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돌아가면 모두 다 이야기해줄게.”
영화 ‘벌새’에서 주인공인 은희에게 영지 선생님이 남긴 편지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소설과 영화로 당신을 소개해 달라'는 말에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편지를 읽는 영지 선생님의 목소리 때문이다. 내가 필요한 어른의 목소리이자, 내가 되어주고 싶은 어른의 목소리.
영화를 본 것이 2019년, 벌써 3년 전이지만 영지 선생님의 편지만큼은 자꾸 읽어보고, 휴대폰 배경화면으로도 자주 해놓았다. 이제는 텍스트만 봐도 영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음성 지원되고, 편지 7줄을 외우는 경지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어.”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지' 고민하다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답을 내릴 때, 영지 선생님을 떠올리게 된다. 열심히 살아가던 서먹한 친척이 일하다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부터였는지, ‘사람은 너무 쉽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부터도 내일이라도 원인불명의 사고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대비하며 살았기에 언제 죽더라도 내 주변 사람이 슬퍼하지 않게, 그리고 내가 후회하지 않게 날마다 내일 없이 충실히 살아가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 왜 살아있는지, 오늘의 삶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자주 되짚었다. 요즘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됐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
가장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 ‘듄’에는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fear is the mind-killer.)”라는 대사가 반복해 등장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쓰고 있는 블로그 일기장에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스무 건이 넘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와 감당하기 어려운 과업이 주는 두려움에 압도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두려움은 피할 수 없고, 삶에서 감수해야 하는 감정이다. 에밀 아자르가 쓴 ‘자기 앞의 생’에는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신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다행인 것은,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 한다. 나쁜 일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기쁜 일에 대한 안테나를 세우고 순간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누려야 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삶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은 각자의 서사를 가진 50명이 넘는 인물들이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한 이야기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했던 캐릭터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되는 방식으로 모두 연결돼 있다. 소설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아내는) 한번 산책을 하면 열 몇 가지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했다. 걸음이 빠른 편이던 호 선생은 아내에게 느리게 즐기면서 걷는 법을 배웠고, 가까운 곳과 먼 곳에 시선을 던지는 법도 배웠다." 소설에 나오는 부부의 이야기처럼 삶은 산책하며 발견한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지구에 살아가는 수십억의 사람들은 제각각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이니까 수십억개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삶이 존재한다. 내가 영지 선생님의 편지를 외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