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배운 것 [1]
[이제야 정리하는 2021년 연말정산 (1)]
‘비트윈', ‘타다’ 등의 서비스를 런칭한 VCNC 박재욱 대표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매년 올해의 배움 10가지를 정리하여 올리시는 것을 보고, 나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10가지를 꾸역꾸역 뽑아보려고 했는데, 왠지 지어내는 기분이 들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1년 동안 배운 게 열 가지가 채 안 돼서)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각 파트를 빽빽하게 채웠다. 막상 글을 써놓고 보니 ‘배움’이라기보단 한 해 동안 매달린 화두와 질문들, 연말정산에 가까운 듯한 느낌. 그래도 차근차근 정리해보니 좋았다.
2021년은 내가 알던 많은 것들과 작별해야 했던 한 해였다. 또 동시에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놓인 해이기도 했다. 3년간 살았던 옥탑방을 비웠고, 그것은 한 시절을 닫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 이사하는 동안엔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짐을 옮기면서도, 깨진 거울을 버리려고 동사무소를 오가면서도, 그렇게 완전히 비어버린 방을 확인하고 나서도 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였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미 많이 슬퍼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을 떠날 날을 상상하며 미리 슬퍼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정작 진짜로 슬퍼할 시간이 왔을 땐 제대로 슬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슬픔은 일시불이 아니었지. 조금씩 조금씩 갚아나가도 어느새 이자가 붙고 원리금은 줄지 않는 이상한 빚이었지. 아무리 미리 슬퍼했다 해도, 잔액은 어디 가지 않고 남아 주기적으로 청구서를 내민다는 것을, 제 때 지불하지 않은 슬픔은 언젠가 이자를 붙여 갚아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배웠다. 훈련소에서, 자대에서 또 꿈에서 문득 그리운 순간들을 떠올릴 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하지만 이제야 돌아보면 문을 잘 닫고 나온 것 같다. 닫아야 할 시점이 오기도 했고, 나도 마음 한 쪽으로는 닫아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 있었으니까.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지금 문을 닫고 나와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십대 초반의 모든 삶이 그 작은 방에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가장 많이 자랐던 것 같다. 3년 전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한다고 해도 더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이런저런 아쉬움과 후회가 남아도, 그래서 돌이킬 수 있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문 하나를 닫았다. 사는 동안 여러 번 문을 닫고 또 열겠지만, 그럴 때마다 빈 옥탑방 문을 닫고 나오면서 느낀 마음을 자주 떠올릴 것 같다.