고 같은..

아!!  지금 당장 안 해도 돼요!!

다음에 혹시 괜찮으시면 그때 말씀 주세요.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기억은 안 나지만 나 때문에 울게 해서 미안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딸깍 끊는 소리가 났다.

'아..  화가 많이 나셨나 보다.. 나도 황당한데 많이 당황하셨겠지.. 괜히 전화해서 더 화나신 거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띵똥' 한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조금 마음이 진정되면 연락할게.

지금은 아무런 말도 못 하겠어. 그래도... 살아있어 줘서... 이렇게 돌아와 줘서 고마워.. 그거면 됐어..

곧 다시 연락할게. 꼭 연락할게. 시간이 조금 필요해.'


하! 화난 게 아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낀듯한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며 조여왔던 심장이 콩닥콩닥 가볍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른이라고 다 용감한 게 아니구나 어른도 무서운 게 많네 싶어 짐짓 용감한 어른인 척 잘했어  칭찬해주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전화가 와도 이젠 내가 걱정이다.

전화로도 이렇게 무서운데 만나면 더 무서운 건 아닐까, 엄청 무섭게 생겼음 어떡하지? 그래도 날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은 문자에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만나자는 연락이 올까 이젠 그게 또 걱정이다.


어떤 사람일까?

이상하게 걱정이 되면서도 조금은 두근두근 설레는 느낌도 드는 것 같고 감정이 널을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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